-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6/03/20 14:42:17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스포O] <기차의 꿈> - 넷플릭스에 숨어있는 반짝거림
어제 별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켰다가, 메인 추천작 중 <기차의 꿈>을 발견했습니다.  레데리2에서 봤던 익숙한 풍경이 있기도 하고, 왓챠에서 예상 점수를 찾아보니 4.2점이 찍히길래 즉흥적으로 영화를 켰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고, 사실 그 작품군을 높게 치지도 않지만, 이 영화는 토토로 영감님의 <프랑켄슈타인>과 더불어 가장 잘 만든 작품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영화는 20세기 초반 미국 중부의 삼림지역을 무대로 삼고 있고, 주인공은 벌목을 업으로 삼아 근근히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던져진 아이였고, 동네 교회에서 우연히 짝을 만나 소박한 통나무집을 짓고 가족을 꾸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벌목꾼들은 몇개월씩 집을 떠나 벌목 지역에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벌목 시즌이 지나면 집에 돌아와 쉬기를 반복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 주인공인 로버트에게 지워낼 수 없는 기억들을 남기고, 그로써 이 영화는 평생 바다를 한번 본 적 없이 늙어간 노인의 삶을 통해 미국의 그 시절을 입체적으로 조망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기차의 꿈>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전체 ㅡ 그리고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평생을 관통하는 건 나무와 목재입니다.  로버트는 나무를 베어 생계를 잇고, 종종 동료들은 나무에 의해 목숨을 잃고, 나무는 집과 장작을 베풀어 주고, 기차가 오갈 수 있도록 침목과 다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어줍니다.  그렇게 삶에 밀접히 붙어있던 나무는, 산불이 났을 때 모든 것을 불사르는 재앙이 되어 버리고, 영화 후반부에는 산림청이 산불감시원을 파견하며, 자신이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벌목장의 엔진톱으로 깨닫고 되며, 로버트는 마지막까지도 결국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차라리 <나무의 꿈>이어야 하지 않나,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로버트의 삶을 가만히 따라가는 영화의 호흡은 흠잡기 어렵고, 화면 역시 순간순간 아름답습니다.  카메라는 수직과 수평, 부감과 올려다 보는 각도를 자유롭게 오가고, 필름에 담긴 풍광은 찬란합니다.  스토리라인이 복잡하진 않지만 여운이 깊게 남았고, 주인공이 평생에 걸쳐 풀지 못한 세가지 질문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 중국인 청년은 어쩌다가 다리에서 던져졌을까, 아내와 딸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에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평생 노력해도 숨어있는 답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느낀 안타까움은, 아마 이 영화가 그 공백을 직시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충분히 많은 상을 거머쥘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는데, 정작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해보니 수상경력이 화려하진 못하네요.  제 취향에 너무 직격한 작품이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견을 권합니다.



1
  • 소설로 유명한 작품인데 한 번 봐야겠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242 일상/생각사실 와이프는 선녀였습니다~~ 2 큐리스 26/06/04 806 6
16234 일상/생각B팀장과 정년보장 (1) 5 Picard 26/06/01 809 10
16239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27. 연(聯) T.Robin 26/06/04 810 0
16064 게임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소울 리버 1 바보왕 26/03/09 812 5
16099 일상/생각철원 GOP, 푸켓 쓰나미.... 제가 살아남은 선택들 게임으로 만들어봤습니다 2 큐리스 26/03/26 812 3
16070 일상/생각드로리안 아리랑 이라는 곡을 만들어봤습니다. 2 큐리스 26/03/13 813 0
16024 스포츠[MLB] 스가노 도모유키 1년 콜로라도행 김치찌개 26/02/21 815 0
16062 영화토토로 영감의 <프랑켄슈타인> 2 당근매니아 26/03/09 817 0
16143 게임[현업 게임업계 실무자 모집] 바이브 코딩/개발 오프라인 스터디강남 2 mathematicgirl 26/04/18 822 0
16172 역사조선 왕의 대표 러브스토리, 희빈과 의빈 1 노바로마 26/04/30 833 3
16225 일상/생각 글쓰기 한 달, 커피값은 벌게 되었네요.ㅎㅎ 5 큐리스 26/05/27 833 7
16157 경제동네북 국민연금, 그리고 대체투자를 바라보는 관점 7 오르카 26/04/24 838 2
16160 음악Good Bye, 嵐 3 Klopp 26/04/24 840 1
16134 일상/생각옵시디안노션컨버터?? 11 큐리스 26/04/15 842 0
16224 정치나는 공약을 믿지 않는다. 3 meson 26/05/25 846 2
16226 일상/생각빨간버튼 파란버튼 하여가 8 알료사 26/05/27 847 8
16011 스포츠[MLB] 폴 골드슈미트 1년 양키스행 김치찌개 26/02/12 851 0
16125 일상/생각기술은 상상을 현실화합니다. 2 큐리스 26/04/10 851 2
16245 정치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시위의 성격 7 meson 26/06/06 859 6
16278 정치6.3 지방선거 동일득표수의 우연성 검증 10 Memex 26/06/14 859 6
16263 정치요번 선거 단상. 15 세인트 26/06/09 868 27
16219 문화/예술역선택의 정점에 서서 6 열한시육분 26/05/22 869 1
16084 영화[스포O] <기차의 꿈> - 넷플릭스에 숨어있는 반짝거림 당근매니아 26/03/20 870 1
16201 사회진보좌파-인문사회계의 21세기 대학 담론은 왜 실패했는가 3 카르스 26/05/14 870 5
16154 게임멋진 신세계 3 mathematicgirl 26/04/22 871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