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천둥과 번개와 비바람과 담요와
처음에는 낮은 바람 소리가 '어험'하면서 재단의 주춧돌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폭풍이 맨션을 에워쌌다.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비가 갑자기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해서 창밖을 순식간에 뿌옇게 가려버렸다. 나무 사이로 번개가 깜빡거리더니, 맨션 전체가 번쩍거렸고, 뒤이어 우르릉하는 천둥소리가 온 맨션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맨션의 안쪽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클로에가 있었다. 그녀는 공용 공간에 모인 다른 메이드들의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밝은 에너지를 퍼뜨리고, 천둥번개가 가져오는 음습한 분위기를 막아내는 방파제가 되었다. 그녀는 수다를 떨었고, 깔깔거렸고, 공간에 서 있고 앉아 있는 여인들의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마음을 밝게 칠하고 하나로 묶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훨씬 무거웠던 복도의 공기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메이드 한 명이 갑자기 공용 공간으로 뛰어들어왔다. 절제된 프릴이 그녀의 성격이 원래 차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녀의 A라인 스커트는 앞쪽이 살짝 들려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릴 수 있게끔 되어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창백한 얼굴로 클로에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클로에......"
"응?"
"루나 좀...... 루나좀 봐줘. 방이 너무 조용해. 바깥쪽 센서 램프를 보면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노크를 해도 응답이 없고, 내가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난 무서워. 그렇게...... 누군가가 어떻게 되어있는걸 보는게...... 문을 열기가......"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다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녀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다른 메이드들이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어 그녀를 안아주고 다독였다. 과거의 악몽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OK! 맡겨주세요! 언니들 미안. 잠깐 내 친구좀 보고 올게요-."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순식간에 저 멀리로 사라졌다. 하도 급하게 뛰어가느라, 마지막 말의 마지막 부분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탁탁탁탁' 하고 달리는 리듬 있는 발소리는 제멋대로 번쩍이는 천둥소리에 묻혀버렸지만,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직선으로 친구를 향해 달려갔다. 급하게 달려가는 그녀의 얼굴에 평소의 장난기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얼굴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머릿속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1초의 시간이 10초처럼 느껴졌다. 늦으면 안 돼. 늦으면 안 돼. 그녀는 그렇게 되뇌며 심장을 있는 힘껏 쥐어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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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은 죄악이었다. 노크나 초인종 같은 절차는 사치였다. 클로에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루나!"
방은 어둡고 차가웠다. 가끔 내리치는 번개만이 창문을 두껍게 감싼 커튼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휘감고 나갔다. 그 어두운 침대 한가운데에, 이불과 담요를 몇 겹씩 쌓아놓은, 단단한 껍질로 감싼 번데기 같은 형상이 보였다.
"루나?"
그녀는 그녀가 겹겹이 쌓아 올린 이불과 담요 속에 숨어있었다. 마치 그것들이 자신을 어떻게든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일정하지 않고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천둥소리가 들리자, 호흡이 좀 더 가빠지고, 잠시 후 심호흡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하면 또 다른 천둥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그때마다 그녀는 더 헐떡였다.
"루나......"
클로에는 쌓여있는 담요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차가운 두 손이 그녀의 온기를 잡았다. 그 두 손은 떨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 달리 조심스러웠다. 평소처럼 큰 소리를 냈다간 이 아이가 놀랄지도 몰라. 그녀는 밀어 넣지 않은 손으로 쌓여있는 이불 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작고 창백한 얼굴이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은 이미 눈물로 젖어있었고, 눈동자는 반쯤 풀려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듯 계속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루나의 두 손은 클로에의 두 손을 있는 힘껏 꼭 잡고 있었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손을 바로 뺄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클로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바보같은 이불더미에서 나오라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너는 왜 그 모양이냐면서 따지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계속 떨고 있는 루나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었다.
"어..??"
클로에는 루나의 두 손을 끌어서 살짝 들어 올렸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이불 안에 움츠려있던 그녀가 상체를 세우며 바로 앉았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다르게 보면, 몸을 짓누르고 있던- 이불 더미가 무너졌다. 클로에는 그녀의 몸에 담요 한 장을 두르고, 바깥의 상황이 생생하게 보이는 큰 창문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창밖의 바람은 나무줄기가 휘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셌고, 비는 시끄럽게 창문을 두드려댔다. 루나는 멍하게 창문을 바라봤고, 클로에는 그런 루나의 뒤에서 그녀를 살며시 감싸안았다. 담요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클로에의 온기가 루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몸 한가운데부터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온기가 손발 끝까지 천천히 스며들었다. 루나의 차가웠던 몸에 피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어때?"
클로에가 뒤에서 속삭였다. 루나는 그제서야 자기 상태를 깨달았다.
"내가 어릴 적, 천둥번개를 무서워할 때, 우리 엄마가 내게 해줬던 거야."
누군가의 따듯한 온기가 더해진 따뜻한 담요 안. 창밖은 사납기 그지없었지만, 담요는 따뜻했고, 마음은 평안했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다. 이런 느낌, 처음이다. 살짝 혼란스럽다. 뭘까. 마법일까?
"어때? 함께 있으니까 무섭지 않지?"
"응......"
그녀는 살짝 눈을 감고 몸을 뒤로 기댔다. 맨션의 앞마당 쪽으로 벼락이 내리쳤고, 엄청난 소리가 온 방안을 뒤흔들었지만,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따뜻하다......"
"함께 있으면 무섭지 않아. 괜찮아."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 그녀는 자기의 엄마가 그녀에게 해 준 그대로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를 감싸안았다. 루나는 무언가 안 좋은 느낌에 움찔했지만, 곧 다시 긴장을 풀었다. 기분 좋은 경험을 한 뒤에는 항상 부모님의 호된 책망과 채근이 따라붙었다. 아니,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녀는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녀의 뒤에는 클로에가 있었고, 앞에는 폭풍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같이 있다는 건, 좋은 거구나."
그녀는 담요 밖으로 손을 꺼내어 자신을 감싸고 있는 클로에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루나의 손을 잡아끌고 다닐 때처럼, 그 손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헤헤헤헤......"
한시름 놓았다는 듯한 웃음소리. 항상 조신하고 조용하던 그녀답지 않다. 정신을 놓은 듯, 아니면 기분 좋은 듯. 클로에는 피식 웃었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곧 루나의 엉덩이에서 크게 '찰싹' 소리가 났다.
"꺅!"
"이제 괜찮지? 하나도 안 무섭지? 손 안 떨리지? 그럼, 이제 그 곱디고운 목소리로 이 언니를 찬양해 보렴~."
그리고 그녀는 한 손은 허리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걸로 내가 루나보다 더 언니인게 증명! 루나는 꼬꼬마라 천둥번개가 무섭더래요-. 클로에 언니가 와서 마법으로 얍 해주니까 이제는 괜찮아요-."
"야아! 우이......"
루나는 양 볼을 부풀리며 무언가를 터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화낼 수 없었다. 아니.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가볍게 클로에의 팔을 툭 치고, 피식 웃었다. 클로에는 다시 쾌활한 아이로 돌아갔고, 그녀의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이제는 창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었다. 천둥번개는 계속해서 귓전을 시끄럽게 때려댔지만, 방 안은 따뜻했고, 그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