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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4/30 17:21:14
Name   노바로마
Subject   조선 왕의 대표 러브스토리, 희빈과 의빈
조선왕조에는 대표적인 러브스토리 두 개가 있습니다.
숙종-희빈 장씨(장옥정), 정조-의빈 성씨(성덕임)의 로맨스인데요. 
특히 장옥정과 성덕임은 조선왕조 역사에 성이 아닌 본명을 남긴 몇 안되는 여인이기도 하죠. (장옥정은 다만 확실한지는 좀 확인해봐야 할 수도...)

하지만 희빈 장옥정의 러브스토리가 격정의 치정극이라면, 의빈 성덕임의 러브스토리는 슬픈 순애보 로맨스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숙종♡희빈

우선 장희빈은 당대 중인 집안 출신의 궁녀로, 타고난 미모와 처세로 젊은 임금 숙종에게 승은을 입는 등 총애를 받습니다.
실록에도 희빈이 미모가 대단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하니 당대로서는 손꼽히는 경국지색이었던 모양입니다.




▲ 드라마, 영화에서 역대 장희빈 역할을 맡은 9명의 배우들. 장희빈의 팜므파탈적 매력은 배우마다 비슷하면서 다르게 묘사되었다.


숙종의 후궁에 대한 총애가 불편했던 것인지 희빈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에게 찍혀 한때 출궁당하기도 하고,
명성왕후 사망 이후에는 궁에 복귀하지만 왕비 인현왕후에게는 지속적인 견제를 받기도 하죠. (인현왕후에게 회초리를 맞거나 하는 등)
장희빈도 자신을 견제하는 인현왕후에게 심각한 불편함을 느꼈겠죠.
그러나 희빈은 남인과 정치적 연합을 하고, 당시 왕실의 큰 어른 자의대비(인조의 왕비)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자리를 유지합니다. 심지어 장남(후의 경종)까지 낳아 첫 원자 책봉을 받으며 숙종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아가죠.
게다가 기사환국을 통해 남인이 정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숙적 인현왕후까지 폐서인 시키며 중전자리까지 차지합니다. 최초 승은궁녀 출신 왕비가 되는겁니다.

그러나 어느새 희빈을 향한 숙종의 사랑도 식어버리고, 숙종은 큰 죄가 없음(후궁 희빈의 기강을 잡거나 견제한 정도)에도 폐비시킨 인현왕후에 대한 그리움과 묘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서로에 대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다시 채우기 시작하죠.
게다가 새로운 신데렐라, 숙빈 최씨가 새롭게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 합니다. 탑독의 위치에 올라선 장희빈은 인현왕후에게 자신이 당했 듯이, 숙빈 최씨를 집중 견제하기 시작하죠.

그러나 무수리 출신이라는 낮은 신분의 문제로 희빈에게 대응할 여력이 없던 숙빈은 폐비된 인현왕후와 동맹을 맺게됩니다. 사대부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후사를 만들지 못해 한계가 있던 인현왕후와, 원래 신분이 낮아 중전을 노리기는 어렵지만 아들(후의 영조)을 낳아 후사를 도모할 수 있는 숙빈은 서로에게 이해관계가 맞았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갑술환국이 일어나 인현왕후가 다시 중전으로 복귀하고, 희빈은 후궁으로 강등되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장희빈의 후원자인 자의대비는 이미 죽고, 남인 역시 환국으로 정권을 잃어버리며 서인세력이 다시 정권을 차지합니다.

어렵게 잡은 중궁전 자리를 다시 인현왕후에게 빼앗긴게 억울했던 희빈은 돌아온 인현왕후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굿을 하는 등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무녀들을  시켜 인현왕후의 얼굴 그림에 활을 쏘는 등 분풀이를 하기도 하고, 오빠인 장희재와 함께 인현왕후 측을 모함하려 하기도 하죠.
저주 때문이야 아니겠지만 아무튼 인현왕후가 2년여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자, 숙빈 최씨에 의해 장희빈이 저주를 퍼부었다는 사실이 숙종의 귀에 들어갑니다. 오랜 병치레를 하는데도 인현왕후에게 제대로 병문안을 오지도 않아 탐탁치 않아하던 숙종은 그대로 희빈을 사사해버립니다. 이어서 후궁 출신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교지까지 내려버립니다. 일명 장희빈법이죠. 이렇게 희빈과 숙종의 롤러코스터를 탄 로맨스는 파국적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나마 세자 경종은 추후에 왕위에 올라 장희빈의 한이 조금은 풀리나 싶었지만, 경종은 후사없이 4년만에 죽어버립니다. 후반부 희빈의 숙적인 숙빈의 아들 영조가 왕위를 이으면서 장희빈은 조선사에 손꼽히는 요부 이미지가 생겨버립니다.


정조♡의빈

한편 정조와 의빈의 로맨스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위가 격정적인 치정극이라면, 여기는 애달픈 순애보입니다.
의빈(성덕임)은 원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던 어린 궁녀로 어릴 때부터 정조가 어머니를 만나뵐때마다 눈여겨봤던 것 같습니다. 나이도 정조보다 딱 한살 어리거든요. 외모가 이쁜 것은 물론 머리가 좋아 정조가 뭘 가르쳐 주면 100% 이해했다고하며 글씨도 잘쓰고(소설을 필사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성품도 좋아 어린 세손인 정조 이산의 첫사랑이 된 것입니다.

▲ 드라마에서 정조의 히로인 의빈 성씨 역할을 한 대표적인 두 배우 한지민과 이세영. 첫사랑 이미지 그대로 맑고 단아한 모습이 눈에 띈다.

정조가 약 15~16세 세손시절, 오랫동안 눈여겨봤던 궁녀 성덕임에게 후궁이 되어달라며 프로포즈를 하지만, 의빈은 세손빈(효의왕후)께서도 아이가 없는데 제가 어떻게 세손의 승은을 입겠냐면서 울며 고사합니다. 정조는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궁녀 성덕임의 마음을 존중하고 쿨하게 포기합니다. 이후 정조가 24세에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다만 오랜 아내였던 효의왕후에게 후사가 없다보니 오른팔 홍국영의 어린 여동생을 후궁으로 맞이합니다.

으뜸 원(元)을 붙여 원빈이라는 파격적인 칭호까지 내려주며 사실상 왕비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겁니다. 그러나 원빈은 당시 너무 어린 나이에(약 13~14세로, 당대 기준으로 시집가기에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임신-출산을 하기는 어려운 나이) 궁에 시집을 와서인지 고생하다가 1년 만에 요절해버립니다. 원빈이 후사를 보면 자기도 외척으로서 절대적 패권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홍국영은 중궁전에서 원빈을 모함한게 아니냐는 망상을 하며 중궁전 궁인들을 가두고 중궁전의 모함 증거를 찾으력 했고, 결국 이 일이 걸려서 정조에게 숙청당합니다. 그나마 정조의 오랜 벗이라서인지 사사하는 등 중형을 내리진 않지만, 권력을 잃고 얼마 후에 홍국영도 사망합니다. 아무튼 정조 나이 20대 후반에도 후사를 보지 못하자 새로운 후궁 화빈 윤씨를 들여 후사를 노려보지만, 상상임신 소동까지 발생하는 등 이쪽도 소득이 없습니다.

결국 정조는 오랜 첫사랑 성덕임에게 다시 찾아가 다시한번 후궁이 되어달라고 말하지만, 성덕임은 또 거절합니다. 정조는 이제는 못참겠다 싶었는지 일종의 뒤끝을 보이는데요. 성덕임이 아니라 애꿎은 성덕임의 하인들과 부하들에게 트집을 잡아서 크고작은 벌을 주는 등의 행동을 하는거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성덕임은 정조의 승은을 승낙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이 지금 보면 다소 정조의 갑질이나 강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정조를 옹호하자면 이렇습니다. 어차피 조선 궁녀는 왕이나 세자에게 승은을 입는 일이 아니면 시집도 못가고 혼자 늙어 죽어야 합니다. 궁녀가 된거 자체가 왕에게 반쯤은 시집을 온 것이거든요. 이미 성덕임도 20대 후반의 나이라서 당대 기준에서는 노처녀였습니다. 게다가 정조가 직접적으로 강압을 한게 아니라 성덕임의 부하들에게 트집을 잡은 정도면 왕치고는 비교적 간접적인 방식의 요구긴 합니다. 그리고 의빈이 딱히 정조가 싫어서 거절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게,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나 정조의 여동생인 청선군주, 청연군주와도 모두 친분이 있는 관계 였습니다. 물론 그녀가 정조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정조 가족들이랑은 다 친한데 정조만 싫어한다?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아마 정조가 하인들에게 트집을 잡은건 강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명분 주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의빈 성씨가 정조의 남매 청연군주, 청선군주 및 동료 궁녀들과 함께 필사했다던 고전소설 「곽장양문록」. 정작 정조는 각종 소설류를 싫어해 문체반정을 일으키기도..


결국 후궁이 된 성덕임은 의빈이라는 빈호를 받고, 얼마 후 정조의 첫 아들을 낳아 원자 책봉에 세자 책봉까지 받습니다. 문효세자죠. 그리고 이후에는 딸(옹주)도 낳게 됩니다. 성덕임은 원래부터 성격이 순하고, 원래 중전 효의왕후에게도 겸손한 태도를 보여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여인들간의 경쟁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위 장희빈과 달리 의빈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러나 의빈의 딸인 옹주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개월여만에 죽어버립니다. 속상했지만, 당대에는 갓난 아기가 바로 죽는 일이 종종 있다보니 그러려니 싶었는데요. 이어서 장남인 문효세자도 5살의 어린 나이에 홍역에 걸려 요절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당시 셋째를 임신 중이었던 의빈은 두 아이의 죽음에 의연한 척했지만 극한의 심적 고통에 시달렸는지 이후 몇달만에 만삭인 상태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향년 34세였죠. 순식간에 딸, 세자, 자신의 첫사랑까지 연달아 잃어버린 정조는 극한의 슬픔을 표하며 어제의빈묘지명이라는 묘지명을 지어줍니다. 보통 후궁에게 이렇게 묘지명까지 지어주는 일은 많지 않은데, 묘지명에 정조가 자신과 의빈의 오랜 러브스토리를 담았죠. 이렇게 정조 이산의 첫사랑은 서글픈 비극으로 끝나버립니다.

숙종-희빈의 치정극과 정조-의빈의 순애보는 조선왕조에 손꼽히는 로맨스 스토리로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몇몇 드라마를 보다보니 여운이 남아 글을 쓰게 되는데요.

조선 왕들의 러브스토리도 보니 제법 재밌습니다. 격정의 치정극도, 감성적 순애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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