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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5/29 00:01:38 |
| Name | T.Robin |
| Subject | 리쥬브 프로토콜: 24. 여자 vs.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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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쥬브 프로토콜
## 여자 vs. 여자
그후 2주 동안, 클로에는 지옥을 경험했다.
영화에서는 무술을 아름다운 춤과 같은 것으로 묘사하지만, 실제의 무술은 어떻게든 남을 쓰러뜨려야만 내가 살아남는 무자비한 세계에서의 생존 지침이었다. 춤처럼 아름답게 리듬을 타고 멋진 동작을 단계별로 끊어낸다면, 그 공격들은 같은 리듬에 익숙해진 상대방에 의해 가볍게 막힐 뿐이었다. 공격자의 힘을 역이용한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자의 힘을 역이용하기 전에 자신의 기술이 상대방에게 먹혀버릴 뿐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다지는 훈련의 시작은 뼈를 갈아내는 통증, 젖산이 자아내는 무기력함, 그리고 지쳐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의 몽롱함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체육관이 가장 한가한 오후, 클로에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녀는 바로 체육관으로 달려갔고, 한쪽 구석에서 사나운 맹수의 포효를 들었다. '에헤헤'나 '히힛'같은게 끼어들 여지 따위는 없었다. 훈련 후 5분만 지나면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린의 압박이 시작되면 클로에의 머릿속은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훈련을 마칠 때가 되면 입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아무런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린은 밥이고 뭐고 방으로 그냥 돌아가서 쓰러지려는 클로에를 억지로 식당까지 끌고 왔다. 클로에가 자리에 앉아 정신이 반쯤 나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린은 퍽퍽하기 그지없는 단백질과 탄수화물로 구성된 접시를 그녀의 앞에 올려놓았고, 클로에가 지친 팔로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으면, 그녀는 잔소리 위에 잔소리를 2단으로 퍼부으며 제대로 먹지 않으면 내일의 수업은 없다고 그녀를 위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오랜만에 메이드들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모였다. 마가렛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부터 군단의 잔소리 대마왕은 린이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눈이 풀려!"
조금만이라도 눈빛이 흔들리면 린의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찢어발겼다.
"아직 멀었어! 자세 똑바로 잡아! 아니면 그대로 상대한테 맞아 죽고 싶어?"
린이 클로에에게 일갈할 때마다, 그녀는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갈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됐다. 그때, 그녀는 세상을 너무 몰랐던, 몸도 마음도 평범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 자신만으로는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고 세상에게 증명해 줄 수도 없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예상하지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겐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닮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그래서 꼭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 비록 지금은 잠깐 서먹해지긴 했지만, 내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대방도 나를 다시 바라봐 줄 것이다. 언젠가 올 그때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도망갈 수 없었다.
"예에...... 갑니다......"
팔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거웠고, 다리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후들거렸지만, 그녀는 일어났다. 뜨거운 숨결이 들어오면서 폐가 숯덩이가 될 것 같고, 손끝의 모세혈관이 모두 부풀어 주먹이 뻘겋게 변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몰아붙였다.
"아직 팔 힘이 부족해! 5번, 6번, 3번 투로 다시!"
린의 호통과 함께, 그녀는 있는 힘껏 팔을 뻗었다.
"지쳐 있을 때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 맞아서 피가 날 때는 더 힘들어진다.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고 싶지 않으면 균형에 익숙해져!"
클로에는 날마다 몸의 한계에 부딪쳤다. 동작은 어설펐고, 힘은 부족했다. 지친 몸으로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몇 초 안에 바로 잠들었지만, 가끔은 근육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다가 갑자기 딱딱해지면서 온몸을 쥐어짜는 고통이 몰려왔다. 한두 군데 정도가 그러면 린이 알려준 스트레칭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은 근육이 온몸을 한꺼번에 죄어올 때면, 다 내려놓은 뒤 예전의 자유롭고 '무한정 발랄한'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를 떠올렸다. 내가 누군가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패가 되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녀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똑같이 약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누구도 나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 포효가 아군 모두에게 힘을 주고 적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게 되려면, 그만큼의 경험과, 그만큼의 상처와, 또 그만큼의 피가 필요했다. 최소한 지금 몇 주 동안 클로에의 온몸을 계속 뒤덮고 있는 피멍보다 훨씬 더 많은 상처가 필요했다. 포효는 상처가 쌓인 만큼 더 강해진다.
이 주가 지난 일요일 아침. 땀 냄새와 거친 숨소리가 체육관의 공기에 섞여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스승님! 준비운동...... 다...... 끝났어요......"
몸이 '준비운동'에 그나마 좀 익숙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턱밑까지 올라오는 숨 때문에 몸이 앞으로 쓰러져, 준비운동이 끝날때 쯤에는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음......"
린은 가벼운 몸풀기용 기초 대련-어디까지나 그녀의 입장에서였고, 클로에의 입장에서는 온몸에 멍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였다-을 준비하던 평소와 다르게, 잠시동안 아무 표정 없이 클로에를 살폈다.
"입식 연습이다. 준비. 삼칠! 사륙! 독립! 삼칠! 독립! 사륙! 발바꿔! 독립! 삼칠! 사륙! 사륙!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삼칠! 사륙! 너무 느려! 더 빨리! 독립!"
그녀는 계속 구호를 외치며 클로에의 허리에 집중했다. 흔들림이 많이 줄었다. 초보치고는 동작이 빨라져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습득이 빠르네.
"그만!"
클로에는 손을 무릎에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제만 해도 이렇게까지 빠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 무게중심을 잡는데 좀 익숙해진 것 같네. 초보치곤 나쁘지 않아."
"잘...... 하는 건가요?"
"아. 하지만 문제는 사정거리야. 요즘 말로는 리치(reach)라고 그러던가. 너나 나나 기본적으로는 팔다리가 짧아서, 실전에서는 공격이 닿지 않는 경우가 꽤 생길 거다."
"예? 사범님 팔이 짧아요? 유아체형이셨어요?"
클로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소리니. 남자 팔다리보다 짧은 걸 이야기하는 건데. 그럼, 이거 배워서 여자애들하고 머리끄덩이 잡는 데 쓰려고 그랬어? 머리끄덩이 잡히면 금나수(擒拿手)라도 써서 풀어보게?"
"어......"
"지금의 너라면, 웬만한 네 또래 여자애들은 네가 소리만 질러도 무서워서 다들 도망갈걸?"
린이 피식 웃었다. 클로에의 얼굴에 오랜만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돌아왔다.
"사범님, 그럼 전 이제 괴물이 된 건가요?"
피식한 지 몇 초나 됐다고. 그녀의 얼굴이 굳으며 손이 자연스럽게 이마로 향했다. 이게 또 시작이네.
"헛소리 나불거릴 힘 있으면 이거나 받아!"
클로에는 눈앞에 날아온 시커먼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았다. 두 뼘 정도 되는 막대 모양의 종이 상자. 그런데,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 때문인지 꽤 묵직하다. 한 손으로 잘못 받았다가는 손목이 삐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뭔가요? 우수 수련생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
"시끄럽고 풀러보기나 해!"
상자 안에는 부채가 들어있었다. 그것도, 빨간 천 위에 꽃무늬 자수가 놓인, 드라마에 나오는 귀족 여자들이 썼을 것 같은 부채였다. 다만, 다른 부채와 다른 점이라면, 부챗살이 모두 쇠로 되어 있었다는 것.
"철선(鐵扇)이다. 즉, 쇠부채지. 널 여자로 만들어줄 물건이다."
"아잉~. 전 이미 여자인데요? 이렇게 이쁘고 귀엽고 깜찍한데 여기서 어떻게 더 여자가 되라고......"
"그러니까 그 천방지축에서 벗어나서 좀 성숙해지라고!"
린은 마음 속에 '참을 인(忍)' 자를 세 번 새기며 다시 한번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숨을 한번 깊게 내쉬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소매 속에 들어있던 철선이 미끄러져 나왔다.
"어라?"
"펑퍼짐한 긴팔 소매 안쪽이라면 이렇게 숨기고 다닐 수도 있어. 옛날에는 기습이나 암살용으로 썼다고 하지. 본격적인 무기들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허를 찌르기에는 좋아. 곤(棍)이나 도검(刀劍)처럼 '나 무기요'하고 티 내는 무기가 아닌데다가 멀리서 보면 그냥 부채일 뿐이라, 가지고 다녀도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부채처럼 쓸 수도 있고. 특히 여자가 가지고 다니기에 좋아. 이 정도면 핸드백에도 넣고 다닐 수 있거든. 아니면 평소에는 그냥 소품처럼 써도 돼. 이를테면 이렇게 여성스런 분위기를 낸다던가."
그녀는 부채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오오 방금전 그거 좋아요! 남자들 훅 가겠다!"
"개인적으로 난 무술 배우는 여자에게 철선은 교양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비밀스럽고, 무기 같지 않은데 또 무기이기도 한 부분이 그래. 연출만 잘하면 장신구처럼 쓸 수도 있고."
"헤에...... 그럼 사범님은 철선 수련하시고 나서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녔나요?"
말을 하기가 무섭게, 클로에의 눈앞에 몇 개의 별이 번뜩였다. 그리고 잠시 후, 분노를 곁들인 미소가 그녀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얘가 어디서 살살 긁는 법 전문으로 주둥이 파이팅을 배웠나 스승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오늘 쇳덩이로 한 번 제대로 맞아보고 싶어서 작정했니? 당장 자세 잡아! 바로 실전이다! 맞아가면서 배워!"
"아, 옙!"
일요일 이른 아침. 두 개의 아름다운 부채가 펄럭였다. '퍽퍽'하는 소리와 함께, 접힌 철선이 순식간에 클로에의 몸을 몇 군데 찌르고 때렸다.
"철선은 접어서 때리고 펴서 막는게 기본이야. 공격할 때는 맨주먹이나 짧은 곤봉과 똑같다. 권(拳)이나 장(掌)의 거리가 늘어났다고 생각해!"
쇠가 살을 치는 소리는 곧 쇠와 쇠가 부딪치고 긁히는 소리로 바뀌었다. 뭔가 짜릿하다고 생각한 순간, 클로에의 몸이 붕 뜨며 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려보자 그녀의 눈은 이미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채에 정신을 빼앗기면 하체가 빈다! 상체만 있는 게 아니야!"
클로에가 두 팔을 교대로 풍차처럼 앞으로 크게 휘둘렀다. 먼저 빈 왼손, 그리고 접은 부채를 쥔 오른손. 번차의 동작을 응용해서, 상대방이 철선에 반응해 주춤해서 물러나게 만든다. 임기응변이겠지만, 제법인데?
"좋아!"
클로에의 몸이 붕 떠올랐다. 이기각(二起脚). 공중에서 연속으로 두 번 차는 기술. 스승의 가르침대로, 처음의 발은 복부를 노리고, 그다음 발은 안면을 노린다. 클로에는 발을 힘차게 뻗어 린의 배를 차려고 했다. 이번에는 한 대 때리려나.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발은 단단하게 단련된 스승의 복부 근육 대신 잘 제련된 쇳덩이를 쳤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서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두 번째 차기는 시도도 못 해보고, 공중에서 허우적대다가 뒤로 세게 넘어졌다. '쿵'하는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아씨. 또 멍들겠네.
"이번에는 때릴 수 있을 줄 알았니? 날 건드리려면 아직 십 년은 멀었어!"
"쳇."
"쳇이 뭐냐 쳇이! 투덜거릴 시간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봐!"
그녀는 어느새 부채를 펼쳐 양손으로 붙잡은 상태에서 복부를 가리고 있었다.
"이게 철선의 기본 방어다. 상대방이 손으로 공격한다면 한 손으로도 괜찮지만, 발을 막아야 한다면 두 손으로 단단하게 지지하는 게 좋아. 잘못하면 손목이 꺾인다."
그녀는 손을 뻗어 클로에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철선의 공방이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 잡히지?"
"네!"
"좋아. 그럼,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철선 투로다. 제대로 따라와!"
"예!"
투로의 연습과, 연무와, 대련이 이어졌다. 철선으로 인해 달라진 거리를 익히고, 추가된 "새로운 관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연습이 이어졌다. 철선으로 때리는 법과, 막고 흘리는 법, 그리고 철선을 철선으로 맞대응하는 법과 맨손으로 막는 법 등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후에는 린이 휘두르는 장봉(長棒)을 막기 위한 대련이 이어졌다. 쇠와 쇠가, 쇠와 나무가, 그리고 쇠와 근육과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지며, 굵은 땀방울이 체육관 바닥으로 쏟아졌다. 린은 봉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지만, 클로에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빈틈을 찾으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린은 여유있게 클로에의 공격을 막거나, 흘리거나, 되려 받아쳤다. 합을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클로에는 더 필사적이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만들어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고, 자신의 체온으로 뜨거워진 철선을 휘둘렀다.
린은 차가웠다. 그녀는 클로에의 모든 공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고, 그녀의 어설픈 방어를 꿰뚫었다. 그녀가 딛고 있던 대지는 한순간에 사라졌고, 그녀는 혼자 싸워야 했지만, 기백과 자존심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밖으로 쫓겨났지만, 그 세계는 훨씬 더 넓었고, 세계는 홀로 열심인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앞에 그녀를 동경하는 소녀가 있다. 몇날 며칠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연습하며 가르침을 청했다. 그 열의에, 뜨거운 마음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보고 무(武)의 세계로 뛰어든 소녀를 볼 면이 서지 않는다.
땀과 투기(鬪氣)의 한가운데, 쇠와 나무에 뒤섞인 두 여인의 거친 숨소리 아래 진실된 두 영혼이 부딪쳤다. 그들은 서로를 벼리는 모루이자 망치가 되었고, 시간과 함께 더욱 단단해졌으며, 그들의 얼굴은 더 환하게 빛났다.
여인들의 아름다운 땀이 휴일의 조용한 아침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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