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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6/06 20:03:02 |
| Name | sisyphus |
| Subject | 재선거 집회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정치적 신경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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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정치에 노출된 탓일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됐다. 누군가 분노하면, 그 분노의 이유를 먼저 묻지 않는다. 누가 이득을 보느냐부터 따진다. 누가 배후냐, 어느 진영에 유리하냐, 누가 이 사태를 이용하려 하느냐를 먼저 계산한다. 그렇게 현대인의 뇌는 정치적 신경증에 가까워졌다. 모든 울분 뒤에는 의도가 있고, 모든 호소 뒤에는 배후가 있으며, 모든 집회 뒤에는 작전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을 보기 전에 프레임을 찾고, 고통을 듣기 전에 손익을 계산한다. 하지만 이번 재투표 요구 집회의 본질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참정권이 훼손됐다고 느꼈다. 그 억울함을 말하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게 전부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 가족이 진상을 밝혀 달라고 호소한다. 그 호소에 시민들이 함께한다. 이 단순한 세 문장조차 우리는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구에게 유리한 사건인가. 누가 이용할 수 있는가. 어느 진영에 불리한가. 해석이 슬픔보다 먼저 도착하고, 계산이 분노보다 먼저 앉는다. 우리는 정치인을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정치인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뇌를 갖게 됐다. 시민의 눈으로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거 참모의 눈으로 국면을 계산한다. 분노를 듣기보다 활용 가능성을 따지고, 억울함을 보기보다 진영의 손익표에 먼저 올린다. 이것이야말로 병든 정치의 증상이다. 집회의 목적을 묻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집회를 해석의 대상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중독이다. 시민의 울분을 곧바로 진영의 자산으로 계산하는 태도는 냉철함이 아니라 감각의 마비다.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며 먼저 배후부터 찾는다면, 이미 본질을 잃은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전략의 말이기 전에, 먼저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시민들이다. 정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설명하지 말고 들어야 할 순간이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소리는 거창한 쿠데타의 굉음으로만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투표권이 가볍게 취급되고, 그 분노마저 정치적 손익계산서에 올려질 때 조용히 무너진다. 재선거 요구 집회의 본질은 하나다. 참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느낀 시민들이, 그 침해를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이상을 덧칠하려는 순간 우리는 다시 병든 정치의 언어로 돌아간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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