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돌아와서, 다시.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침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생겼다. 등굣길의 공기는 점점 더 차갑게 가라앉아 겨울이 목전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루나가 맨션의 정문 앞에 섰고, 얼마 안 있어 린이 그녀의 뒤에 섰다.
"아시겠지만, 오늘이 제 호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동안 아침마다 일찍 저하고 같이 다녀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침마다 학교에 여동생 바래다주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끝난다니 좀 섭섭하기도 하군요. 마스터께 요청해서 기간을 좀 더 늘려달라고 해볼지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다른 일도 많으실 텐데, 저 때문에 일부러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은 클로에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녀석아, 오늘까지 꼴찌냐! 하루라도 좀 일찍 나와봐라, 쫌!"
바로 린의 구박이 이어졌지만, 클로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의 손을 잡고 흔들며 씩씩하게 정문을 나섰다.
"이야 2주 길었다아-. 오늘부턴 루나랑 같이 손잡고 가야징~."
"너 너 이녀석 이따가 두고보자......"
"하지만 학교 가기 싫은 건 모든 학생이 다 똑같다구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어깨와 팔을 천천히 돌리며 몸을 풀었다. 귀여운 녀석들. 그녀는 두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눈에 힘을 주었다. 유종의 미를 거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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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에 다가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클로에가 다시 교복을 입은 모습에, 몇몇은 큰 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팔을 크게 흔들었고, 몇몇은 두 손을 맞잡고는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데시벨 높네. 저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이 꺅꺅대는 소리는 같은 여자가 들어도 귀가 따가웠다. 일반적인 여자아이들은 저렇게 지내는구나. 린은 자신의 십 년 전을 떠올렸다. 학교에선 '당연히' 혼자였고, 돌아와서도 또래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아서 혼자 따로 수련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난 저 나이 때 혼자였네. 잠시 씁쓸한 추억에 잠겼던 그녀는 다시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클로에는 루나와 손을 잡은 상태로 다른 친구들에게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들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린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모든 상황이 안전함을 확인했다. 좋아.
갑자기 그녀의 몸이 앞서가는 두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오른손 소매에서 그녀의 철선이 튀어나왔다. 오른손에 잡은 부챗살의 끝이 클로에와 루나 사이, 정확히는 클로에의 뺨을 찢으려는 듯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챙-.'
두 개의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클로에를 치려던 철선이 방향을 바꿔 위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시선에 들어온 것은, 반쯤 비튼 몸과, 공격을 위로 흘려보낸 오른쪽 팔꿈치와, '히힝'하는,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소.
"꺗!"
뒤늦게 루나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클로에는 루나에게 향하는 모든 것들을 막겠다는 듯 주저앉은 루나의 등 뒤에 섰다. 오른팔 소매에서 철선이 튀어나오며 텅 빈-내지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린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찔렀다. 린은 가볍게 상체를 틀어 클로에의 철선을 피했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철선을 휘둘렀다. 몇 번인가 두 부채가 부딪치는 쇳소리가 들렸다. 린의 다리를 걸어 넘기려는 클로에의 후소퇴와 클로에의 머리를 노리는 린의 선풍각이 두 개의 큰 원을 그리며 주변의 공기에 차가운 파동을 퍼뜨렸다. 클로에가 일어나고 린이 착지하자,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들고 있던 철선의 끝으로 상대방을 겨눴다. 그들은 눈앞의 스승을-그리고 제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침 몸풀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옙! 루나를 너무 놀래킨 것 같긴 하지만요."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철선을 각자의 소매에 집어넣고, 왼손으로 오른손 주먹을 감싸쥐며 가볍게 포권으로 인사했다. 린은 손을 뻗어 루나를 일으켰고, 루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린의 이끌림에 끌려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루나 양,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어서, 까불기 좋아하는 제자 녀석 시험 좀 해봤습니다."
"네? 네. 네."
그리고 린은 클로에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기습 정도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네. 나쁘지 않다."
"히힝-."
"그렇다고 또 까불진 말고!"
또 시작이다. 린은 클로에에게 한 대 쥐어박으려는 포즈를 취하려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됐어. 이제 이 정도면 우리 귀여운 루나 양의 호위를 맡겨도 되겠다. 이제부터는 네 차례다. 루나 양을 다치게 하면 군단이 통째로 널 응징할 거다. 알지?"
"안심하십쇼! 루나는 제껍니다!"
팔팔한 게 아주 기운이 넘쳤다. 그래. 클로에는 원래 저런 아이였지. 린은 뒤로 돌아 손을 흔들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녀의 등 뒤로 등교하던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이 정도면 클로에를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학교에 소문이 퍼질 정도는 되겠지.
"클로에, 방금 그거 뭐였어? 어떻게 한 거야?"
린의 마지막 호위는 오랜만의 등굣길을 성대한 기념식으로 만들어 주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을 등굣길에 실제로 보게 되었다. 클로에의 친구들은 그녀와 루나를 빙 둘러싸며 커다란 원을 만들었고, 여학생들은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원 바깥쪽에서 그들을 구경하던 다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쑥덕거리면서 제 갈 길로 향했다. 클로에는 '에헴'하면서 콧대를 높이며 대기권을 돌파할 기세가 되었고, 루나는 그 옆에서 클로에의 뺨을 쿡쿡 찔러대며 '겸손해야지 겸손' 하고 엄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클로에의 '복귀전'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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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클로에의 방에는 평소와 전혀 다른, 묘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클로에는 자기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는, 침대의 쿠션을 들썩이거나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루나가 평소와는 다르게, 근엄한 얼굴로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눈동자는 클로에 대신 바닥을 보고 있었다. 방 안에서 때아닌 두꺼운 롱코트를 입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밤 산책이라도 가자는 걸까. 아니면 나랑 사귀어 달라는 고백? 뭐지? 루나가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난 애인은 남자였으면 좋겠는데?
"루나, 그렇게 안 어울리게 입고서는 웬일이야? 무슨 비밀 조직 같은 거라도 가입했어? 나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 아니면 이 미모의 언니에게 데이트 신청?"
클로에는 반쯤은 놀리는 듯한, 그리고 반쯤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바닥을 보고 있는 루나에게 '으흐흐흐' 하는 개구쟁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롱코트의 커다란 주머니에서 잘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 그녀에게 쥐여주고는, 그녀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물이야."
클로에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녀는 생일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오오오오!' 하는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포장지를 뜯었다. 다만, 상자를 열고 나온 내용물은, 그녀의 모든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직접 짠 것이 틀림없는 크림색의 하얀 스웨터와 머플러. 그녀는 눈을 깜빡이고는, 숨은 한 번 크게 내쉬었다.
"루나......"
루나는 여느 때처럼 그녀를 향해 빙긋이 웃어주고 있었다.
"내 마음이야. 겨울동안, 나라고 생각하고 따뜻하게 입어줬으면 좋겠어. 입어볼래?"
"응! 응!"
그녀는 서둘러 입고 있던 후드티를 침대 위에 벗어던지고 스웨터를 입었다. 털실의 부드러운 촉감에 안기자, 커졌던 눈이 더 커졌다. 그녀는 허리를 움직이고, 팔을 몇 바퀴 빙빙 돌리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스웨터를 구석구석 살폈다.
"신기하네...... 딱 맞아. 맞춤복으로 만든 것 같아. 편해. 내 몸 구석구석까지 훤히 다 알고 있는 것 같네."
"클로에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싶은 마음이야."
클로에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낚였다.
"오호라 그러시다...... 어째 같이 잘 때마다 내 몸을 막 더듬적거리더니만, 이거였구나! 솔직히 말해! 잠결에 그런거 아니지! 응큼해! 변태!"
"아, 아냐! 그건, 그건......"
루나는 급구 부인하려 했지만,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클로에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두 손을 들어올린 채로 희열에 찬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루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자아 그럼 이 언니도 그 보상으로 우리 루나 아가씨가 두꺼운 코트 속에 숨긴 엄청난 걸 좀 감상해야 되겠는걸?"
"익? 힉? 이힉......"
루나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움직여 코트를 입은 자신의 몸을 감싸안았지만, 린을 통해 혹독하게 단련된 클로에의 완력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클로에는 스스로를 감싸안은 루나의 팔을 강제로 펼쳤고, 그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크, 클로에?"
"짜잔-!"
클로에는 순식간에 코트의 단추를 모두 풀어버리고 여며진 앞섬을 펼쳤다.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아......"
루나가 안에 꽁꽁 싸매 숨겨두었던 크림색 스웨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클로에는 마치 몸이 굳은 듯, 입을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커다란 L자가 귀엽게 디자인된 작은 C자에게 살짝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에가 입고 있는 스웨터는, 강렬한 느낌의 커다란 C자가 조그마한 L자를 감싸고 있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그냥 의미없는 패턴인줄 알았는데.
"원래는 좀 더 차분하고 설레는 분위기에서 깜짝쇼처럼 보여주려고 했는데......"
"미안......"
"으응. 아니야. 괜찮아."
루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 클로에를 꼭 끌어안았다. 스웨터를 타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이 아이도, 나처럼 두근거리는구나.
"표현......하고 싶었어."
"응?"
"혈연은 아니지만, 나에게 클로에는 자매같은 사람, 으응, 아니, 그냥 친자매야.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그러니까, 가족. 나한테는, 딱 하나뿐인."
클로에가 손을 들어올려 루나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강한 근육과 부드러운 손길이 동시에 느껴졌다.
"루나......"
"고마워. 태어나줘서. 내 곁에서 항상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클로에가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못 왔을거야."
가족. 그녀가 찾아 헤매던 단어. 잃어버린 뒤, 그렇게나 만들고 싶었던 것. 그리고, 그녀는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서 똑똑히 들었다.
"사랑해. 내 하나뿐인 가족."
루나의 속삭임과 함께, 클로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사실 고마운 건 나야. 고마워. 이런 천덕꾸러기를 받아줘서. 이런 천방지축에 민폐덩어리를 받아줘서 고마워.
"이씨...... 이러면 나 운단 말야...... 난 울기 싫다구......"
"울고 싶으면 내 품에서 맘껏 울어. 그래도 돼. 클로에는 내 소중한 가족이니까. 루나는 클로에가 좋아."
"바보......"
클로에는 루나의 품에서 계속 훌쩍였고, 루나는 클로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밤은 조용했고, 방에는 오직 두 소녀의 숨결만이 존재했다. 두 소녀는 서로의 머리를 감싸안고, 이마를 마주대고, 서로의 따스함을 느꼈다. 새로 만들어진 작은 가족의 안에 두 개의 스웨터가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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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기념으로 클로에 방에서 자볼까?
그럴래? 그래도 침대가 좁아서 불편할텐데......
그래도 하루 정도는 괜찮을거야. 이리와. 언니가 꼭 안아줄께?
어어, 루나 그건 내 대사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