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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6/23 17:52:12 |
| Name | Daniel Plainview |
| Subject | 개인적으로 미식축구를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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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먼저, 규칙 몇 가지.
미식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규칙을 짚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규칙들을 모르면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전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거든요.
미식축구의 공격은 한 팀에게 4번의 기회, 즉 4번의 '다운(down)'을 줍니다. 1st down에서 시작해서, 그 다운이 시작된 지점으로부터 10야드를 전진하면 공격 기회가 다시 4로 리셋됩니다. 이게 바로 '퍼스트다운'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4번의 다운 안에 10야드를 가지 못하면, 공격권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상대에게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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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위 사진을 봅시다. 공격 시작선은 파란색으로 되어 있고, 파란색으로부터 10야드 기준선은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공격팀이 공을 가진 상태로 저 주황 선을 넘는 데 성공하면 공격 기회가 4번으로 리셋됩니다. 만약에 첫 번째 공격에서 3야드를 전진했다면, 3번 동안 7야드를 전진해야 합니다. 반대로 첫 번째 공격에서 뒤로 4야드를 후퇴했다면, 3번의 공격 기회 동안 14야드를 전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격권을 유지하면서 필드 끝까지 가면 터치다운을 얻고 보통 7점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 공격권을 유지한 채 전진하는 모든 시도를 드라이브(drive)라고 부르고요.
그런데 드라이브에서 실제로는 4번을 다 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4번째 다운(4th down)에서 실패하면 상대팀에게 아주 좋은 필드 포지션을 그냥 넘겨주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4th down에 다다르면 공격을 강행하는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1) 골대까지 거리가 가까우면 필드골(field goal)을 시도해서 3점을 확정 짓고, (보통 상대 진영 35야드 지점 정도까지 들어왔을 때)
2) 거리가 멀면 펀트(punt)를 해서 공을 멀리 차버리고 상대에게 불리한 위치에서 공격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실질적으로 공격 측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3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1st, 2nd, 3rd down 안에 10야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드라이브는 거기서 끝나버리는 셈이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3점으로는 역전이 힘들다거나...)이 오면 이번 드라이브에서 0점만 얻는 위험을 감수하고 4번째 공격을 하게 되는데, 이를 고포잇이라 부르며 모 아니면 도의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3rd down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들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다운에서 실패하면 사실상 공격이 끝난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이 써드 다운에서 퍼스트 다운을 갱신했느냐, 아니냐가 드라이브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3rd down 컨버전(전환)'이라는 말은 바로 이 마지막 기회에서 10야드를 만들어내 다운을 다시 1st down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축구는 약팀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축구의 룰은 단순합니다. 90분 동안 공을 더 잘 다루는 쪽이 공을 더 오래 갖고, 서로 패스하면서 전진하고, 마지막에 골을 더 많이 넣는 쪽이 승리합니다. 코치는 하프타임에 한 번, 그리고 교체 카드 몇 장으로만 개입할 수 있을 뿐, 경기가 흘러가는 동안에는 그저 사이드라인에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플레이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흐름은 자연스럽게 강팀 쪽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이게 겉으로 보기엔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약팀에게 꽤 가혹한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팀이 볼 점유율 65%를 가져간다면, 약팀은 90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수비 진형에 갇힌 채로 보내야 하는 것이지요. 약팀을 응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우리 팀이 공격할 기회"라기보다는 "버텨야 하는 시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골이 나느냐 안 나느냐를 떠나서, 애초에 공격권 자체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농구와 야구는 이 지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농구는 한 팀이 득점하거나 턴오버를 내주면 곧바로 공격권이 넘어갑니다. 24초 안에 슛을 쏘지 않으면 강제로 공격권이 바뀌고요.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는 상황 외에는 연속해서 공격을 하지 못하죠. 야구는 이닝마다 공격과 수비가 기계적으로 교체됩니다. 강팀이든 약팀이든, 한 경기에서 받는 공격 기회의 '횟수'는 거의 비슷하게 보장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농구와 야구에서 승부를 가르는 건 "누가 더 많이 공격했나"가 아니라, "같은 기회에서 누가 더 효율적으로 점수를 냈는가", "누가 체력적으로 더 오래 버텼는가", "누가 턴오버를 더 만들어냈는가" 같은 것들이 됩니다. 오펜시브 레이팅과 디펜시브 레이팅이 합쳐져서 승부가 결정되는 셈입니다. 기회의 양은 같지만, 기회의 질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미식축구는 강팀과 약팀에게 동등한 드라이브를 줍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왜 굳이 약팀과 강팀이 같은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맞습니다. 미식축구에서도 강팀이라고 해서 공격 기회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규칙이 없습니다. 펀트를 하든, 터치다운을 하든, 필드골을 하든, 턴오버가 나든 — 어떤 식으로든 한 팀의 공격 시퀀스(드라이브)가 끝나면 공은 곧바로 상대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즉 강팀과 약팀은 거의 동수의 드라이브 기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드라이브 안에서 몇 번의 플레이가 허용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앞서 설명한 퍼스트다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터치다운이 결과라면, 퍼스트다운은 그 결과로 가기 위한 '생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NFL 평균 3rd down 전환율은 38~40%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좋은 3rd down 전환율은 보통 38%에서 42% 사이로 평가되고, 엘리트 팀들은 종종 45% 이상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통계 분석에 따르면 평균적인 3rd down 전환은, 다른 정보 없이 그것만으로도 약 1.84점의 기대 득점 가치를 갖는다고 합니다. 환산해보면, 한 팀이 같은 횟수의 3rd down 기회에서 상대보다 5번 더 많이 전환했을 경우 약 15점 차이로 승리할 것으로 예측될 만큼, 그 가중치가 상당히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식축구는 "득점"이라는 최종 결과 이전에 "생존(전진)"이라는 중간 관문을 끊임없이 통과해야 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팀과 약팀은 같은 수의 드라이브를 받지만, 그 드라이브 안에서 누가 3번의 기회 안에 10야드를 더 잘 만들어내느냐로 승부가 갈리게 됩니다. 공정한 출발선과, 그 출발선 안에서의 명백한 실력 차이가 공존하는 구조라는 것이지요.
3. 축구의 즉흥성은 오히려 분산을 줄이는 것 같습니다
축구가 코치의 개입 없이 흘러간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선수 개개인의 즉흥적/임의적 판단에 승부가 크게 의존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즉흥성이라는 게 팀 단위로 합쳐지면 오히려 분산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A팀 윙어와 B팀 풀백의 1대1 매치업만 떼어놓고 보면 7:3 정도로 격차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명이 모여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게 되면, 한쪽의 개인 기량 차이는 다른 선수들의 커버, 압박, 대인마크로 상당 부분 상쇄되곤 합니다. 한 명이 뚫려도 커버 디펜더가 있고, 패스 길이 막히면 다른 루트로 우회하니까요. 그 결과 팀 대 팀의 격차는 개인 매치업의 격차보다 훨씬 좁아져서, 강팀과 약팀의 경기라 해도 흐름 자체는 55:45 정도로 수렴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지요.
특히 공격하는 쪽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상대 진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60:40 정도로 기량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쉽게 그걸 공략해 내기 어렵습니다. 계획되지 않고 임의적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판단이 상대의 판단을 계속해서 이기면서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패스가 끊기거나 공격이 차단되면 다시 공을 걷어내고, 공격팀은 하프라인 근처에서부터 다시 빌드업을 시작합니다.
결국 이게 낮은 득점 분포로 이어집니다. 90분 동안 양 팀 합쳐 4골이 나오면 이미 "다득점 경기"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즉흥성과 임의성에 기반한 스포츠에서는, 모두의 예측을 동시에 뚫는 강력한 패턴 플레이가 나올 확률 자체가 낮아진다는 것이죠.
4. 미식축구는 코치들의 체스입니다.
반대로 미식축구는 거의 모든 플레이가 사전에 설계된 패턴 플레이입니다. 각 팀은 한 번의 공격이 끝나면 40초의 작전타임을 부여받고, 이 작전타임 동안 어떤 플레이를 할 지 결정합니다. 각 팀은 시즌 내내 수백 개의 플레이가 담긴 플레이북을 운영하고, 매 공격마다 코치(주로 오펜시브 코디네이터나 디펜시브 코디네이터)가 정확히 무슨 플레이를 할지 결정해서 쿼터백에게 전달합니다. 이건 즉흥이 아니라 설계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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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된 플레이의 가장 큰 특징은, 우승열패가 크게 갈린다는 것입니다. 즉흥성과 임의성으로는 55:45, 많아야 60:40 정도라면 미식축구에서 이번 플레이의 승패는 80:20, 90:10을 넘나듭니다. 특히 써드다운 플레이에서, 양 팀은 각자 최선의 공격/수비 패턴을 꺼내들곤 합니다.
특히, 선수의 기량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상대의 패턴을 미리 읽어내면 거의 무조건 카운터가 가능해집니다. 상대가 어떤 런 플레이를 즐겨 쓰는지, 특정 포메이션에서 어떤 패스 루트를 선호하는지를 미리 파악한 디펜스는 그 순간 공격을 거의 무력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인터셉션이나 쌕(sack, 쿼터백을 패스 전에 잡아내는 것)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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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슈퍼볼 48이 정확히 이런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덴버 브롱코스는 그 시즌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606점)과 최다 터치다운(76개) 기록을 보유한,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공격력을 가진 팀이었습니다. 쿼터백 페이튼 매닝은 그 시즌 패싱 야드(5,477야드)와 터치다운(55개) 리그 기록을 세운 MVP였고요. 하지만 시애틀 시호크스는 2주간 브롱코스의 공격 패턴을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시호크스 디펜시브 엔드 마이클 베넷은 그 긴 분석 기간 덕분에 "많은 패턴들을 파악했다"고 밝혔습니다.
시호크스는 매닝이 즐겨 쓰는 하이-로우 콘셉트, 옵션, 섈로우(shallow) 드라이브, 스틱 루트 같은 특정 루트들을 미리 봉쇄했고, 커브, 컴백, 코너, 페이드 루트를 차단해 매닝을 계속 체크다운(짧은 안전한 패스)으로만 유도했습니다. 결과는 43대 8, 역대 최고 공격력으로 평가받던 팀이 1쿼터 동안 퍼스트다운 0개, 7번의 플레이로 11야드 전진이라는 처참한 스코어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5. 그래서 득점이 더 많이 나옵니다.
플레이당 코치의 개입 비중이 크다는 건, 양 팀 사이의 우열이 더 크게 벌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축구처럼 분산이 줄어들어 55:45로 수렴하는 구조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설계하고 더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는 구조라는 것이지요. 미식축구에서 골에 해당하는 건 터치다운일 것입니다. (약 7점) 터치다운을 1골, 필드골을 0.5골 정도로 환산해보면, 양 팀 합쳐 10골 안팎이 나오는 경기가 흔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건 미식축구가 4대 스포츠 중 실제 액션 비율이 가장 낮은 종목이라는 점입니다. 야구가 약 20분으로 가장 근접하고, NBA, NHL,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모두 평균 45분 이상의 실질 액션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미식축구가 득점이 가장 많이 나는 구조를 가진다는 건, 결국 득점이 '얼마나 많이 뛰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설계했는가'에서 나온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패턴 플레이가 많을수록, 코치들의 영향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코치 한 명의 부임으로 팀의 전력이 급상승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OC였다가 시카고 베어스의 HC로 이적한 벤 존슨(공격력 26위→12위),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DC였다가 시애틀 시호크스의 HC로 가면서 수비로 우승한 마이크 맥도널드 등(전임 피트 캐롤 28위→2위). 뛰어난 코치들이 팀을 맡을 때마다 팀의 전력은 널뛰기를 하죠. 반대로 우승팀인데도 불구하고 OC 유출로 갑자기 성적이 급 하락한 필라델피아 이글스 같은 경우도 있구요. (공격력 3위 → 19위)
결론은 하나입니다. 미식축구에서는 코치의 한 수가, 선수 개개인의 기량 차를 압도할 만큼 결과를 크게 흔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패턴을 읽었느냐, 시간 관리를 제대로 했느냐가 점수판의 격차로 그대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이는 한 플레이의 밀도를 크게 끌어올립니다.
반대로 축구는 플레이 자체는 90분 내내 일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승부가 결정될 것인지, 지금이 중요한 상황인지 아닌지, 애매합니다. 선수들의 기량 문제는 아닙니다. 관객 입장에서 지금이 바로 중요한 순간인가를 미식축구만큼 직관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슈퍼볼 54에서의 WASP 플레이를 보면, 4쿼터 7분 남은 상황, 10점차(축구로 따지면 1.5골)로 끌려다니고 있는 상황, 치프스는 3rd&15 상황에 몰립니다. 무조건 이번에 15야드 이상의 빅플레이를 따내야 공격권을 유지하고 0.5골 차이로 따라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꺼내는 작전 하나가 해당 슈퍼볼의 승패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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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90분 동안 낮은 밀도의 축구를 계속 보는 것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60분 중에 실제 플레이는 20분밖에 하지 않는 미식축구를 더 선호할 것입니다. 저는 집중력이 낮은 편이라 미식축구 쪽이 더 마음이 갑니다.
6. 진짜 경기는 허들에서 시작된다.
미식축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한 플레이는 5초 안에 끝나버리죠. 그리고 다음 플레이까지 길게는 40초의 작전 시간(플레이클락)이 주어지지요. 피지컬한 격렬함을 기대하고 보기 시작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40초 작전타임 하고 5초 딸깍"하는 패턴의 반복으로만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미식축구의 실제 플레이 시간은 꽤 짧은 편입니다. 평균적인 NFL 경기는 약 18분의 실질적인 경기 진행 시간을 갖고 있고, 그 18분 안에 100개 이상의 플레이가 밀집되어 있다고 합니다. 더 오래된 2010년 조사에서는 이게 11분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60분짜리 경기에서 실제로 공이 움직이는 시간은 전체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 지점이 미식축구에 빠지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큰 요인인 것 같습니다. 미식축구를 즐기는 사람과 지루해하는 사람을 가르는 건, 결국 이 5초와 40초의 간극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의 문제인 것 같거든요. 피지컬한 액션 자체에 몰입하는 사람에게는 5초의 플레이가 전부고, 나머지 40초는 그저 죽은 시간으로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코치의 자리에 스스로를 놓고 "이번엔 무슨 작전을 들고 나올까"를 예측하면서 허들(작전 회의)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 40초가 사실상 진짜 게임이 됩니다. 5초의 플레이는 그 40초 동안 짜인 수읽기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무슨 플레이를 해야 하는가'는 단순히 현재 공격과 남은 야드에만 영향받지 않습니다. 꽤나 복잡한(하지만 알고 보면 쉬운) 시간 규정 역시 NFL의 플레이에 영향을 줍니다. 일명 타임 매니지먼트(Time Management)라 불리는데, 다운이 필드 안쪽에서 종료될 경우에 공격팀은 40초씩 시간을 삭제시킬 수 있습니다. (작전타임이 40초니까) 따라서 이기고 있는 팀이 퍼스트다운을 한 차례 갱신할 때마다 공격권 3번을 소모해서 시간을 100초 남짓 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기고 있는 팀 입장에서는 퍼스트다운 갱신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얼마나 태울 것인가. 경기 종료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팀이 얼만큼의 시간을 태운 채 상대에게 기회를 내줄 것인가를 같이 고려하면서 게임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승패는 단순히 이번에 터치다운이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에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딱 3야드 전진만으로도 게임이 터질 때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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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역전극으로 유명한 슈퍼볼 51입니다. 28-3으로 이기고 있다가 28-20까지 추격당한 상황에서, 애틀랜타 팔콘스는 상대 진영 30야드까지 전진에 성공합니다. 남은 시간은 4쿼터 4분. 2nd&11. 이 상황에서 최선은 공격권 2번을 모두 러싱에 쓰면서 시간을 80초 태우고, 필드골을 시도해 점수를 2포제션 차이로 벌리는 것입니다. 1 드라이브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점수는 8점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팰컨스의 OC 카일 섀너한은 말 그대로 미친 판단을 내립니다. 패스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뒤에서 태클당하면서 필드골 포지션에서 밀려나고 만 것이죠. 팰컨스는 이번에 전진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안정적으로 시간을 태우고, 점수를 조금이라도 얻어서 상대방에게 최소 2번의 공격권이 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는데, 퍼스트다운 갱신에만 집착하다 대참사가 나고 맙니다. 결국 써드다운에서도 컨버전에 실패한 팰컨스는 펀트로 공격권을 내주게 되고 28-28로 동점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같은 공격 포메이션에서 서로 다른 패턴 플레이, 상대를 기만하는 여러 프리 스냅 모션 등이 합쳐져서 1개의 드라이브를 완성합니다. 다 모아 놓으면 양팀 코치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마치 서로 바둑을 두듯이요.
7. 점수가 쌓이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 단계적 누적과 일발 역전
야구와 농구는 득점이 단계적으로 쌓이는 구조입니다. 농구는 2점, 3점 단위로 차곡차곡 더해져서 최종적으로 100점 내외에서 승부가 결정되지요. NBA 팀의 평균 득점은 110점대로, 한 경기에 양 팀 합쳐 200점 이상이 나옵니다. 야구는 더 극단적인 편인데요. MLB 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점대 초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4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자를 1루, 2루, 3루로 차례차례 쌓아가야 합니다. 한 점을 내려면 최소한 누군가 베이스를 다 돌아야 하고, 큰 점수 차를 뒤집으려면 여러 이닝에 걸쳐 '빅이닝(scoring run)'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이 구조의 본질은 결국 점수가 누적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10점 차로 지고 있다면, 그 10점을 한 번에 메울 방법이 없습니다. 농구도 마찬가지인데, 한 포제션에서는 최대 4점밖에 줄일 수 없습니다. (그나마 3점 바스켓 카운트라는 희귀한 경우, 플래그런트 파울은 제외) 농구나 야구에서 점수 차를 줄이려면 여러 번의 성공적인 공격을 연속으로 쌓아가야 합니다. 그 결과 한 장면, 한 플레이가 주는 쾌감은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홈런이나 덩크슛도 그 자체로 경기를 끝내지는 못하니까요. 다음 이닝, 다음 쿼터가 남아있고, 상대도 다시 누적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미식축구는 점수 체계만 보면 사실 축구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터치다운(6점, 보통 추가 1점을 더해 7점)을 1골, 필드골(3점)을 0.5골로 환산해보면, 38대 35로 끝난 경기는 대략 5.5골 대 5골짜리 경기가 됩니다. 축구식으로 보면 이건 상상하기 힘든 다득점 게임이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는 점수가 쌓이는 단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터치다운 하나를 만드는 데 이론적으로 필요한 최소 플레이 수는 1번입니다. 자기 진영 1야드 라인에서도 단 한 번의 롱패스로 99야드를 전진해 터치다운을 만들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즉 미식축구에서는 점수 차가 누적이 아니라 한 번의 사건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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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만드는 차이는 꽤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2018년 NFC 디비저널 플레이오프, 미네소타 바이킹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경기를 한번 보겠습니다. 세인츠가 24-23으로 앞선 채 경기 종료 25초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세인츠의 승리로 보였지요. 그런데 경기의 마지막 플레이에서 바이킹스 쿼터백 케이스 키넘이 27야드 패스를 던졌고, 세인츠 세이프티 마커스 윌리엄스가 태클에 실패하면서 와이드리시버 스테판 디그스가 그대로 엔드존까지 61야드를 달려 터치다운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단 한 번의 플레이로 24-23이 31-23으로 뒤집힌 것입니다. 'Minneapolis Miracle'로 불리는 이 장면은, 단 하나의 실수와 단 하나의 플레이가 경기 전체의 결과를 바꿔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야구나 농구에서는 구조적으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농구에서 24초 안에 아무리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내도 최대 3점이고, 야구에서 한 타석에 아무리 잘 쳐도 만루 홈런이라 해도 4점에 그치니까요. 미식축구는 양 팀 모두에게 "단 한 번의 플레이로 점수 차를 뒤집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늘 열려 있는 것입니다. 점수 차가 누적이 아니라 사건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어느 쪽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바로 야구·농구의 '단계적 쾌감'과 미식축구의 '순간적 반전'을 가르는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8. 그래서 하이라이트도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농구 하이라이트는 사실 만들기가 꽤 까다롭습니다. 한 경기에 양 팀 합쳐 100회 가까운 공격 기회가 오가는데,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승부의 추가 기울기 시작했는지를 짚어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점수 차는 누적된 효율의 결과물이라서, "이 장면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고 단언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축구 하이라이트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편입니다. 골이 터지기 전까지, 양 팀의 즉흥적 판단들이 수없이 충돌하고 무산되는 과정이 있으니까요. 골 장면만 따로 떼어보면, 그게 60:40으로 계속 밀리던 흐름 끝에 40%의 확률을 뚫고 터진 골인지, 아니면 누군가 미끄러져서 순간적으로 80:20을 만들어버린 우연의 산물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축구는 'missed opportunity'(놓친 기회)가 압도적으로 많은 스포츠라서, 골 장면 자체가 90분 전체의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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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미식축구는 결정적 장면을 꼽기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NFL이 직접 제공하는 'Condensed Game'(경기 전체를 실제 플레이만 모아 압축한 영상, 보통 40분 안팎)을 보면 거의 모든 플레이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고, 어떤 플레이가 왜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는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3rd down에서 어떤 블리츠가 들어왔고, 그게 왜 통했는지, 혹은 왜 막혔는지가 하나의 완결된 의사결정 단위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9. 미식축구의 진수는 결국 4쿼터 마지막 5분.
미식축구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경기 막판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코치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선택지가 한꺼번에 펼쳐지거든요.
리드하는 팀은 러닝 플레이로 시계를 흘려보내는 전략을 쓸 수 있습니다. 공을 들고만 있어도 시계가 흐른다는 게 핵심이지요. 농구나 야구라면 이게 불가능합니다. 농구의 샷클락은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24초는 24초일 뿐이고, 야구는 이닝과 아웃카운트라는 절대적 단위로 움직이니까요. 그런데 미식축구는 공을 소유한 쪽이 의도적으로 클락을 죽이는 게 가능합니다. 그래서 트레일링 팀은 그 시간이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타임아웃을 아껴뒀다가 정확한 순간에 써야 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슈퍼볼 51에서 정확히 드러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애틀랜타가 플레이클락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것이 패트리어츠에게 추가 공격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분석은, 단순히 선수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운용했는가의 문제였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몇 분 동안 "내가 한 번 더 공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그 이전 모든 다운에서의 클락 운용과 타임아웃 관리가 누적된 결과인 것이지요.
이 쫄깃함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농구의 막판은 누가 더 많은 소유권을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이고, 야구의 막판은 누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느냐의 문제입니다. 반면 미식축구의 막판은 시간 그 자체가 자원이 되어서, 공격권을 가진 쪽과 갖지 못한 쪽 사이에서 끊임없이 거래되는 무언가가 됩니다.
아마도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일 빌스@치프스 디비저널 라운드의 마지막을 보면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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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타들어가고, 양쪽 다 서로 1골을 뻥뻥 집어넣는 현장이지요.
10. 결론
결국 이 모든 차이는 하나로 모이는 것 같습니다. 축구가 즉흥의 스포츠라면, 미식축구는 설계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흥은 분산을 줄이지만, 설계는 오히려 분산을 키웁니다. 분산이 커진다는 건 우열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고, 그 우열이 매 허들마다, 매 3rd down마다, 매 타임아웃마다 새로 시험대에 오른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누적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점수가 아니라, 사건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스코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안전해지는 누적된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의 플레이로 무너질 수 있는 점수 차. 끊임없는 재시험, 5초의 실행과 40초의 수읽기가 반복되는 구조.
매 플레이마다 우승열패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전술에 이유가 존재하고,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또한 구조적으로 한 번에 경기 총점의 20~30%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야구/농구와 다르게 극단적인 매력을 갖는 스포츠. 이게 미식축구를 가장 역동적인 스포츠로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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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스포츠 통틀어 심볼 고트 뉴올리언스 세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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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UHhB1C-5ZY?si=FTL4n-k8Cyqr5Mpd
위는 드립이고 올해는 필리망해서 그런가 투시푸시 방지법 이야기가 없네요? 보는맛 감퇴 고트전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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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해석되어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분쟁이 유발됩니다.
해당 단어의 사용을 피해주십시오.
홍차넷에는 정체성 공격과 관련한 규정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https://redtea.kr/?b=8&n=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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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입장벽은 뭐 엄청 태클 빡셀 줄 알았더니 조금 투닥거리다가 끝나고 광고는 뻔질나게 나오고 하는 거죠. ㅋㅋ
갠적으로 미식축구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시간관리'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포츠를 생각해보면, 턴제 스포츠(야구나 네트를 쓰는 종목들)는 시간 제한이 없죠. 반대로 시간 제한이 있는 스포츠는 경기가 거의 끊김없이 연속적으로 공수가 전환되죠(축구 농구 등). 근데 이 미식축구라는 놈은 거의 완벽한 턴제 스포츠인 주제에 시간 제한이 있는 종목이죠. 그래서 약팀이 강팀 상대로 TOP을 늘리는 전술을 쓸 수도 있고, 경기 막판 이기는 팀은 러싱, 지는 팀은 패싱, 그마저도 사이드라인쪽으로 던지냐 가운데로 던지냐가 결정되죠. 타임 언제 불러서 시계를 멈추냐가 감독의 역량이 되기도 하구요. 그나마 농구가 비슷한데 농구는 개별 턴의 제한시간이 매우 짧고 공수교대도 잦아서 미축의 그 맛이 안 나죠 ㅎㅎ
진심 홍차넷 단관하면 잘 설명해줄 수 있는데... 누가 월요일 아침 9시에 단관을 할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
가장 큰 단점은 기본 시간대가 한국 기준 월요일 새벽이란거, 그러니 우리 모두 일요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이어지는 ncaa 를 봅시다.
갑자기 생각난 1경기 추가해봅니다.
https://youtu.be/iOwSSXmKJM8?si=YuQpABk9fdMHYkRc
슈퍼볼. 4쿼터, 경기 종료까지 1분 50초, 3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
이번 드라이브에 필드골 레인지까지 전진해야만 하는 상황.
40초의 작전타임도 다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는 상황.
플레이가 필드 안에서 끝날 때마다 줄어드는 시간.
그러면서 써드다운에 몰리고, 상대 수비가 미친듯이 밀고 들어와도 패스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는 것.
마지막 세 드라이브 모두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iOwSSXmKJM8?si=YuQpABk9fdMHYkRc
슈퍼볼. 4쿼터, 경기 종료까지 1분 50초, 3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
이번 드라이브에 필드골 레인지까지 전진해야만 하는 상황.
40초의 작전타임도 다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는 상황.
플레이가 필드 안에서 끝날 때마다 줄어드는 시간.
그러면서 써드다운에 몰리고, 상대 수비가 미친듯이 밀고 들어와도 패스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는 것.
마지막 세 드라이브 모두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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