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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03 21:21:16
Name   Bergy10
Subject   술.
어제 베프랑 그놈 집에서 소주 9병을 나눠 마셨습니다.
원래 오늘 좀 늦게 보려고 했는데, 골프장에 영업뛰러 가야 될 일이 생겼다나요.
그래서 맥주나 한잔 할까 했는데 갑자기 집으로 오래요. 소주 땡긴다면서.


제가 소개시켜준 동갑내기 그놈 와이프, 제수씨는 우리 둘이 만나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렸을때처럼 만나서 농구하고 축구하고 야구하고 당구치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나이들더니 술만 엄청 마셔댄다고.
거기에 나이 먹을만큼 먹은 인간들이 만나기만 하면 애들처럼 싸워댄대요.
둘이 소주 마실거면 자기 보는 앞에서 마시래요. 나이든 아재들 주제에 바깥에 엄하고 시끄럽게 돈쓰면서 돌아다니지 말고.


여하튼, 저녁때 퇴근하자마자 갔는데, 아무래도 제가 조금 더 마신거 같아요.
그놈은 중간중간 딸내미들이 와서 애교 부리면서 못마시게 말렸는데, 저는 그때마다 말없이 자작을 했어요.
그걸 보면서 원래 애들한테 주려던 용돈을 줄까 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결국엔 줬어요. 앙큼한 녀석들 같으니.  
내가 니들 기저귀도 갈아줬었는데, 아빠는 술 약하지만 삼촌은 술 잘마시니까 마셔도 괜찮잖아는 뭐니.
그래서 지들 아빠가 어릴때 한 댓병 마시고 제수씨 때문에 주사부린거 얘기를 해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어요. 니들 아빠가 어떤 인간인데...
결국 막판에 그놈은 테이블에 이마를 박으며 잠들었는데, 저는 괜찮아서 마지막 남은 한병을 혼자 비웠어요.
마지막 안주가 괜찮더라구요. 뭐 제수씨 말로는 무슨 요리 프로그램에서 성시경이 만들었던 중국식 바지락 볶음이라나...


대학 들어갈때 주량이 소주 한병에 한잔만 추가로 마시면 치사량이었는데,
거기서 6년 지나니까 소주 4병 반이 되어 있었어요. 사람같지도 않은 선배들 덕분에.
그리고 거기서 또 한 3년 지나니까 저는 소주 5~6병을 혼자 마시는 괴물이 되어 있었죠.
위스키도 한병 반 정도면 별 문제없이 마실수 있더라구요. 거기에, 주변에 그렇게 주량이 늘어난 괴물같은 동기들이 꽤 있었어요.


지금도 마시라 그러면 그렇게 마시는건 끄떡없어요.
문제는, 예전하고 다르게 그 정도 마시면 다음날 죽어요. 정말 살아있지 못해요.
하루종일 좀비처럼 쓰러져 있다가 물만 계속 마셔대죠.


원래 오늘 광화문을 나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어제 집도 열두시 전에 들어와서 빨리 잤죠.
사실 같이 사는 여자가 그놈 집에 저를 데리러 와서 그 시간에 돌아올수 있었긴 했지만. ㅋ
그런데, 오늘 오후 세시 좀 넘어 겨우 일어났더니 머리랑 속은 아파 죽겠다가 이제 좀 살겠고, 그 여자는 삐져서 그때부터 계속 말도 잘 안하고 있어요.


근데, 이 글쓰기 조금 전에, 와이프가 자기도 술이 땡긴데요.
자기가 먼저 술먹자는 말은 절대 안꺼내는 여자가, 갑자기 청주랑 소주에 회를 사오겠다면서 나갔어요. 저를 죽여버릴 작정인것 같아요.
그 사람이 술을 안좋아하긴 해도, 주량은 절대 약하지 않아요. 이런 상태의 저는 충분히 죽이고도 남을 정도에요.


조금 있으면 들어올거에요. 저 술도 좋아하고 이 여자도 좋아하는데 지금 둘다 너무 무서워요.

...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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