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5/09 21:23:01수정됨
Name   시뮬라시옹
Subject   불나방(중_b)
[전편들]

[추천 배경음악]

========================================



"있지 나 요즘.."으로 첫 운을 뗀 친구 A는 자신의 근황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중학교 시절 친구인데, 공부를 썩 잘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애초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와 취미가 같았기에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의 취미는 IT제품에 대해 서로 아는 지식을 나누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geek 하지만 당시에 우리는 그 시간을 즐기곤 했다.

그런 녀석이 나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문과를 가고 결국엔 체대에 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녀석이 겪은 일들과 감정들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을 겪고 그가 해낸 일들은 내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내 마음속 감정들과 같이 차갑지 않았다.

그것들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내면에 충돌하며 그 운동에너지를 그에게 주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그를 친구로 둔 내가 자랑스럽고, 그에게 칭찬의 따뜻함을 건네주었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말과 물음들에 대충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는 이내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자리를 떠 밖으로 나갔다.

띠리링- 출입문이 소리를 내며 나는 나갔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 이해할 수 없다는, 다소 좋지 않은 종류의 표정이 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기분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빠르게 구석으로 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하.....
깊게 한숨을 내쉰다. 난 어떤 구역감을 느꼈다. 그 자리를 차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그때의 나는 짙은 패배감에 젖어있었다. 그 패배감이 정당하다면
분명 그가 나보다 더 패배감을 느끼고 있어야 할 텐데, 아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대학 서열의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 고등학교 생활이란, 정말이지 목표 하나만 보고 살아왔기에, 그 과정에서 무수히 겪은
수많은 일들, 특히 가정사와 학업을 병행하며 내가 흘린 수많은 땀과 눈물 때문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내가 얻어낼 행복과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를 곱씹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가 다 타들어가고,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는 A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넌 왜 그렇게 힘이 넘쳐? 뭐가 그렇게 널 만들어? 그런 게 다 재밌어?"였다.
우습게도 이러한 질문은 고등학교 때 내가 들은 말들인데 지금의 내가 그에게 던지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에게 그는 답했다.

"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데... 뭐.. 넌 사는데 이유가 있냐.. 그냥 살아있으니 해보는 거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리 너무나 뻔한 답이었다.

"아니.. 그건 그런데.. 아니다.."
나는 체념했다. 그에게서 어떠한 답을 원했는데....
도대체 뭐가 정답이냐고..난 왜 살아야하니?
지난 내 3년이 정답이니 지금의 네가 정답이니 누가 정답이니

그렇게 그와의 술자리가 끝나갔다.
그를 횡단보도까지 배웅하고는 옆의 공터로 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씨.. 벌써 몇 대째인 거지.. 하.. 작작 펴야 하는데...
하며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고는 옆의 가로등 불빛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나방들이 있었다. 등에 왜 끌리는지도 모른 체, 그것을 향해 끝없이 들어가려 덤벼드는 나방들.
그러다가 힘이 풀리면 죽곤 하는 녀석들. 그 녀석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한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담배의 니코틴이 내 혈관을 비집고 들어가는 이 순간에도 내 정신은 멀쩡했다.
나는 순간 잠시 과거의 나로 점프했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370 창작[35주차] 고래 1 헤베 16/07/27 5347 0
    4863 일상/생각발렌타인데이에 관한 짧은 썰 11 열대어 17/02/14 5347 3
    8689 일상/생각전여자친구의 현남친의 지인이 된 이야기 1 Xayide 18/12/27 5347 0
    11060 게임10월 17일 토요일 21시 FPSRPG 타르코프 한중일 경기 11 트린 20/10/16 5347 1
    11219 요리/음식고구마 스프를 만들어봅시다~! 13 whenyouinRome... 20/12/13 5347 14
    11327 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9) - 성추행, 젠더 표현, 그리고 권력 (2) 3 호라타래 21/01/09 5347 9
    3903 방송/연예9월 갤럽 예능 선호도순위와 코멘트 3 노드노드 16/10/14 5348 0
    8672 방송/연예2018 연예대상 KBS 6 헬리제의우울 18/12/23 5348 2
    10995 게임[LOL] PCS 리그 전체의 승리!! - 플레이인 1일차 후기 1 Leeka 20/09/25 5348 3
    3837 일상/생각[펌] 시대로부터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45 기아트윈스 16/10/06 5349 12
    6011 일상/생각존경하는 친구 11 OshiN 17/07/26 5349 27
    11354 일상/생각오뎅탕에 소주 한잔 하고싶다.. 5 v.serum 21/01/20 5349 4
    8169 스포츠180904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최지만 시즌 6호 솔로 홈런) 김치찌개 18/09/05 5349 0
    2169 정치메르스 공무원 파면·해임 중징계 정당한가 10 일각여삼추 16/02/03 5350 0
    3028 창작[30주차] 쌍안경 2 헤베 16/06/15 5350 0
    6210 기타이 기회에 우리모두 여자국대 응원이나... 3 다시갑시다 17/09/01 5350 3
    8012 일상/생각도덕의 구성에 대한 제 간단한 생각 6 벤쟈민 18/08/08 5350 2
    10569 일상/생각불나방(중_b) 시뮬라시옹 20/05/09 5350 2
    956 음악드라마속 윤하 노래 2 영원한초보 15/09/09 5351 0
    6950 의료/건강한국과 미국의 독감 리포트가 나왔습니다. 13 맥주만땅 18/01/16 5351 4
    12469 사회택배노조 파업으로 택배가 오지않는 이유.jpg 10 cummings 22/01/26 5351 1
    8874 영화러브라이브 선샤인 극장판 감상 정리 (2주차 후) 1 알겠슘돠 19/02/17 5352 0
    4691 일상/생각그런 사람, 32 새벽3시 17/01/25 5352 15
    5425 오프모임모임까지는 아니고 ㅠㅠ 21 세인트 17/04/12 5353 1
    9804 음악오만과 편견 6 바나나코우 19/10/09 5353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