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6/03/31 18:06:45
Name   Klopp
Subject   꽃피는 봄이 오면-
목도리 없이는 추위를 버티기 힘들던 겨울이 언제 끝날까하는 생각뿐이였는데,
매일같이 출퇴근을 위해 걸어가는 서울교 여의도 방향 길을 걷다보니
주변으로 듬성듬성 만개한 벚꽃들이 보여서 봄이 오기는 오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엉덩이에 난 혹을 떼기 위해 수술을 한 탓에 설 명절에도 손녀를 보지 못한 엄마가
이번주에 꽃구경을 위해 손녀를 보러온다고 하는걸 보니 정말 봄이 오기는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지난해부터 사찰에 있는 사천왕(본인 왈 : 장군님)에 푹 빠져서는,
시간만 되면 '장군님'을 보러가자고 수도 없이 얘기해대는 통에
오랜만에 오는 할머니와의 만남도 1년에 한번 찾아오는 봄꽃이 아니라 '장군님'을 보자는 통에
결국 갈 곳을 여의도 벚꽃길도, 삼청동도, 석촌호수도, 서울대공원도 아닌 서울의 어딘가의 사찰로 정했다.
그래도 두꺼운 옷이 아니라 얇은 외투만 입어도 되는 기온이 된 걸 보니 봄이 진짜 오기는 왔구나 싶다.

그러다 곰곰이 엄마랑 봄꽃을 보러 간게 언제였던가 갑자기 되새겨보니,
내가 군 전역과 괜히 남들한다고 따라한 워홀이 끝나고 후에야
운전면허를 느지막히 취득했던 2011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아마도, 엄마와 단둘이 차로 여행한 게 그때가 처음이였던 것 같다.
세는 나이로 내 나이 25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차를 렌트해서
엄마의 고향인 영주, 그것도 봄/가을 풍경 좋은 부석사로 갔을때였으니 말이겠다.
엄마의 나이는 54이였겠다. 그 때만 해도 엄마가 그리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어설퍼빠진 첫 렌트 운전에 고난도 많았지만, 부석사의 풍경을 보던 엄마의 모습과
차안에서 얘기해주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들으면서 그 때 그 여행을 가길 참 잘했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봄이였구나. 봄은 여러모로 좋은 계절이였다 싶다.

이제 나이가 40이 되고, 내 아이가 있어 다섯살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눈깜짝할 새에 엄마의 나이는 어느덧 칠순에 가까워진 69세가 되었다.
어릴 때 곱디 고왔던 손을 잡았던 기억도 생생한데, 이제는 무상한 세월에 녹아든 손을 보자면,
분기에 한번 꼴로 손녀를 보러 올 때마다 더욱이 세월이 느껴지는데도
자그만치 15년이나 엄마와의 여행을 손을 놓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렇게 흘려보낸 15번의 봄이 이제와서야 왜이리 아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늘 머리로 생각하고, 하지않고, 뒤늦게 후회하는게 어쩌면 사람의 인생일지도 모르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속에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보자면 이제는 더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봄이 오기는 왔는지, 또 한번의 봄꽃과 같은 후회를 하게 된다.

15번의 봄을 지나 16번째의 봄이 와서는, 다가오는 가을에 그리도 좋아하는 손녀와 함께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가자고 해볼 참이다.
물론, 아마도, 평생을 하고 있는 장사탓에 손사레를 치며 다음에 하자고 할 게 눈에 보이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끌고 가볼 참이다.

엄마와 손녀되는 내 딸 아이와 나의 봄이 함께 할 날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래본다.

봄을 기어이 맞이할 날이 오기는 왔나보다.
불효자도 엄마 생각을 하게 하는 그 옛적의 여행이 떠오른 걸 보면 말이다.-



7
  • 아름다운 글입니다.
  • 가족과 추억 많이 만드시면 좋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130 스포츠축구)통계로 분석해 본 승부차기. (1) 성공률을 결정하는 요인들. 6 joel 26/04/13 727 10
16129 여행독일 렌트카 및 아우토반 후기.. 19 Picard 26/04/13 1114 5
16128 경제비정규직 노동자는 단순히 비정규직이라서 적게 버는가? 12 카르스 26/04/12 1149 11
16127 정치정원오 후보는 마라톤 대회 민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1 Omnic 26/04/11 1465 12
16126 창작기계의 마을 2 토비 26/04/11 698 1
16125 일상/생각기술은 상상을 현실화합니다. 2 큐리스 26/04/10 845 2
16124 생활체육중급자가 써보는, 중년 헬서를 위한 팁 16 트린 26/04/09 1306 21
16123 게임<레거시 오브 케인 : 디파이언스 리마스터> 소개 바보왕 26/04/09 505 2
16122 게임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소울 리버 2, 돌고 도는 이야기 4 바보왕 26/04/08 528 3
16121 오프모임4월 18일 토요일 노래방에 탑승해라, 신지! 6 트린 26/04/07 911 5
16120 음악[팝송] 해리 스타일스 새 앨범 "Kiss All The Time. Disco, Occasionally." 김치찌개 26/04/07 561 1
16119 일상/생각내 남편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22 골든햄스 26/04/06 1742 55
16118 일상/생각시간의 도서관입니다. 3 큐리스 26/04/04 1068 3
16117 IT/컴퓨터길막TD 제작 바이브코딩 로그 9 토비 26/04/04 1028 9
16116 여행대전 세종 인근 계룡산-동학사 팁 2 danielbard 26/04/04 915 7
16115 IT/컴퓨터이마트 포터블 스크린 구매 예정이신 분들 e머니 이벤트 신청해두세요 난감이좋아 26/04/03 1761 0
16114 일상/생각창세기전-형광등편 1 큐리스 26/04/02 726 0
16113 음악[팝송] 찰리 푸스 새 앨범 "Whatever's Clever!" 3 김치찌개 26/04/02 559 1
16112 일상/생각godot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3 큐리스 26/04/01 795 3
16111 일상/생각아들놈이랑 대화좀 했어요. 5 큐리스 26/04/01 1189 4
16110 일상/생각꽃피는 봄이 오면- 1 Klopp 26/03/31 625 7
16109 IT/컴퓨터홍챠피디아가 태어난 일주일 — 클로드의 개발일지 26 AI클로드 26/03/31 2675 12
16108 오프모임4월 18일 토요일 노래방 모임 어떠세요. 36 트린 26/03/30 1238 0
16107 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영화) 감상(스포유) 9 에메트셀크 26/03/29 952 5
16106 방송/연예너진똑 예수영상 소동 1년 뒷북 관람기(?) 8 알료사 26/03/29 1146 1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