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6/05/09 14:38:08
Name   카르스
Subject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뒤의 한국 지식 생태계를 생각하다
개인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쪽수와 정치성향에 초점 맞추어 1955-1974년생으로 넓게 정의)의 은퇴에 대해서 거시경제/노동시장/부동산 쪽만 이야기되는 데 불만이 있습니다. 학계나 문화예술계 등 지식 생태계(이하 지성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한데 잘 거론되지 않다고 여겨지거든요.

1. 단순히 절대적인 쪽수가 줄어드는 걸 넘어서, 지성계 세부분야로 보면 베이비붐 세대 이후 대가 끊긴 수준인 데가 많다보니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꼭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 비중이 높은 산업분야들은 이들이 은퇴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지성계가 그 상황입니다.

2. 더 나아가, 베이비붐 세대가 주류가 되면서 지성계를 지배한 세계관이 있는데, 이들이 은퇴하면 1과 결합되어서 세계관이 완전히 비워집니다. 지성계의 일부는 분명 기능을 다할텐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지성계들의 성향의 비중이 커질 거고,  생존한 지성계에서도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로 세대교체되면서 지성계의 경향성 자체가 많이 바뀔 거에요.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보자면, 앞으로의 지성계는 1990-2010년대 지성계에 비해 전반적으로, 리버럴해지되 확실히 덜 좌파적인 경향을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민주당과 민주당스러운 세계관은 좌파가 아닌 리버럴로 분류합니다. 좌파적이더라도 언어에서 베이비붐 세대 청년 시절의 NL vs PD 대립이 보인다던가, 강경 투쟁과 체제 전복으로 가득찬다던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포스트-베이비붐 세대는 사회문화적으로는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심지어 남자들도) 진보화된 부분이 많지만, 노동/경제/외교평화 영역에서는 (심지어 여자들도) 보수화되었습니다. 신좌파적인 영역에서는 젊은 세대가 더 진보적이라 볼 수도 있는데 좌파라 할 정돈 아니고, 구좌파적인 영역에서는 확실히 보수적입니다.

그러다보니 베이비붐 세대처럼 한국 체제 자체에 좌파적으로 도전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은 후대 세대에 확실히 줄어들었고,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겁니다. 포스트-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나이때 베이비붐 세대처럼 민주화와 운동권 투쟁과 국제질서의 평화,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국내외 배경 속에 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사고관을 '경험'이 아니라 역사교과서 공부하듯이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와 다르게 고소득 저성장 체제에서 한국의 번영과 위태로워진 국제질서를 경험했기 때문에, 집값이나 취업난 젠더 갈등엔 불만을 할지언정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박은 우습게 보일 수밖에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지성계에서 특히  인문사회계의 위기는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세대별 소구력의 문제도 있습니다. 인문사회계는 리버럴을 넘어 좌파적인 성향을 갖춘 사람들이 꽤 있고 이는 인문사회계 성향도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유산도 큽니다. 그런데 포스트-베이비붐 세대는 사회문화적 영역을 제외하면 좌파적 세계관에 대해 소구력을 가질만한 유인이 없습니다. 최소한 평화 통일, 반공보수체제 극복 같은 기존의 어젠다에 한하면 그렇습니다. 보수화가 더 강하게 일어난 남성에서 이 문제가 특히 심합니다. 요즘 진보적인 인문사회계의 사회적 담론이 사회문화적 분석으로 가득 찬 것도 그러한 신세대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러한 세대 교체의 문제는 한국의 전방위적인 사회 발전, 기술과 정보 매체의 발달이랑 얽혀서 더 복잡해지지만, 그것까지 이야기하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가능하다면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확실한 건 세대 교체가 한국의 전방위적인 사회 발전, 기술/정보 매체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인문사회계, 대학, 문화예술, 더 나아가 지성계 전반의 위기가 논의되는 시점에,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1) 지성계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유산을 돌이켜보자. 이들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2)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지성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3) 지성계의 위 변화 모습은 어떤 면에서 좋고 어떤 면에서 나쁠 것인가
4) 3과 관련되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후에도 소중히 남겨야 할 이들의 유산엔 어떤 게 있는가.

포스트-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학사 시절에 인문학을 복수전공한 학생으로서, 그리고 두꺼운 논픽션 책을 즐겨있는 애서가로서, 여러 신예 매체에 글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 문화예술을 즐기는 학생으로서 지성계 전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제 업과 취미생활 모두와 깊게 관련된 문제거든요.  그런 입장으로서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하고 더 화두에 오르기를 소망합니다.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025 스포츠[MLB] 저스틴 벌랜더 1년 13M 디트로이트행 김치찌개 26/02/21 877 0
    16155 오프모임[벙개] 홍차넷 대전 벙개를 열어봅시다! (5월2일,3일) 20 Only 26/04/23 879 4
    16104 일상/생각[자작] 정신력 깎이면서 지하철 역이름 한자 공부하는(?) 생존 게임 2 큐리스 26/03/28 882 3
    16105 게임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 종족을 스텔라리스로 표현해보기. (스포일러) 1 K-DD 26/03/28 882 2
    16075 정치1992년 조지 칼린의 스탠딩 코미디, War.. War never change 2 kien 26/03/15 896 0
    16229 꿀팁/강좌이것이 세종 행복도시다 -지도편- 20 dolmusa 26/05/29 898 7
    16010 스포츠[MLB] 에릭 페디 1년 시카고 화이트삭스행 김치찌개 26/02/12 900 0
    16121 오프모임4월 18일 토요일 노래방에 탑승해라, 신지! 6 트린 26/04/07 917 5
    16037 창작회귀 7 fafa 26/02/25 918 2
    16116 여행대전 세종 인근 계룡산-동학사 팁 2 danielbard 26/04/04 920 7
    16043 정치4월 미중정상회담, '거래적 해빙'의 제도화 열까? 1 K-이안 브레머 26/02/27 921 0
    16133 일상/생각와이프는 애플워치의 진동같다^^;; 큐리스 26/04/14 921 8
    16270 IT/컴퓨터드디어 나타난 클로드 미소스 Fable 17 토비 26/06/10 923 1
    16213 일상/생각스레드란 플랫폼에 대한 단상. 14 메존일각 26/05/19 924 3
    16098 오프모임[등벙]용마산~아차산 코스를 돌까 합니다(3/28 토욜 아침즈음) 21 26/03/26 928 7
    16190 사회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뒤의 한국 지식 생태계를 생각하다 3 카르스 26/05/09 934 4
    16209 문화/예술박동훈에서 황동만으로 4 알료사 26/05/18 942 16
    16077 게임F1 2025 플레이 준비 완료 3 당근매니아 26/03/16 944 0
    16089 일상/생각자전적 소설을 써보려고 해요~~ 5 큐리스 26/03/23 944 2
    16136 일상/생각심각한 고민이네요 ㅎㅎ 6 큐리스 26/04/16 945 3
    16052 게임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블러드 오멘 2 바보왕 26/03/03 946 6
    16260 정치저의 선동글 - 부실선거 이후의 키배에 부쳐 6 소요 26/06/09 950 12
    16034 IT/컴퓨터게임업계 현업자 실무자 티타임 스터디 모집합니다.claude.ai,antigravity,vibecoding 4 mathematicgirl 26/02/25 954 2
    16223 일상/생각가장 우아한 비판 1 에메트셀크 26/05/24 954 3
    16107 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영화) 감상(스포유) 9 에메트셀크 26/03/29 958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