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6/05/17 08:05:40
Name   The xian
Subject   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관리자로 돌변하는, '팬인 척' 하지만 절대로 팬이 아닌 자들.
20년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어떠한 유형의 '팬 장사'를 해 왔거나, 즐기거나, 지켜보는 입장에 항상 서 있던 상황에서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에 도취된 부류는 진짜 피곤하기 짝이 없는 빌런 유형입니다. 완전 최악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다음 순위에는 반드시 넣고 싶을 정도로요.

이런 개념을 이야기하면 흔히들 광팬 아니냐,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게 집착하거나 과몰입하다 보니까 선 넘는 소리도 할 수 있고 그런 거 아니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들은 맹목적인 팬하고는 또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판단하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좀 더 극단적일 수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면 이런 부류의 인물들을 팬과 동류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팬 장사에 해당하는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차이가 무엇인지 앞뒤 맥락 자르고 간단히 설명하면 '좋아하는 대상에 꽂혀서 애정하는 것'이 최우선이냐,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최우선으로 두느냐. 그 차이라고 할까요? 그렇기에 똑같이 콘텐츠를 즐기고 똑같이 시간을 쓰고 똑같이 돈을 써도, 아니, 시간과 돈을 오히려 그 누구보다 많이 쓴다 해도 전자는 팬이지만 후자는 팬을 가장한 그 무언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곡하게 말하면 사이비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빌런이죠.


그들은 누군가에게, 그 대상을 낳아준 부모가 엄연히 따로 있는데도 갑자기 또 다른 부모로 돌변합니다. (연령으로 보면 그 대상을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낳지도 않은 자식을 훈육하듯 대상을 통제하려는 왜곡된 심리로 자기 맘에 들면 칭찬하지만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훈계를 합니다. 말이 좋아 훈계이지 일방적인 비난이고 가스라이팅이지요. 팬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모멸감을 줄 법한 말들, 슬슬 긁는 말들도 서슴없이 사용하면서 자기의 방어기제로 '애정이 있어서 깐다'는 거짓말을 덧붙입니다. 저는 그런 부류의 인물들이 하는 말이 대부분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거짓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정 대상의 애정이란 게 없거나, 있다 해도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최우선이지 절대로 애정이 최우선이 아니니까요.

엔터테인먼트나 스포츠 쪽으로 가면 그런 인물들은 마치 부서의 관리자, PD, 감독, 코치, 심지어 세이버매트리션으로 빙의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요즘들은 이런 부류가 더 많고 흔하게 보입니다. 검증이 상대적으로 어둡고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이라면 무지성 추천도 쉽게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AI 딸깍 하는 것만으로 마치 자기가 유능한 기획자나 제작자나 스포츠의 감독, 코치, 관계자인 것처럼 가장하기가 너무나 쉬우니까요. 예전에도 커뮤니티의 분위기나 위세를 타고 입으로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있지 않았냐고요? 네. 있었지요. 그러나 그런 허언증 환자들에게 생성형 AI가 날개를 달아주다 보니 예전에는 커뮤니티에서 가물에 콩 나듯 아주아주 드물게라도 볼 수 있었던 '선생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같은 진짜 전문가는 더더욱 극소수가 되었습니다.


뭐 하지만, 저런 부류의 인물이 있다 해도 누군가를 섣부르게 빌런 취급하면 안 됩니다. 행위만 놓고 보면 이들은 팬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니까 행위로는 구분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콘텐츠를 즐기고 똑같이 시간을 쓰고 똑같이 돈을 쓰니까요. 물론 이들은 특정 대상의 애정이란 게 없거나, 있다 해도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최우선이지 애정이 최우선이 아니지만, 그런 부분은 어떤 어설픈 빌런들처럼 행위가 파묘라도 되지 않는 한 가려내기 어렵지요. 손님이 손놈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아니, 어떤 경우는 손놈으로 변한다 해도) 손님 대우를 해야 하는 게 세상 일이기도 하고요. 다만 어떤 분들은 그런 인물의 구분을 '돈을 얼마 썼느냐'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방식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의 악의를 정말 우습게 보는 소리입니다. 세상에는 '어떤 대상을 까고 훈계질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고 그런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지면 많아지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마치 이런 부류의 인물들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겨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관계자나 직원이라면 괜찮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마치 농담처럼 합니다. 자리의 분위기가 농담이라면 저도 웃고 넘어갑니다. 다만 오피셜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한다면 저는 멱살을 잡아서라도 그런 소리를 다시 하지 못하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망할 것 같은 일이 아니라면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수준으로 팝콘이나 뜯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부류의 인물들이 내부인으로 들어올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쉬우니까요. 특히 요즘은 AI 딸깍으로 그럴 듯한 소리를 지어내기가 더 쉬워졌기 때문에 더 머리가 아픕니다. 이런 스탑 럴커같은 작자들을 포폴만 보고 뽑으면? 네. 그냥 망하는 겁니다.

특히 이런 부류의 인물은 팬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금기시해야 할 부류의 인물들입니다. 내부에 들여놓으면 금새 자아가 비대해져서 직업 윤리상으로 할 소리와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주워섬기다가 내부에서 분란을 조장하게 되기 쉬우니까요. 더욱이 이런 인물들에게 대외적인 스피커를 맡기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 팬들까지 '그래도 되는구나' 하는 그릇된 문화를 조성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에 대한 여론을 지 멋대로 호도하거나 회사의 가치에 대해 무분별한 소리를 하는 일도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수습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뭐 내 일이 아니라 지켜보는 상황이라면 폭탄이 터지는 수준의 도파민이 될 수는 있긴 한데, 폭탄이 터지는 곳이 내 회사, 내 사무실이 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어떤 분들은 그 역할 자체를 즐기는 것도 팬의 권리이고 팬장사의 한 부분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백번 양보해서 팬장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애정이 있어서 OO하는 거야'라고 한다 해도, 팬이 자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잠시잠깐 그런 포지션을 가지는 것과, 애초에 그 역할 자체에 도취된 것과는 같게 취급할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대상에 꽂혀서 애정하는 것'은 팬이지만,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최우선이라면 그런 포지션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할 수록, 그리고 그런 포지션에 도취되는 상황이 강해질 수록 팬이라고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책임 없는 비판, 아니, 비판을 가장한 비난과 지적질, 가스라이팅을 일삼으며, 어떤 때는 부모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나를 관리하는 부서 관리자, PD, 감독 코치 등으로 빙의하는 사람이 주위에 드글드글하다? 어우, 한 명만 있어도 피곤하고 짜증날 텐데 드글거린다고요? 제 개인의 일이라면 차라리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게 나을 정도로 싫은 일이라 당장 손절 각이고, 회사라면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다니다가 정말로 하다 하다 안 되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과 회사의 대처법이 왜 다르냐고요? 저는 가난하니까요.)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126 창작기계의 마을 2 토비 26/04/11 700 1
    16272 도서/문학'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NTR적 비극성과 순애 3 알료사 26/06/11 705 7
    16246 사회가장 값싼 사회정의, 수단화와 그 위선의 본질에 관해. 3 Omnic 26/06/06 722 13
    16141 일상/생각지름신이 와서 블투 스피커를 바꿨습니다. 2 야얌 26/04/17 726 1
    16114 일상/생각창세기전-형광등편 1 큐리스 26/04/02 729 0
    16130 스포츠축구)통계로 분석해 본 승부차기. (1) 성공률을 결정하는 요인들. 6 joel 26/04/13 732 10
    16067 음악[팝송] 브루노 마스 새 앨범 "The Romantic" 2 김치찌개 26/03/11 733 3
    16248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28. 싸움의 뒤에 T.Robin 26/06/06 734 0
    16078 게임[LOL] 3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일정 4 발그레 아이네꼬 26/03/16 739 0
    16095 일상/생각제2화: 1998년 가을, 그냥 편할 것 같아서 4 큐리스 26/03/24 740 4
    16173 일상/생각AI 접바둑 3 알료사 26/04/30 742 1
    16159 일상/생각숫자를 오래 보다 보니 종이가 필요해졌습니다 큐리스 26/04/24 745 0
    16068 게임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라지엘의 복수 2 바보왕 26/03/12 751 3
    16193 IT/컴퓨터[게임개발자]바이브 코딩 / AI 개발 도구 오프라인 스터디 모집 · 강남 4 mathematicgirl 26/05/10 752 0
    16266 정치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려는 자 누구인가 1 meson 26/06/09 760 6
    16096 일상/생각제3화: 2002년 겨울, 아무도 먼저 가려 하지 않았다 3 큐리스 26/03/26 764 4
    16153 사회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저, 1995년) 2 K-DD 26/04/22 765 5
    16202 일상/생각영어 컨텐츠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4 큐리스 26/05/14 770 0
    16174 일상/생각시선유감 4 골든햄스 26/04/30 771 16
    16227 일상/생각저희 동네 게임으로 만들고 있어요 ㅎㅎㅎ 5 큐리스 26/05/28 786 4
    16244 정치서울시 선거구 별로 보는.. 오세훈이 정원오보다 인물론에서 이겼다는 지표 6 Leeka 26/06/05 793 0
    16112 일상/생각godot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3 큐리스 26/04/01 797 3
    16206 일상/생각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관리자로 돌변하는, '팬인 척' 하지만 절대로 팬이 아닌 자들. The xian 26/05/17 799 2
    16240 정치서울시 선거결과는 무엇의 영향일까 4 meson 26/06/04 802 0
    16242 일상/생각사실 와이프는 선녀였습니다~~ 2 큐리스 26/06/04 804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