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어그러짐
두 소녀가 만들어낸 맨션의 균형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필라테스 후 이어지는 '간택'의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둘이 함께하던 마을 어귀로의 조그마한 모험과 택시와 함께하는 더 넓은 '던전'으로 향하던 두근거리던 시간은 이제 집안에서 하는 허드렛일처럼 느껴졌다. 같이 다니는 시간도, 수다의 내용도, 반응도 모두 예상 가능한 범위였고, 똑같았다. 그들은 여전히 카페에서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클로에도, 메이드도, 다들 그것이 여자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관계와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가식적인 웃음이라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간택'에 처음 참여한 메이드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클로에는 이미 식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마음속 불길을 다시 살릴 도화선이 되어줄 그녀의 친구는 그녀의 손대신 코바늘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뜨개질만 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를 흔들고 싶었다. 다만, 그 '장난'에 다른 메이드가 함께 해 줄리는 없었다. 그들은 피해자였고, 아무리 장난이라고 한들, 다른 여자를 손톱만큼이라도 괴롭히면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이 맨션에 들어오게 된 기억과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제일 먼저 아픔에 민감한 메이드들이 그녀와의 교류를 빠르게 정리했고, 그녀의 주변에 남은 언니들도 그녀와 루나가 같이 있으면 서서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괜히 루나의 어깨를 찔렀고, 그녀에게 대고 정면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을 해댔고, 루나가 코바늘을 잡으면 털실 뭉치가 그대로 꼬이거나 바늘이 휘어질 거라는 등 이상한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루나는 그동안 뜨개질이란 이름의 수련을 통해 훨씬 더 단단하게 단련된 뒤였다. 그녀를 흔들려는 그 어떠한 노력에도 그녀는 항상 고요하고, 평안했고, 요지부동이었다. 클로에는 그녀의 마음속 호수에 몇 번이고 조약돌을 던져댔지만, 그 호수는 너무 깊고 잔잔해서 물결 한 번 일렁이지 않고 돌덩이만 그대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때마다 클로에는 더 부아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몇 번이나 화를 내거나, 하다못해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이쯤 되자, 클로에는 슬슬 뜨개질의 결과가 궁금해졌다. 저 아이는 왜 뜨개질을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대체 뭐에 쓰려고 저렇게 열심인 걸까? 누구 주려고 그러나? 남자가 생겼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했다.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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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늘 가득한 구름이 노을을 모두 가린 날이었다. 루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켜진 맨션 안쪽 정원의 야간 조명의 후광을 받으며 뜨개질에 열중했다. 그녀는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을 캔버스에 옮기면 거기에는 사람이 아닌 천사가 그려질 것 같았다.
클로에는 원을 그리며 루나가 앉은 벤치를 빙빙 돌았다. 루나는 무언가 머플러보다 더 크고 넓은 걸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정사각형의 네모난 모양은 분명 머플러라고 하기엔 너무 커 보였다.
"헤에. 루나루나루나. 이제 머플러는 다 만든 거야? 그거 말고 또 머플러야? 그렇게 크게 만들다간 머플러 말고 덮는 이불로 써도 되겠다!"
"으응. 아니야. 이거, 스웨터."
"오오오오오오. 스웨터다 이거지? 머플러에서 버전업하셨다 이거지?"
그녀는 빈정대는 목소리로 루나를 톡 쏘아댔다.
"남자거지? 남자지? 그거 남자 줄 거지? 마음속에 담아둔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 아니면 나 몰래 만나는 남자친구? 아니면 혹시...... 그보다 더 끈적끈적한 사이? "
하지만, 루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하게 한땀 한땀 정성들여 갈 길을 나아갔고, 고개를 살며시 들어 클로에에게 미소지었다.
"누군가 줄 거는 맞는데, 누구에게 줄지는 아직 비밀이야."
"오오오오오오? 누군진 몰라도 좋겠다아-. 루나한테 선물도 받고. 완전 럭키네 럭키. 언니들! 여기 루나가 남자친구 생겼데요! 우리 메이크업팀 출동! 꼬꼬마 루나를 얼른 여자로 만들어주세요!"
클로에는 사방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창문을 열거나 클로에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안쪽 정원에 나와 있는 다른 메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루나는 클로에의 모습이 귀여운 듯, 어린아이의 재롱을 바라보는 엄마같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클로에가 생각하는 그런건 절대로 아니야."
"칫......"
클로에는 얼굴을 떨구고 중얼거렸다.
"재미없어......"
"응?"
"루나는 재미없어! 단세포! 바보! 빠가사리! 대머리! 어디 돌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해라! 이제 루나랑 안 놀거야! 흥!"
그리고 클로에는 씩씩거리며 맨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루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어두운 감정이 자신의 안쪽을 파먹어가려는 것을 느끼고는, 그 감정을 잊고자 다시 코바늘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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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여, 대답하라! 클로에님이 나가신다!"
대체 어제 저녁에 무슨 영화를 본 건지, 클로에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울려 퍼졌다.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그 모습을 가리키며 이상한 듯 수근거렸고, 일부는 저게 뭐냐며 깔깔거렸다. 그녀는 구름의 색깔에 태클을 걸고, 잎사귀의 모양을 보고 구시렁대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발레를 흉내내며 율동했다. 그녀는 마치 세상 모두가 그녀를 바라봐야 하고, 반응하며, 대답해야 한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주변의 그 어디에도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루나는 어느새 가장 먼 루나가 되어서 그녀가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 존재했다. 만일 그녀가 존재하고 있다면.
학교에는 이상한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타고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그녀의 "대장 행진"은 맨션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맨션에 돌아와 정문을 연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하늘에 대고 목젖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고대 일부 민족들이 싸우기 전에 포효했다는 전투의 함성같은게 아니었다. 모든걸 부숴버리겠다는 파괴의 함성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 속 깊은 곳 순수한 불안이 만들어낸 원초적 절규. 더 이상 쏟아낼 길 없는 과도한 흔들림이 만들어낸 뒤틀림. 그녀는 울었고, 눈물을 훔쳤고, 얼굴을 가리며 자기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모든 이들의 위에 있던 메이드장 마가렛도, 모든 이들의 짐을 짊어진 마스터 줄리안도, 자칭 '클로에와 두번째로 친한' 메이드 크리스틴도, 그 누구도 그녀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다.
그 후로 며칠간, 메이드들 사이에 클로에를 걱정하는 소리들이 퍼져갔다. 그녀는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넘어지거나 뭔가를 떨어뜨렸다. 얼굴은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섬세한 이들은 그녀가 가끔씩 무의식중에 손을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메이드들은 그녀가 식당에서 식기를 떨어뜨리거나 그릇을 깨지 않도록 옆에 붙어서 그녀를 살폈고, 마가렛은 별도의 관찰이 필요한 '관리대상' 목록에 그녀를 포함했다. 그녀가 이따금씩 하는 돌출행동은 그 빈도는 줄었지만, 훨씬 더 공격적이었고, 행동이 끝나면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지쳐있었다. 십대 소녀에게서 기대하는 쾌활함이나 귀여운 일탈같은 것으로는 그 행위를 설명할 수 없었다.
현재의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딱 하나였다. 광기(狂氣).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과거의 아픔과, 자신의 무용(無用)함에 대한 현재의 자각과,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두려움이 뒤섞여 만들어낸 혼란.
"불러야겠죠?"
"예."
마가렛은 들고 있는 타블렛 위의 화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과 전문의도 부를까요?"
"그건 교수님들께서 보시고 결정하시도록 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줄리안은 화면에 펼쳐진 클로에의 관찰일지와 정신의료 전문 AI의 평가전문을 닫고 서랍에서 블루투스 이어셋을 꺼냈다.
며칠 뒤, 사이몬 베넷과 리디아 베넷 박사가 도착했다. 인터벤션(intervention). 임상 개입을 시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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