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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5/22 14:37:03 |
| Name | T.Robin |
| Subject | 리쥬브 프로토콜: 22. 침식의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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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쥬브 프로토콜
## 침식의 끝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선 탁자 위에 백발이 지긋한 여러 명의 노인이 자리에 앉았다. 나이로만 보면 그들은 다들 집에서 "손주들이나 볼" 할아버지들이었지만, 그들의 안광은 무엇이든 뚫을 듯 매서웠고, 옷의 틈새로 드러난 근육은 억셌다. 손가락 또한, 비록 마디 하나하나는 세월이 얹히고 얹혀 쭈그러들었을지언정, 그 사이사이에 쌓인 잔근육은 그들이 아직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타원형의 탁자 한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엄하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여러 원로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그녀는 우렁찬 목소리로 문중의 원로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이것이 제가 후보로서 보호받을 권리입니까? 저는 피해자입니다. 동영상에 나온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함을 받고 있습니다. 제 결백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시다면 병원에서 처녀막 검사 결과라도 받아오겠습니다!"
탁자 위의 노인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자네의 평판은 이제 더 이상 수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졌네. 진짜 모든 사람을 아우를 위치에 오르려면, 술기(術技)의 뛰어남뿐만 아니라, 문중의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대인관계의 능력도 같이 필요하지. 설사 이 모든 일이 자네가 주장하듯 자네를 반대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 한들, 만일 자네가 자네를 반대하는 자들을 '내 편'으로 포용할 수 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탁자 정중앙의 노인이 결정문을 읽고, 결정문의 오른쪽 아래에 도장을 찍었다.
"안건 509006호. 문중 대표 후계자 자격 재고의 건. 문중 최고 협의체는 하기 인원을 대표 후계자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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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신동이었다. 위로는 사마귀가 먹이를 덮치는 모습을 모사(模寫)하고, 아래로는 원숭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보법을 특징으로 하는 그 문중에서, 그녀는 유독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최고 협의체의 원로들조차, 그녀의 실력에는 혀를 내둘렀다. 어제는 또래에서 1등이 되고, 오늘은 사형들과의 대련에서도 대등하게 겨뤘으며, 내일은 기라성같은 선현들을 앞설 것 같은 재목이었다. 호기심에 그녀를 직접 상대해 본 몇몇 원로들이 다른 원로들에게 그녀를 소개했고, 가장 보수적인 원로조차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길을 진지하게 걷는 무도가라면, 단지 한 합만 겨뤄봐도 그녀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똑같이 힘들게 노력한 자신의 노력도 마찬가지로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실력은 진솔했고, 열정은 뜨거웠다. 그녀는 정체된 문중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것이었다.
다만, 문중의 모든 사람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으로 그 체계와 수련의 가치가 증명되었는데, 굳이 지금 와서 문중이 변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중의 전통은 보존되어야 할 것이지, 고작 몇 년의 가벼운 흔들림으로 변화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누군가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문중이 변한다면,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자신의 지위와 권위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변화는 막아야 할 악(惡)이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저 문중의 대표는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여자는 문중의 대표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사람들이 한데 뭉쳐, 가장 전통적인 집단을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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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부 남자 수련생들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를 사범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는 것임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후 몇몇 수련생들이 사범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고, 그녀 아래에 있던 수련생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범마다 수련하는 방법이 달라서, 자신과 맞지 않는 방식으로 수련하면 되레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기에, 사범 변경 요청은 종종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꾸준히 줄어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수련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했고, 다른 사범과 원로들에게 조언을 들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괜찮다. 문제없다'였다.
그러던 도중, 한 수련생이 쭈뼛거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부터 다른 사범에게로 옮겨가는 사람이었다. 인사라도 하러 오는 건가.
"저기...... 사범님."
"아, 예. 내일부터는 리웨이 사범님께로 가시죠? 거기서도 꾸준히 연습하세요. 그동안 부족한 제 밑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최근에 아마 남자 수련생들이 많이 다른 사범님으로 옮겨갔는데, 혹시 그 이유 알고 계시나요."
그녀의 온 신경이 본능적으로 곤두섰다. _뭔가 큰 게 온다._
"글쎄요? 그러잖아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사범님께서는 알고 계셔야 하실 것 같아서요."
이어진 한마디에, 그녀는 쇠파이프로 명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는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성인 사이트에 그녀의 _성관계 영상_이 유포되고 있다.
"그럴...... 리가......"
그녀의 몸은 남자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보다 무술이 좋아서, 계속 수련에만 집중했다. 게다가, 목소리도 굵고, 성격도 남자같고, 심지어는 머리도 남자처럼 짧게 치고 다녔던 터라,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할만한 구석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녀는 남자를 사귀는 것 자체를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데 왠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대폭발하는 소리인가.
그날 밤, 그녀는 수련생이 알려준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접속했고, 간단한 클릭 몇 번만으로 "자신이 등장하는" 여러 개의 성관계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영상이 여럿 만들어져 있어, 마치 그녀가 성인물 배우로 데뷔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고, 영상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사이트에 동시에 업로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들은 유명 사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그녀가 절대로 짓지 않는 어색한 표정과 완전히 제각각인-그리고 그녀와 전혀 닮지 않은- 바디라인을 보고 이 영상이 조작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표정의 어색함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었고, 남들 다 보는데서 자신의 알몸을 공개하고 그 동영상과 비교해 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문중에 알리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그녀의 동영상에 대한 소문을 되려 더 크게 퍼뜨렸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처럼 보이는 딥페이크 영상에 대한 소문은 사실 그녀 자신의 영상이라는 식으로 와전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디오가 조작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지만, 동영상은 너무 많았고, 그녀는 혼자였으며, 동영상 편집이나 조작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컴퓨터 조작조차 익숙지 않았다. 심지어 설득해야 할 사람의 수를 생각하면 그 모든 사람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는 것은 그저 불가능이었다. 그 와중에 문중 최고 협의체는 그녀가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가, 내지는 그녀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보다 그녀의 평판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더 집중했다. 모든 장로가 감탄해 마지않던, 문파의 미래를 대표하던 신동은 순식간에 "몸 파는 걸레년"이 되어버렸고, 소문은 한 번 더 뒤틀려 사실은 그녀의 사생활이 굉장히 문란하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얼마 뒤, 문중 최고 협의체는 그녀의 후계자 자격을 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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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중에 계속 남아 있고 싶었다. 그녀가 쌓은 수련의 시간과, 그녀가 만난 귀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은, 최소한 그녀 자신에게는 버리기 너무 아까운 기억들이고, 경험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녀와 함께한 경험이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가치있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계속 그녀의 뒤에서 무언가를 수군거렸고, 그녀와 친했던 사람들-또는, 그녀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그녀를 떠나갔다. 누군가는 냉철하게 관계를 끊었고, 누구는 주저했다. 누군가와는 해뜬 뒤의 아침 안개처럼 자연스럽게 교류가 사라졌다. 수련장이든, 동네 시장이든, 어디를 가든간에 그녀는 등 뒤에서 그녀를 띠껍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 다녔다.
결국 그녀는 문중을 떠나기로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반대한다면, 더 이상 굳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평판과, 칭호와, 기대와, 그 외 모든 것을 한때 그녀의 모든 것이었던 장소에 내려놓고 나왔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뼈를 깎으며 몸에 새긴 기술들에 의존하여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 되었다. 그녀는 편의점 파트타이머와 음식점 허드렛일을 시작했고, 혼자 누우면 꽉 차는 좁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얼마 뒤 그녀의 소식을 들은 다른 문중에 있는 지인이 그녀에게 연락해왔다. 그 지인은 근처에 새로 개설되는 작은 도장을 소개해 주었고, 그녀는 관장 한 명과 사범 두 명이 전부인 조그만 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도장에 다니는 어린이들로부터 친절하고 "멋있는" 사범으로 인기가 좋았고, 도장의 관장 또한 그녀를 연결해 준 지인에게 들은 바가 있어, 하루가 끝나면 빈 도장에서 진지하게 그녀에게 한 수 가르침을 요청했다. 관장이 워낙 수완이 좋았던 터라 도장은 금세 커졌고, 얼마 안 되어 도장을 더 큰 곳으로 확장 이전하기에 이르렀고, 더 많은 사범들이 도장에 채용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몸담은 곳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며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생겼다.
문중에서의 기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저 남자들이 나를 따돌리면 어떡하지. 저 남자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예 벽을 쌓고 교류를 아예 끊어야 하는 걸까. 도장에 새로운 얼굴이 추가될 때마다 그녀의 두려움은 더 커졌다. 어느날 밤에는 속상함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이 터졌고, 또 다른날 밤에는 마음속 깊은 두려움이 새어나오며 그녀를 괴롭혔다. 관장이 입관 선물이라고 사주었던 스마트 워치는 그녀가 계속 잠을 설치거나 가위에 눌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는, 관장에게 사직 의사를 전달했다.
"예? 나가신다고요? 왜요? 급여가 부족하신 건가요? 돈이 문제시라면, 지금은 도장을 확장하느라 바로는 좀 어렵지만, 몇 달만 참아주시면 급여는 약속드린데로 꼭 올려드리겠습니다. 이건 도장이 이사하기 전부터 말씀드렸잖아요."
그녀의 성실함과 실력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관장은 그녀의 사직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순수하게 무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술(術)의 기교와 해석에 대해 각자 가진 생각을 털어놓으면, 술 한 잔을 마시지 않고도 몇 시간을 즐겁게 토론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실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인의 귀띔도 있었거니와, 소소하게 일 합을 겨룬 뒤에는, 그는 순수하게 그녀의 실력에 반했다. 그 후 그는 마지막 수련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에게 대련을 부탁했다. 그녀는 비록 겸손하게 대련을 수락했지만, 대련의 시작과 동시에 야생의 맹수가 되어 그를 물어뜯었고, 그는 맹수와의 싸움을 통해 "한 수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그녀는 이 작은 동네 도장에 너무 과분한 존재였지만, 또 그렇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원생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그녀를 따랐고, 그녀 또한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 어떤 철부지나 개구쟁이도 그녀 앞에서는 순한 양이자 열심인 꼬마 수련생이 되었다.
"뭔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게 있을까요?"
"음...... 그게...... 예. 관장님께는 말씀드리는게 맞겠지요."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로서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말할 때는 눈물이 흘러나오려고 했고, 그녀는 눈물을 참다가 결국 울음보가 터져 한동안 이야기가 끊어지기도 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무슨 그런 엿같은 것들이 있답니까!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것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전, 그걸 경험하니까, 더이상, 버티기가......"
비록 문파는 달랐지만, 그는 그녀가 마치 자신의 친동생이나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매(師妹)의 일인 것처럼 분노해 주었다. 무(武)를 숭상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설적이게도 몸이 아닌 마음이다. 정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내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혹자가 말하는, 힘에 먹힌다거나, 힘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올바른 길을 보여야 할 문중이 가장 촉망받던 후계자를 그렇게 내쳐버리다니. 이게 어디 말이 되나. 잠깐이지만, 그는 자기가 그녀와 같은 문파가 아닌 것을 굉장히 다행스럽게 느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더이상 그가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좋은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가장 하기 싫었던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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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네?
떠나는 마당에 이런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남는 시간에 절 좀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제가요? 제가 가르쳐드릴 게 뭐가 있다고...... 실력은 사범님이 저보다 훨씬 뛰어나시잖아요.
취보(取步)...... 관장님 문파의 기본이 되는, 그 보법을 배우고 싶어요. 술에 취해서 잊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데, 전 술을 못 마시니까, 취보라도 익히면 마음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아 예! 그런거라면 어렵지 않죠. 취보와 함께 단배권 기본 투로도 함께 알려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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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무도인으로서,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배울 점이 많았던 그녀를 존경했던 관장은 끝까지 그녀를 배려했다. 그는 그녀가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까지 파트타이머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장을 그만두게 되면 분명 금전적으로 힘들어 질테니.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그녀는 눈에 띄는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_상처 입은 영혼을 보호하실, 사명감 강하신 여성분을 찾습니다. 정규직. 숙식 제공._
사이버 범죄의 피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 실제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도 있지만, 보호받고 있다는 상징적인 역할을 겸하는 업무. 명확해 보이지만 모호해 보이기도 했다. 뭘까. 호기심이 동했다. 어차피 다음 직장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니,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구인하는 곳의 양해를 얻어 주말에 언덕 위의 요새 같은 맨션을 방문했고, 피로에 찌들어있는 이사장과, 그런 이사장을 계속 구박-이라기보다는 걱정되어서 하는 잔소리 같지만-하는 '메이드장'이란 사람과, 요란한 복장들로 시선을 어지럽히는 '메이드'들을 만났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이사장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요인 보호와 경호의 실무에 대해 질문했고, 메이드장을 보호 대상으로, 자기를 괴한으로 가정하고 그녀로 하여금 어떻게 요인을 보호하고 괴한을 제압하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처음 몇몇 상황은 별것 아니었지만, 나중에 제시된 상황 중 일부는 그녀로서도 실제였다면 허를 찔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찔했다. 괴한 역할을 하는 이사장이 일반인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이쪽'의 전문가였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이사장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였지만 생각이 많은 지략가였고, 메이드장은 잔소리가 많긴 했지만 허튼 소리 하나 없이 그의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며 그를 보좌했다.
이런 곳이라면 괜찮겠지. 며칠 뒤, 그녀는 모든 근무 조건을 확인하고,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메이드 군단의 안전과 보호의 상징으로서,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겉으로 보이는 재단의 모습은 활기차고 시끄러웠지만, 한꺼풀만 벗기고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치고 스러진, 자신의 마음속 어두운 그림자를 숨기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리고 '군단'의 메이드 중 몇몇은 그녀처럼 딥페이크의 피해자였다. 그녀는 메이드들과 함께 살고, 함께 호흡하며,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강인함의 상징이 되어 많은 메이드들의 동경을 불러왔고, 그들에게 강한 방패가 자신을 보호한다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약한 자들을 지키고 올바른 뜻을 수호한다는 숭고한 정신 아래,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권(拳)을 다시 한번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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