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6/06/04 23:19:25
Name   큐리스
Subject   사실 와이프는 선녀였습니다~~
(이글은 실화기반 반 픽션기반 반으로 제마음대로 쓴겁니다. )
벌써 17년 전이네요. 2009년 여름,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으로 캠핑 갔다가 제 인생 최대의 '자작극'을 벌였습니다. 남들 다 경치 구경할 때 저는 바위 뒤에 숨겨진 날개옷을 슬쩍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제가 대단한 '나무꾼'이라도 된 줄 알았죠. 선녀랑 결혼하면 인생이 좀 판타지처럼 풀릴 줄 알았던 겁니다.

근데 웬걸요. 이제 집구석에 초4 공주, 중1 공주, 고1 건달?... 이 시커먼 '선녀의 결과물'들이 셋이나 버티고 있습니다. 애들 셋이서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다 보니, 아내는 이제 선녀라기보다는 전투기 조종사에 가깝습니다. 문득 미안한 마음도 들고(사실은 저도 좀 자유를 찾고 싶어서), 장롱 깊숙이 처박아뒀던 날개옷을 꺼내 아내한테 넌지시 건넸습니다. "여보, 이제 애들도 다 컸는데 이거 입고 친정 좀 다녀와."

그런데 아내가 날개옷을 입어보려다 헛웃음을 칩니다. "야, 이거 무게 제한 걸려서 못 난다." 그동안 애들 셋 키우면서 쌓인 '지방'과 '내공'의 무게가 날개옷의 권장 하중을 가뿐히 넘긴 모양입니다. 아내는 쿨하게 날개옷을 다시 던져두고 삼겹살 구우러 가더군요.

요즘도 가끔 밤에 아내 어깨를 어루만지곤 합니다. 옛날 날개 자국이 있던 곳을 더듬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들거든요. '아, 이때 이 옷을 안 훔쳤으면 지금쯤 내 인생은 좀 더 평화로웠을까?' 하는 아주 불경한 생각도 살짝 듭니다. 아내 어깨에 남은 건 날개 자국이 아니라, 저랑 애들 셋 뒤처리하느라 생긴 파스 자국뿐인 것 같아 짠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2009년 그 계곡으로 돌아가,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사라지는 선녀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고1 큰놈 학원비 결제 문자가 날아오네요. 선녀는 못 가도 제 통장 잔고는 빛의 속도로 하늘로 승천 중입니다. ㅋㅋㅋ 뭐, 무게 제한 때문에 못 간다니 평생 끼고 살아야죠. 별수 있습니까? 제가 훔친 날개옷인데 제가 책임져야죠. 그런데 어쩌죠.. 와이프는 제 눈속에선 언제나 첫날로 보이네요. 심각한 콩깍지가 씌인거 같아요.ㅎㅎ



6
  • 결혼 바이럴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126 창작기계의 마을 2 토비 26/04/11 701 1
16272 도서/문학'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NTR적 비극성과 순애 3 알료사 26/06/11 707 7
16246 사회가장 값싼 사회정의, 수단화와 그 위선의 본질에 관해. 3 Omnic 26/06/06 724 13
16141 일상/생각지름신이 와서 블투 스피커를 바꿨습니다. 2 야얌 26/04/17 728 1
16114 일상/생각창세기전-형광등편 1 큐리스 26/04/02 730 0
16067 음악[팝송] 브루노 마스 새 앨범 "The Romantic" 2 김치찌개 26/03/11 733 3
16130 스포츠축구)통계로 분석해 본 승부차기. (1) 성공률을 결정하는 요인들. 6 joel 26/04/13 733 10
16248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28. 싸움의 뒤에 T.Robin 26/06/06 737 0
16078 게임[LOL] 3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일정 4 발그레 아이네꼬 26/03/16 740 0
16095 일상/생각제2화: 1998년 가을, 그냥 편할 것 같아서 4 큐리스 26/03/24 742 4
16173 일상/생각AI 접바둑 3 알료사 26/04/30 745 1
16159 일상/생각숫자를 오래 보다 보니 종이가 필요해졌습니다 큐리스 26/04/24 747 0
16068 게임고전 게임 <레거시 오브 케인> 소회 : 라지엘의 복수 2 바보왕 26/03/12 752 3
16193 IT/컴퓨터[게임개발자]바이브 코딩 / AI 개발 도구 오프라인 스터디 모집 · 강남 4 mathematicgirl 26/05/10 753 0
16266 정치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려는 자 누구인가 1 meson 26/06/09 762 6
16096 일상/생각제3화: 2002년 겨울, 아무도 먼저 가려 하지 않았다 3 큐리스 26/03/26 765 4
16153 사회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저, 1995년) 2 K-DD 26/04/22 765 5
16202 일상/생각영어 컨텐츠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4 큐리스 26/05/14 772 0
16174 일상/생각시선유감 4 골든햄스 26/04/30 773 16
16227 일상/생각저희 동네 게임으로 만들고 있어요 ㅎㅎㅎ 5 큐리스 26/05/28 791 4
16244 정치서울시 선거구 별로 보는.. 오세훈이 정원오보다 인물론에서 이겼다는 지표 6 Leeka 26/06/05 796 0
16112 일상/생각godot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3 큐리스 26/04/01 799 3
16206 일상/생각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관리자로 돌변하는, '팬인 척' 하지만 절대로 팬이 아닌 자들. The xian 26/05/17 800 2
16240 정치서울시 선거결과는 무엇의 영향일까 4 meson 26/06/04 804 0
16242 일상/생각사실 와이프는 선녀였습니다~~ 2 큐리스 26/06/04 805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