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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6/09 04:41:42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저의 선동글 - 부실선거 이후의 키배에 부쳐
1.

제목에 썼듯이 선동글입니다.

2.

오랜만에 한국어로 된 책을 읽었어요. 김경만 선생님의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이에요. 하버마스와 로티의 논쟁을 다루고 있어요. 둘의 논쟁은 ['문화' '생활세계' 혹은 '삶의 형식'의 변화가 '이론'에 의해 '촉발' 혹은 '유도'될 수 있는가 (p. 165)]를 다루고 있대요. 각 학자의 원문을 찾아보지 않고 해석에만 의지해서 생각하는 건 찝찝하기는 한데, 상기한 책이 Kim, K. M. (2014). Beyond justification: Habermas, Rorty and the politics of cultural change. Theory, Culture & Society, 31(6), 103-123.라는 논문에 기초하고 있으니 저널인데 뭐 알아서 잘 검증했겠지? 싶습니다.

하버마스는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에는 타당성을 향한 지향이 내재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따라서 상호주관적 논쟁과 비판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대요 (보편화용론). 혹자가 대충 하버마스 이해하는, [안전하게 관리된 토론을 통해 누가 타당한지 따져보지 않으렴?] 하는 그런 입장은 아니에요. 우리가 키배에서 흔히 목격하듯, 실제 우리의 언어적 논쟁에 타당성 뿐만 아니라 자아현시, 감정표현, 선동 등등 여러 실천적 목적들이 얽혀들어가 있다는 걸 하버마스가 부정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당성에 대한 추구가 보편화용의 문법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외부에서 사람들의 문화적 실천을 이해하려 할 때 타당성 논쟁에 [가상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해석자와 참여자 간의 '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주장에 방점이 있었어요. 즉, 해석자에 그치지 않고 참여자로 들어가서 "왜 행위자 자신들이 그들이 제시하는 행위의 이유가 옳거나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해석자 나름의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행위자들을 이해한 것이다 (p. 107)"라고 주장해요. 물론 상대방은 납작하게 자기는 복잡하게 설명하는 대신 상대의 나의 생각 모두 같은 기준으로 접근하여 봐야한다고 조건을 달고요 (방법론적 대칭 공준). 하버마스가 보편화용적 문법을 바탕으로 우리의 [모든] 일상적 언어논쟁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김경만 선생님이 정리한 내용만 보자면,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를 해석자로 믿으면서 빠지는 독단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느껴지더라고요. "하버마스는 왜 B가 자신이 제시한 행위의 이유를 타당한 것으로 믿게 됐는가에 대한 인과적 과정을 A가 재구성해서 B가 제시한 이유를 A 자신에게 이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경우에만 B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 107)" 라고 정리하더라고요.
* 물론 생활세계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 논의, 그리고 왜곡된 소통의 제거 등등의 논지는 하버마스가 자신의 이론적 틀을 메타해석학적 도구로 쓰자는 일종의 메타적 진리주장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제가 헷갈리는 건 그래서 이론가들의 태도를 재정립하는 걸 넘어, 생활세계에서는 언제, 어디에서 적용하자는 걸까이고요.

로티는 이런 하버마스의 주장이 철학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독단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대요. 언어는 진화, 적응, 생존의 유용성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으며, '진리'라는 개념 자체도 언어의 산물일 뿐이라고요. 그래서 적절하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최선일 뿐, 어떤 사람도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특권화 된 언어를 가질 수 없다 얘기하고요. 물론 이러한 로티의 논의 또한 일반화를 주장하는 거 아닌가? 그럼 하버마스가 얘기했던 보편화용적 문법에 다시 포섭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티가 하버마스를 반박하는 주된 내용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버마스식의 접근이 사회/문화 변동을 가져오는데 '효과적'이고 '경험적으로 확증될 수 있는 이론'이냐는 거래요. 왜냐면 로티는 하버마스 식으로 고안된 이상적 담화 상황을 통해서는 1) 무엇이 현재 해결되어야 할 잔인함이고 고통인가를 '찾아낼 수 없고', 2) 그런 문제를 찾아내서 논쟁한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논증은 논쟁 당사자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가를 결정할 수 없으며, 서로의 주장을 재묘사/재분류 함으로써 논쟁을 무한히 이어나가게 할 뿐이라고 했다네요 (p. 178). 대신 로티는 우리에게 가능한 건 에스노그라픽적인, 소설가적인, 르포적인 방식으로 주관적 삶, 체험, 고통, 행복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다른 사람들(주로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어요. 결국 각자가 공리에 가깝게 뿌리내리고 있는 도덕 주장이 있는데 이를 '비순환적'으로 정당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요. 로티는 자기 자신이 나치의 도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논증을 통해 나치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리라 믿지는 않았대요. 이런 로티의 입장은 도덕이 법에 의해 보장된다기 보다는 흡사 가족 간의 관계에서 보이는 믿음/신뢰에 기초한다는 입장이에요.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상상 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고, 이렇게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수를 확장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나요.

김경만 선생님 책에서 정리한 내용만 보자면, 로티와 하버마스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하버마스는 '타당'하기는 한데 자신의 비판이론적 모델링에서 참여자들의 실천적 목표를 배제해버린 것이 경험적인 차원에서 설명력을 잃고 헛돌게 만드는 느낌이고, 로티는 보다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를 하는데 진화론적 관점에서 언어의 기원을 설명한 걸 도덕/정당성 개념과 도덕감정의 출현을 둘러싼 논의까지 확대해서 보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나중에 더 읽어봐야겠지만요. 메타해석학적/메타이론적 논의가 자기지시적 역설이라 불리는 걸 다루어야 하는 지점도 생각해 볼 법한데, 이 부분은 봐도봐도 모르겠더라고요.

3.

요렇게 뚱뚱하게 위에서 정리한 까닭은 이번 부실선거를 둘러싼 홍차넷의 논의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였어요 (https://m.youngan.or.kr/free/16253, https://m.youngan.or.kr/free/16250). 하버마스 방식으로는 세상 못 바꾼다는 로티 지적이 맞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당성 주장은 힘이 꽤 세구나 싶은 그런 생각이 기본인데, 이런 복잡성은 추상적인 하버마스-로티 논의에 사회적 삶을 설명하는 다른 이론적 자원들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해요.

매킨타이어가 '덕의 상실'에서 언급했던 일화 중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어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게임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기물들을 날카롭게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체스 게임으로만 굴러가지 않고, 체스 게임을 하다가 패색이 생기면 상대 뒤통수를 때려버리는 방식으로도 굴러간다고요. 기억이 흐릿한데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일상을 구성하는 실천적 논리는 복잡하고, 사람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전략도 각기 다르다고요. 그렇게 보면 일상/실천의 차원에서는 내가 특정한 공리를 바탕으로 도덕적 논리를 정식화하여 성취할 수 있는 '설득'은 꽤 제한되는 것 같아요. 때로는 재빠르게, 그러나 가볍게 서로의 전제를 환기시키는 전략이 더 효율/효과적이기도 하고요. 저와 휴머노이드님의 탈룰라-탈룰라처럼요 (https://m.youngan.or.kr/tm26/32065).

그리고 이는 또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논의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듯해요. 루만은 커뮤니케이션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놓는, 읽어도 읽어도 아리송한 주장을 했어요. 근데 한 가지 납득이 되었던 건 커뮤니케이션이 무한하게 과거, 현재, 미래의 커뮤니케이션과 이어지면서 뻗어나간다는 점이었어요. 티타임/타임라인으로 국한해서 보더라도, 이번 올림픽 공원에 대한 논의들이 1) 계엄 이후 이어졌던 시위, 2) 소수자 권익 확대를 위해 그간 지속되었지만 관심 받지 못했던 시위, 3) 2008년 촛불집회 등에 대한 타당성 논쟁과 각자의 실천적인 목표 달성의 [기록]들과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재묘사되고 하더라고요. 저 또한 이를 장애인 참정권이라는 미래 주제와 연결하는 (https://m.youngan.or.kr/news2/5541) 얘기를 꺼낸다거나, 올림픽 공원에 시위를 나간 사촌동생의 얘기를 (https://m.youngan.or.kr/free/16253#207201) 언급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의 연쇄에 끼어들었지요.

요컨데, 어떤 방식으로건 재해석을 통해 그리고 새로운 사태에 뿌리내리면서 특정한 주장이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요건 관념 차원의 이야기이고, 개인이 설득력을 지니느냐는 별개의 구석이 있어요. 기아트윈스님께서 짚어주시고 (https://m.youngan.or.kr/tm26/31749), 알료사님께서 미스터 사탄이라는 완벽한 짤을 보여주셨듯이 (https://m.youngan.or.kr/tm26/31749#118539) 에토스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주장이 (특히 추상적일 수록) 언제나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되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이에 힘입어 그 주장에 동조하는 개인이 다시금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이를 나치라는 차원까지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데, 생명력을 얻는 것과 극단적인 주장이 다수가 되는 건 좀 다른 차원이니 뭐.

요런 무한한 복잡성은 왜 우리가 냉소/방어적으로 되어가는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위 차원에서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무한한 연쇄와 다른 게임의 가능성(루만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아렌트도 '인간의 조건'에서 짚었던)을 모두, 너무나도 진지하게 고민하면 일종의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요. 전략 게임에서 때로는 배제 플레이가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고요. 가장 이기적인 탑이 가장 이타적인 탑이 될 수도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복잡한 엔지니어링 같은거죠. 베이트슨의 정신분열증 분석(https://m.youngan.or.kr/free/11996)에 기초할 때, 우리가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메세지들을 판별하고 배치하는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환경의 복잡성을 다루어 낼 수 있는 축소화 된, 그러나 필요에 따라 복잡하게 확장 가능한 원칙이라든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상대를 적당히 납작하게 보는 건 필수불가결하다 싶어요. 여기에 손실회피 성향과 여기서 비롯된 미디어 환경 (부정적인 뉴스가 조회수를 더 많이 타고 전파되는), 텍스트 기반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비언어적 표지의 부재가 결합하면서, 우리가 손쉽게 타인의 의도를 그저 도덕적 신호 제시, 광역비판을 통한 자존감 고양, 선동, 선민의식 등등으로 환원하게 만들지 않나 싶어요. 당연히 배제 플레이가 필요하니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정도의 문제랄까요.

4.

결국 부실선거를 둘러싼 논의가 점점 서로의 의도나 목표에 대한 배제 플레이로 갔던 것 같으니 그러지 말자는 것이 제 선동의 목표입니다. 다 끝나고 선동하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한데, 미래의 다른 논의를 위해 영혼을 보내볼까 싶습니다. 그리고 하버마스의 의견을 따라 위에 뚱뚱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아래에서는 로티의 의견을 따라 저는 어떤 감정이 들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적어보려 하고요. 선동을 강조하는 건 로티의 방법론이 더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거고요. 아 만약 홍차넷 분들 다수가 [모두고려]하자 의견이었다면 제가 또 배제 플레이 하자고 선동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우선 저는 당일에 꽤나 충격을 받았어요. 투표소까지 갔지만 선거를 못한 사람이 있는데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라는 자동적 사고가 먼저 들었고요. 개표를 중단하고 방안을 논의했어야 했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선거사무 관리에서 문제를 일으킨 선관위가 그렇게 기민하게 대응할 역량이 없었을테고, 행정/사법/입법부에서 관련된 의견을 함부로 낼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해당 지역구에서는 재투표를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주말 동안 곰곰이 마음을 들여다보니, 중요한 건 상징적인 차원에서의 회복이지 그것이 꼭 재투표는 아니여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코리몬테아스님께서 해결법remedy(https://m.youngan.or.kr/tm26/31677)을 둘러싼 법적 안정성에 대한 좋은 지적을 해주셨고, 장애인 분들 중 어떤 분들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해왔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서 선관위 국정조사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속상한 마음이 잦아들었어요.

그럼 왜 내가 씹덕감성으로 그리고 선택적 감수성으로 참정권 못 잃어ㅠㅠ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학부 전공과 연관이 있는 듯해요. 저는 사회교육과 출신이고, 이것저것 많이 배우기는 해도 결국 중심가치로 귀결되는 건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메세지였거든요. 아 물론 같은 전공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일뤼지오를 공유하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다른 업역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는 그 메세지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당장 들었던 생각이, 내가 제 사촌동생이나 혹은 학생들에게 앞으로 투표가 중요하다고, 투표하러 나가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거였어요. 어떠한 회복이 없이는 그게 쉽지 않을 듯했고요. 그건 일반의지 확인되었으니 공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https://m.youngan.or.kr/tm26/31677#118338)는 주장의 타당성과는 별개의 차원이라 느껴져요. 요컨데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다른 건데, 제가 신지도 않은 신발로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가 좀 웃기기는 하더라고요. 또한 이렇게 교사적인 역할에 강조된 태도가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접근이라는 것도 알고요. 그래도 뭐 마음이가 순간적으로 그러했던 건 우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환상들이 - 참정권 못 잃어 ㅠㅠ라는 씹덕감성과 함께 - 헌법 41조와 67조에 적힌 선거의 4대 원칙을 실현시키는 기제이고요.

그런 점에서 올림픽 공원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윤어게인의 목소리가 큰 것도, 거기에 시위를 나간다면 거기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당연히 같이 욕 먹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한국이었다면 시위를 나가서 회복을 요구했으리라 생각해요. 그게 제가 저를 위해 쓰는 제 삶의 서사 내에서 보다 매끄럽게 통합되는 행위거든요. 물론 토요일 쯤 나가보고 분위기 봐서 답이 없다 싶으면 일요일에는 런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사촌동생이 (윤어게인 아님) 나갔다 왔다 했을 때 잘했다고 응원했고요. 기왕이면 분리된 다른 집회를 통해 참여하고,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리될 수 있었으면 싶지만요.

그렇게 올림픽 공원에서 일어나는 시위 참여자들 중 일부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지, 티타임이나 타임라인에서 오가는 메세지들에 속상하더라고요. 저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글 읽을 때마다 제가 다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서 우울했었어요. 물론 하루 지나고 나니 해소된 감정이라 큰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쏜 화살을 제가 주워다가 가슴에 찌를까 말까 했던거라 약간 스불재 같은 면모도 있죠.

규모가 다르고 사안이 다르니 일대일 비교는 안 되지만, 2008년 촛불집회에 비유하는 건 꽤 그럴싸하다 싶었어요. 우파들 정신이 들어? 같은 감성은 웃프고, 그보다는 전 2008년 촛불집회를 긍정하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 공원도 긍정적으로 보는 지점이 있었거든요. 윤어게인으로도, 펨코2찍남 같은 기표로도 환원되지 않는 사촌동생을 통해 거기 모인 일부를 상상했기에 그랬어요. 얘기를 나누어보면 반민주 반국힘인, 중도 우파라 할 수 있을, 한국 사회에서 형성된 정치/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표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횐님들이 혀를 끌끌 차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목소리 내고, 쓰레기 줍고, 윤어게인들과는 거리 두고 온 사촌동생의 시각을 통해 집회를 봤기 때문에요.

더쿠의 이대남 킹갓분석(https://theqoo.net/square/4235299276)으로 환원되지 않을 사촌동생이나, 제가 적으면서도 모순적이다 생각하는 저 같은 입장이 있었다는 걸 확성기 틀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고려와 모두배제 사이에서 좀 더 와리가리 해보자고 선동하고 싶고요.

그리고 향후 회복을 위해 어떤 조치들이 취해지는지 함께 잘 지켜보자는 것과 함께, 이번 참정권 논란을 통해 수면으로 올라온 수어 활용자 및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선거 제도 개편(https://m.youngan.or.kr/news2/5541) 논의에도 많관부입니다.



12
  • 이게 킹차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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