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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27 11:18:44수정됨
Name   에피타
File #1   11recipehealth_articleLarge_v2.jpg (78.7 KB), Download : 65
Link #1   https://www.nytimes.com/2020/08/24/dining/smoked-watermelon-ham-vegetable-charcuterie.html
Subject   당근케이크의 기억



전염병 사태로 사무실 일이 좀 한가해지면서 딴짓 하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해야 할 일 오전에 바짝하면 오후부터는 시간이 많이 남아요. 다른 사람들은 웹 서핑이나 온라인쇼핑 하면서 쉰다는데 전 뉴욕타임즈나 다른 외신 보면서 사진 구경하는게 소일거리입니다. 그거라도 봐야 답답한 사무실을 좀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요즘 뉴욕타임즈 기사들은 제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재미도 없어요. 물론 뉴욕타임즈가 여전히 사진이나 그래프를 활용하여 기사의 일차적인 이해를 높이는데는 탁월하지만 '11세에서부터 110세까지의 각기 다른 여성들이 투표에 관하여 내는 목소리', '패션업계에서 활약중인 주목할만한 13명의 여성', '각자의 장애를 딛고 활약하는 장애인 연극 배우들'. 이런 아름다운 기사들은 에디터의 픽이나 특집 기사로 강조되어 나와서 약간의 의무감으로 보게 되지만 곧 심드렁해져요. 사실 제목과 기사 앞머리에 쓰인 결연한 표정의 주인공 사진만 봐도 어떤 내용의 기사 인지 알 수 있잖아요. 뉴욕타임즈는 사진으로 기사 분위기나 내용을 정말 잘 전달해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더라도 사진 한 장으로 현장 분위기는 느낄 수 있는, 한국 기사는 사용하지 않는 사진을 기사에 사용해요. 하지만 이런 사회면 기사는 결국 내용도, 사진 구도도 큰 틀에서 대동소이해요.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이나 신선함이 없어요. 더 이상 피 끓는 20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염세주의에 잠식당해서인지 '좀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순 없나?' 이 이상의 감상이 들지 않아요.

그러다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기사는 뜻하지 않게 요리 섹션에서 찾았어요. 일차원적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사진과 멋진 플레이팅으로 기사 소개 사진을 달고 뜻모를 요리 단어가 포함된 기사 제목까지. 제가 모르는 단어가 기사 제목으로 나왔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기사의 단어 의미와 어떤 요리 사진인지 궁금해서라도 클릭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기사는 주로 요리에 얽힌 (주로 가족에 대한)칼럼니스트의 이야기, 요리 재료나 음식의 문화에 대한 소개, 계절이나 글의 시의성을 살리기 위한 설명, 간단한 요리 레시피로 끝맺습니다. 기사에 따라서는 요리사나 요리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인 설명이 추가되기도 하구요. 이렇게 소개하면 라틴아메리카식 또르띠야부터 평범한 스파게티, 포테이토 케이크까지 음식이 가진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요리기사를 사진과 접하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집에 꽂혀 있던 요리책을 보던 생각이 났어요. 8, 90년대 집에 한 권씩은 있을 법한 주부 잡지 증정품이거나 전자레인지, 오븐을 구입하면 같이 딸려오던 요리 사진 많이 실린 요리책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지금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완성된 요리를 멋지게 플레이팅하고 요리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요리방법을 설명한 내용이었어요. 요리 종류도 한식 뿐만 아니라 서양식 요리에 빵, 쿠키같은 디저트까지 소개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저는 이런 요리들을 엄마에게 부탁하는 건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음식을 그저 눈으로 구경할 뿐이었어요. 어떤 맛 일까. 이걸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그래도 맛있어 보이는 걸로 정해서 한 번 정도는 엄마한테 해달라고 조를법도 한데 너무 일찍 철이 들었었나 봅니다.

그 요리책의 요리 중 가장 이질적이고 기억에 남는 요리는 '당근케이크' 였어요. 어릴때부터 가리는 음식도 없고 주는대로 잘 먹는 착한 어린이라서 채소를 싫어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당근 자체가 맛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당근케이크라니? 일 년에 생일이면 한 번 씩 먹는, 흰 생크림의 달콤함이 특징인 내가 아는 '케이크'의 뜻이 맞는건가? 영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과 요리책에 나온 사진 또한 크림도 없이 그냥 둥글고 평범한 갈색 케이크로 보였으니까요. 심지어 재료와 레시피마저 제 기억으로는 가장 간단했어요. 당근. 밀가루. 달걀. etc. 그리고 몇 줄의 요리방법.
다른 음식은 대충 먹을 때의 분위기나 맛이 짐작이 가는데 이건 짐작조차 가지 않았어요. 전골요리처럼 가족이 함께 먹는 맛일까? 그건 아닌거 같은데 그럼 쿠키처럼 달콤한 맛일까?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졌던 당근케이크는 서울 카페 어디선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당근케이크구나. 미묘한 당근맛 케이크와 케이크 맛 당근 사이의 어딘가. 색깔도 촉감도 당근이 보일듯 느껴질 듯 느껴지지 않는 애매함. 흰쌀밥 같은 카스테라 100%의 부드러움은 아니고 건강을 위해 먹는 보리밥 같은 꺼끌꺼끌한 식감. 당근케이크를 먹는 분위기는 조금 알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뭔가 애매했습니다. 당근의 단맛이 케이크와 어울린다는 설명에 고개는 끄덕여졌지만 여전히 저에게 당근은 냉장고의 묵은 재료를 처리하기 위한 카레용으로 쓰거나 거기마저 들어가지 못한 낙오 당근을 막연히 건강에 좋겠지라는 신념으로 오독오독 씹어먹는, 그런 의미였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아요. 모 커뮤니티에서, 마치 뉴욕타임즈 요리기사 사진을 보는듯한 정갈한 케잌 플레이팅, 사진에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케잌에 신난 어린이들의 달뜬 모습. 그걸 보면서 느꼈어요. 당근케이크는 어린이들의 케이크구나. 그 동안 왠지 막연하게 팬케이크를 어린이들의 케이크로 생각했었는데 당근케이크야 말로 어린이들을 위한 케이크구나. 케잌인듯 아닌듯 달착지근한듯 아닌듯. 그 케잌에는 달콤한 케잌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몸에 좋은 당근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모두 들어있겠지.

네? 그거 당근케이크 아니라구요? 엄마는 고생했고 얘들 안 신났다구요? 괜찮아요. 제가 신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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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타임즈 쿠킹 세션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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