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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2/06 23:06:45
Name   머랭
Subject   어떤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
나는 그녀가 미웠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닮은 누군가를 보면, 바로 부정해 버리고는 했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 건 나빠.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뻔해. 아마도 쭉 실패할 거야.” 나는 누구보다 그녀에게 가차없었고, 그러면서도 그게 정당한 행동이라고 믿었다. 그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그저 좀 독특한 구석이 있는 여고생이라고 해야겠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지만 그러지 않고 싶어하는, 당연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어떤 여자아이. 어머니는 그녀의 앞에서 알약 여러알을 삼켰고 너 때문에 죽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그녀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안심이 되는 것은 그 여자아이도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그 여자아이의 학교 앞에 와서 말했다. 네가 우리 집안을 망치고 있어. 여자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가? 그 여자아이는 화를 낼 때도 타인의 기색을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아주 나쁜 버릇이라는 걸 알고도, 흉터처럼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런 버릇같은 거였다.

여자아이는 모두에게서 떨어지기로 결심했다. 학교든 뭐든, 굳이 상관없었다. 어딘가에 숨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부모가 찾지 못할 공간은 어디일까. 여자아이는 곧장 답을 생각해냈다. 늘 가던 곳. 바로 집 앞의 어딘가. 부모는 여자아이가 어딘가 멀리갈 거라고 생각할 게 뻔했고, 그건 적중했다. 아버지의 입김으로 형사까지 여자아이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그들은 한달이 지난 뒤에나 여자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여자아이는 집에서 딱 두 정거장만 가면 있는 어느 고시원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고시원 아래 있는 옷가게에서, 여자아이는 일자리를 구했다.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여자아이는 꿈을 꿨다. 집으로 가고, 집에서 나왔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건 어떤 악몽보다도 지독했다. 고시원 천장에 빨래를 널며, 여자아이는 목 매달린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렇게 죽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여자아이는 죽음과 몹시 가까웠다.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다, 자주 창문을 열었다. 떨어져 죽을 거라고 소리쳤다. 여자아이는 그게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국은 그 여자아이의 잘못으로 돌아가는 것.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쉽지 않다. 벗어난 사람이 잘못한 거다. 벗어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거다. 여자아이는 이제 충분히 길에서 벗어났으니, 나머지 인생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 여자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아이를 떠올린다. 한마디 한마디, 가장 부끄러운 기억만이 남아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여자아이는 죽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나 두려웠을 뿐이다.

왜 그녀를 그렇게 싫어하세요?
눈 앞의 여자가 물었다. 여자아이는 한참 고민하다가, 글쎄요 하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마음이셨는지 보다 잘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근처에 있는 다른 누군가였다면 너무나 안쓰러웠을 그녀가 어째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지.

다시 길을 잃을까 봐서요.
길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에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거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
돌아온 다는 게 어떤 건가요?

그 여자아이는 길에서 벗어난 것,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였다. 의기소침해질 때면, 그 여자아이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아이는 고시원 방문을 보며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많은 순간,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창문이 있을 법한 벽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떨어져 버리면 모두가 슬퍼할까. 그 정도로 나는 만족하는 걸까. 하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데.

십년이 훌쩍 더 지난 뒤에도, 여자아이는 창문을 종종 보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이 창문을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알 수 없으나, 선명한 건 죽음의 메시지다. 떨어지려고 했던 어머니, 그걸 붙잡는 사람. 엄밀히 말하자면 제 3자였던 여자아이는 그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있다. 어쩌면 그 여자아이는 둘 모두를 제치고 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아이는 그럴 듯 하게 말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해내는 편이었다. 눈 앞에 있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가끔은 정말 착각할 때가 있어요.
뭐가요?
말씀하시는 것보다 훨씬 괜찮다고 생각할 때요.

여자아이는 도무지 창문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아니지, 그건 거짓말이다. 정확히는 죽음 뒤에 오는 상황들을 상상하며, 즐거워 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눈 앞의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녀가 왜 그렇게 싫으세요?
앞에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은 알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죽고 싶어 했다. 그건 해서는 안될 생각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걸어가는 길은 아니었다. 길에서 떨어지면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죽도록 힘든지, 여자아이는 모를 수가 없었다.

때로 누군가는 여자아이에게 이렇게 묻고는 했다. 결혼할 생각은 없으세요? 아이는요? 여자아이는 자신의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여자아이는 누구보다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아이를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게 만들 수는 없다고. 이미 지나간 일이지, 다르겠지. 그런 말들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따뜻했던 한마디를 떠올리자면. 그때는 내가 네 옆에 있을게. 그 얘기였으려나.

창문과 죽음은 굳이 연관시키기 미안할 만큼 가까이 있다. 여자아이와 나도 마찬가지다. 그저 시가닝 흐르면 멀어지고 또 가까워질뿐. 작년 하반기 내내 나는 그 여자아이를 생각했다. 지금은 그 여자아이가 없다. 언젠가 돌아올지라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창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애썼구나.
상담을 받고 나오는 마지막 날, 지극히 반노동적인 별점 설문지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대답대신 만화를 그렸다. 안녕! 나는 갑니다. 고마웠어요.

안녕하는 간단한 한 마디에 모든 게 끝나 버리면 좋겠다. 그렇지만 삶은 별로 그렇게 순탄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고 죽는 것도 세상에,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살아가려면 노력해야 하고,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 괜찮은 척은 덜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멋진 척을 하고 싶다. 그래야 좀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이를 먹은 여자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주 외로운 남자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동물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무시받던 남자아이는, 그토록 원하던 애정과 지지를 또 다른 세상에서 받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단순하고, 수없이 반복됐을 법한 그런 이야기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어떤 것이 좋을까? 아마도 그 가장 흔한 이름이 좋겠다. 어렸을 때 내가 꿈 꿨던 것들이 있다.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줄 어떤 따뜻한 존재. 남자아이의 두 손에 그것들을 가득 쥐어 주었다, 창문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아주 행복해 하도록.

사는 건 정말 쉽지가 않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라고 한다면, 거 되게 멋있는 척 한다고 그럴까. 그렇지만 사실이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쉽지 않으니 어중간하게라도 계속 살아야지 뭐. 지금은 창문을 보면 그때의 여자아이가 떠오른다. 혼자 방에서 주먹을 꼭 쥐고 있었던 여자아이.

그래, 나도 참 힘들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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