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마스터
함부로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인상의 커다란 정문이 보였다. 자동차가 정문을 지나자, 최종 목적지인 커다란 맨션이 나타났다.
맨션의 구조는 루나가 익숙하게 봐 왔던 그 어떤 곳과도 달랐다. 그저 나무 몇 그루가 커다란 건물을 감싸고 있을 뿐,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이나 장미 정원 같은 장식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었다. 어두운 색의 돌.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배치된 것 같은 유리. 날카롭게 깎인 모서리. 부잣집이라기보단 차라리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설계된 요새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운전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오랜 여행 때문이었을까. 땅을 딛고 서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다리가 젤리가 된 것처럼 물컹했다. 숨을 들이쉬자, 살짝 차가운 공기와, 소나무의 냄새와, 촉촉한 땅의 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맨션의 커다랗고 무거운 정문 앞에 몇 명의 여자들이 보였다. 어딘가의 드라마에서 보던, 일렬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든가 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다들 각자 흩어져, 몇몇은 벽에 기대고, 몇몇은 돌기둥을 잡고,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누군가는 그저 우두커니 그녀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건...... 뭘까?'
눈앞의 풍경은, 길을 헤매다 잘못 들어선 고품격 패션쇼의 런웨이같았다. 그들이 입은 옷은 모두, 확실하게 메이드복에 기반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마치 자기가 미래에서 왔거나 SF 영화를 촬영하던 중이었던 듯, 흰색으로 군데군데 포인트를 준 검은색 광택의 바디슈트를 입고 있었다. 반대쪽의 사람이 입은 옷은, 박물관이나 역사 다큐멘터리같은 곳에서나 봄직한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레이스로 꾸민, 온몸을 다 덮은 전형적인 고딕 스타일의 메이드복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짧은 치마와 여기저기가 과감하게 트이고 뚫린 상의 때문에, 마치 옷으로 가린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는, 마치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온 듯,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비단 원단에 이국적인 무늬를 수놓은 치마도 있었다. 다들 어떻게든 메이드복 기반인 것 같긴 했지만, 그 어떤 옷도 똑같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테마풍 호텔? 돈 많은 동호회? 아니면, 그냥 꿈?'
뺨을 꼬집어서 아픈 걸 보니 최소한 꿈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현실감이 모서리부터 서서히 닳아 사라져갔다. 그녀의 부모님이 제공해주던, 다음에 무엇이 올지 항상 예측할 수 있었던 안정적이고 우아한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생생하고, 혼란스러우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래서 누가 언제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혼란 속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안내 요원을 뒤따랐고, 어수선한 마음과 함께 커다란 응접실에 도착했다.
루나는 에메랄드 광택으로 덮인 긴 안락의자의 끝부분에 앉았다. 너무 꽉 쥔 주먹 때문인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새하얗게 변했다. 기다림의 시간. 누구를 기다리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몰랐다. 뭔가를 설명해 주려나? 내 소개를 해야 되나? 아니면 여기서 해야 할 일 같은 걸 알려주려는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히던 끝에, 응접실의 커다란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차에서 봤던 동영상에 나온 남자만큼의 박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존재가 방 안의 침묵을 제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어두운 분위기. 피부의 상태로 봐서는 그녀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았다. 아마도 40대 초중반. 아무런 무늬도, 디자인 포인트도 없는, 심심하기까지 한 어두운색의 스웨터와 바지. 어딘가의 대표나 높으신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나 대담 같은 곳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대학교수나 전문직 기술자처럼 보였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눈은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넘쳐나는 책임. 그리고 그 무거운 어깨를 가까스로 버티는 책임감. 그의 입술은 그녀가 본 그 무엇보다도 무거워 보였다.
그가 루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표정이 없다. 완전한 포커 페이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그의 턱은 긴장하고 있었다. 이 자리, 불편한 자리인 걸까. 아니면 성가시다거나...... 이 곳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떠맡겨진 귀찮은 존재같은 걸까.
"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서 스털링이 보여준 넘치는 박력과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마치 한 단어도 허투루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듯.
"아......"
루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동정? 연민? 아니면...... 두려움? 그는 턱을 몇 차례 긁고,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문가에 있는 메이드에게 말했다.
"방으로 안내해 주세요."
정중했지만, 절대적인 위엄의 명령. 메이드가 루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요청하세요. 가능한 한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저......"
"경우에 따라서 적응이 꽤 힘들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법이니, 필요한 건 뭐든지 저나 주변의 다른 분들께 요청하면 됩니다. 방에 가면 안내서가 있으니, 일단 안내서를 잘 읽어주세요."
"예."
루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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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게 몸에 달라붙은, 활동성을 강조한 옷을 입은 메이드가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저택에 고용된 하인이라기보단 호텔 등에서 전문적으로 접객을 수행하는 프로 같았다. 그녀의 동작은 우아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곳의 의장님이에요. 공식적인 호칭은 '마스터'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들 이름을 부른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 중에는 마스터라는 호칭을 잊어버리시는 경우도 많아요. 항상 줄리안 줄리안 하고 부르니까요."
메이드가 얼굴 위에 따스한 미소를 피워냈다. 루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겠지만, 먼 길 오느라 피곤할테니 오늘은 우선 방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메이드와 함께 복도와 복도가 이어진 미궁같은 길을 지났다. 부드러운 카펫이 걸을 때마다 좋은 감촉을 만들어냈지만, 벽은 그러거나 말거나 고대의 성채처럼 단단해 보였다. 복도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지만, 각 복도를 지날 때마다 그 분위기는 제각각이었다. 어딘가는 날이 서 있었고, 어딘가는 또 너무 가라앉아 있었다. 거기에는 패턴도, 일정함도 없었다. 방마다 분위기가 달랐고, 복도마다 분위기가 변했다. 지금도 사방에 돌아다니고 있는 메이드들이 입은 옷의 디자인 개수만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메이드가 한 방 안에 멈춰섰다. 귀엽게 디자인된, <루나>라는 이름의 타이포그래피가 문 앞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이제부터 이곳이 루나 양의 방입니다. 아니, 이제 같이 살게 되었으니까, 그냥 '루나'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메이드가 문을 열어주었다. 저녁녘의 아스라한 노을이 따스하게 방을 감쌌다.
"편히 쉬어요. 방 안에 식당 가는 길에 대한 안내도가 있으니, 배가 고프면 식당에 마련된 음식들을 자유롭게 이용해 주세요.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벽에 붙어있는 QR 코드로 신청해 주고요. 긴급한 상황이면 벨을 눌러주세요."
그녀는 루나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이고 떠났다.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싱글 베드, 책상, 그리고 필수적인 여성용품 몇 가지. 마치 물속에 빠진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이 방을 휘감았다. 루나는 자신이 들고 온 여행가방을 바라보았다. 옛 생활-그래봐야 어제까지지만-의 모든 유산이 담긴, 그녀가 가져온 모든 것. 여행가방은 방바닥 한가운데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가방을 열어서 짐을 푸는게 맞는 걸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강렬한 오한이 그녀의 몸에 사무쳤다. 그녀는 문을 바라보고는 덜덜 떨며 팔짱을 꼈다. 평화를 노래하는 방과 달리, 루나의 마음은 혼돈의 한가운데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았다. 확실한 것은, 이곳은 그녀가 어제까지 속해 있던 세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이제 피곤이 얼굴에 사무친 남자의 아래에서, 종잡을 수 없는 기묘한 복장을 한 메이드들과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그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