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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4/30 20:43:55
Name   골든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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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시선유감



옛날에 우리는 손절을 할 수 있었을까.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노라면 그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서로를 알고 있고 시시콜콜한 사연을 공유한다. 손절은 그 작은 마을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게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싸우지 않고 농기계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품앗이를 하고 축제 때는 술도 나눠 마시며 그 긴 세월을 살아갔을까?

“아. 동네 가게에 지금 내가 손절한 사람만 4명이야.” 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쉽게 서로를 손절한다. 주식용어에서 본딴 이 말은, 결국 너를 만나 손해본 내가 화가 나 연을 끊는다는 말이다.

연락이 너무 많아도 많아서, 안 되어도 안 되어서 손절한다. 민트초코를 좋아해서 손절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다. 아무리 문제 없이 지낸 사람들이더라도 손절 하고, 당한 기록은 수십을 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도시 문명이기에 가능한 일인 셈이다. 우리가 토지 초반부에 나오는 작은 마을 같은 곳에 살았으면 우리는 민망해서라도 잘 서로를 대하거나, 싸우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같달까. 불같이 화내며 수틀리면 You’re fired!!를 외치는 미국식 유머와 같다. 우리는 ‘감히’ 나를 실망시킨 ‘너’를 다른 ‘더 뛰어난 너’로 대체하길 바란다. 우리가 지불한 시간과 마음의 비용을 감히 배반한 당신을 말이다.

그게 꼭 틀리다는 건 아니다. 인연이란 건 결국 알 수 없는 거니까. 별개의 얘기를 해봐야겠다.

내 남편은 교우관계가 좁고 주로 일로만 사람을 대하는 걸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인내심이 좋아 남들 앞에 가면 괜한 실수를 하느니 ‘침묵이 금’이라는 말을 믿고 꾹 입을 닫아버리는 남정네였다. 그러다보니 지나온 자리마다 동창들은 남지만 그 동창들과도 가끔 추억을 나누는 모임만 가질뿐이었고, 어쩌면 이 나라 남자들의 흔한 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대화가 서툴어보였다.

그때 만나게 된 나의 교회 선배님은 내게 큰 영감을 줬다. 그분은 항상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장점을 칭찬해주는 분이었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은 봉사심이 깊다. 그 사람이 이런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진국이다. 이런 얘기를 조목조목 내가 괜히 경계심에 털 세우는 이들마다 골라서 (눈에 훤히 보이시나보다) 한마디씩 지나가면서 툭, 던졌다. 아. 그런데 말의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 말은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보일 때마다, 돌돌이 청소기처럼 굴러가며 내 안의 털들을 말끔히 치워줬다. 그렇게 그 사람들을 좋게 보면 그 사람들도 나에게 좋게 대해주며 서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가며 관계가 좋은 단계로 발전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나는 이 깨달음을 남편과 꼭 나눠야겠다고 다짐했다. 좀 어렵지만 그때부터 남편이 만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억지스럽지 않게 진심으로 칭찬해주려했다. 남편은 한 친구가 너무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다닌다며, 왜 한가지에 집중해 좋은 성과를 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이 갑상선암도 걸렸었고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법무관 때 쉬었음 되잖아!” “그 사람 군법무관 때도 진심으로 일하고 오히려 현직들보다 더 일했잖아. 기억나?” “아. 그렇지. 바보.” 하면서도 남편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 사람과 만나는 약속을 잡았다. 교회 선배님처럼 했다. 그 사람이 군법무관 때 진심으로 자기 앞에 놓인 피해자와 피고인들의 일에 골몰하며 건강이 상하면서까지 일했던 것이 인상적이라 그때 얘기를 꺼내놓았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홍차넷은 어떠한가. 여기는 작은 커뮤니티지만 대체재가 별로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고유의 정다운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속이 상해도 (웁스) 떠나지를 못하고 계속 자리에 남는 것을 자주 본다. 이 ‘마을’이 소중해서라도 얼굴을 보고, 자리를 같이 하다보면 손절이 쉬운 도시의 반복되는 관계 양상과는 다른 깨달음이 온다.

내가 이래서 저 사람이 싫었구나.
근데 저 사람은 어쩔 수 없었겠구나.
(가끔은) 난 정말 저 사람이 싫다. 이건 어쩔 수 없나봐.
(자주) 아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더 잘 지냈겠다.

우리가 떠나보낸 인연들도 어쩌면 별 거 아닌 이유로 우리가 놓친 걸지도 모른다. 배달 어플을 쓰다보면 작은 불편에도 화가 나지만, 얼굴 보이는 식당에서 친절한 할머니가 잠시 가게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누구나 양해가 될 것이다. 결국 프로 불편러가 되어 마을을 망가뜨려버린 건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오늘 내 남편은 모두가 기회를 주기 망설이는 사고뭉치 마케터를 한번 그래도 술자리에서 인생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나갔다. 불편함을 넘어서 대화를 해보려는 노력이 그 사람의 인생을 별자리 같은 인연들이 수놓게 만드는 주 요인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좋게 보도록 한마디 톡 던져놓는 것도 효력이 이렇게 클진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따스한 시선을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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