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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5/09 01:23:33수정됨
Name   구밀복검
Subject   무지성 지수추종의 창조주 잭 보글은 사회주의자일까?
가명을 쓰는 두 사람이 잭 보글에서 출발해 시장 매개 평등의 가능성을 둘러싸고 다섯 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기록이다. 재인은 시장이 만든 도구가 경제적 평등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명제를 제시하고, 수환은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시장 매개만으로는 평등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두 입장은 충돌하지만, 결국은 시장이 만든 분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라는 공통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잭 보글은 사회주의자인가]
재인: 잭 보글의 기여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핵심을 소유의 민주적 분배에 둔다면, 시장경제는 소유를 주식으로 분할해 거래 가능하게 만들었고, 보글은 그 주식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패시브 인덱스를 만들었다. 누구든 노동하면서 동시에 자본소득의 흐름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다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상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넓은 범주의 느슨한,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보이는 아이디어 범주고, 그 모두가 시장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주식의 시장 거래와 사회주의가 모순 관계에 놓이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임노동자 기금이 그랬고 샌더스의 대기업 지분 분배안이 그러했다. 잭 보글의 인덱스 펀드는 그런 일군의 아이디어들과 비교하면, 반대 방향에서 온 우연한 닮은꼴이라 할 만하다.

수환: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주식이 곧 소유'라는 등식이 사실은 두 종류의 권리를 한 단어로 묶은 것이라는 점을 짚어두고 싶다.
1) 현금흐름권, 곧 배당과 양도차익에 대한 권리
2) 통제권, 곧 의결권과 경영진 감시에 대한 권리
사회주의의 본질은 후자에 있다. 잉여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에 대한 민주적 결정 말이다. 그런데 시장의 분산 소유는 통제권을 자동으로 분산시키지 않는다. 분산되면 분산될수록 통제권은 자산운용사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예컨대 Vanguard와 BlackRock과 State Street 셋이 미국 대기업 의결권의 약 1/4을 행사한다. 보글이 만든 도구가 빚어낸 가장 큰 역설이 여기에 있는데, 바로 광범위한 개인의 재산권이 유례없이 편중된 경제적 통제권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재인: 통제권 편중이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비판이 보글의 의의를 무력화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통제권 분산이 사회주의의 본질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더라도, 그 본질을 향한 길은 한 번에 가지지 않는다. 평범한 가구가 자본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일이 아니다. 19세기 노동자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이고, 보글 이전의 평범한 미국 가구에게도 사실상 닫혀 있던 길이다. 잉여가치의 일부를 노동의 자리에서 회수해 노후로 가져갈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적어도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의 권력에 작은 무게를 보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환: 그 의의는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그것을 사회주의라 부르기보다는, 자본시장의 탈약탈화라거나 포용적 자본주의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글 자신도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 비판한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운용 산업의 대리인 비용, 곧 평범한 저축자에게서 수수료를 뜯어가던 구조였다. 그러므로 보글이 만든 도구가 진정한 평등에 가까이 가려면, 두 가지 보완이 그 위에 얹혀야 한다. [분산된 소유에 따라오는 통제권의 실질적 행사, 그리고 처음부터 자본을 조금이라도 가진 채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시작 자본의 분배가 그것이다.]

[의무 적립이 답인가]
재인: 그렇다면 미국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401(k)를 의무화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의적 해지가 불가능하고 임금의 일정 비율을 강제 납입하는 형태로 설계한다면, 노후 보장과 자본 접근의 광범위한 기반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그런 의무 적립금이 자본시장에서 인플레이션과 인구 감소를 극복할 정도의 장기 수익률을 낸다면, 전국민적 경제 하방, 곧 경제적 평등의 최소 요구치는 그것 하나로도 상당 부분 지탱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어렵겠지만, 사민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수환: 흥미로운 것은 그 모델이 이미 여러 곳에서 실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호주의 Superannuation,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직역연금, 싱가포르의 CPF, 칠레의 AFP가 해당된다. 실제로 호주 Super의 자산은 호주 GDP를 능가하고, 네덜란드 연금자산은 GDP의 183% 수준에 이른다. 즉, 사고실험이 아니라 30년 넘게 검증된 현실이라고 할 만하다.

재인: 그러면 그 결과로 나는 두 가지를 기대하고 싶어진다.
1) 노후 빈곤율의 감소
2) 자본 접근의 광범위화.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충족된다면, 적어도 그 사회의 경제적 하방은 지탱된다. 격차가 사라지지는 않아도, 시민들이 서로를 동질적인 '동료 시민'으로 인식할 만한 토대는 마련된다고 본다. 실제로 호주는 어땠는가.

수환: 반쯤은 기대대로 작동했고, 반쯤은 어긋났다. 노후 빈곤율 감소와 자본 접근의 광범위화 자체는 분명한 효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임금 비례 적립이라는 구조는, 당신이 언급한 경제적 하방은 끌어올리되 그 위쪽의 격차는 그대로 자본 격차로 복제해버린다. 세제 혜택은 한계세율이 높은 부유층에게 더 크게 작용하고,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 경력단절을 거친 여성처럼 노동시장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적립 자체가 약하게 일어난다. 거기에 더해, 의무 적립금이 자본시장에 거대하게 쏟아져 들어가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측면도 있다. 호주 부동산 가격이 그 사례다.

재인: 그런 한계는 인정한다. 그래도 사민주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는 그런 부작용까지 정책으로 다스리며 모델을 더 잘 굴리지 않을까. 예컨대 적립 비율을 누진적으로 설계하거나, 사각지대를 채우는 보완적 제도를 함께 설계하면 충분히 작동하지 않겠는가.

수환: 거기에 작은 반전이 하나 있다. 의무 적립식 자본 매개 모델이 가장 발달한 곳은 호주, 네덜란드, 덴마크 같은 합의주의 시장경제이고, 정작 사민주의가 가장 강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부과방식의 공적연금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말하자면, 자본시장을 우회하는 직접 재정 분배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사민주의의 정치적 본능은 자본주의 게임의 룰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그것을 회피하려는 쪽으로 더 강하게 끌린다.]

재인: 한국 국민연금은 그 둘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가. 적립금 운용수익은 분명히 자본시장 매개를 강하게 보여주는데.

수환: 부분 적립식이고 확정급여형DB이다. 약 1100조 원의 적립금을 자본시장에서 적극 운용해서, 누적 연평균 6%대, 최근에는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하는 세계 3위 연기금이다. 그러나 가입자가 받는 금액은 본인이 적립한 액수와는 무관한 공식으로 결정된다. 즉 집합적인 차원의 자본 매개는 강하지만, 가입자 개인 차원에서 자본을 소유한다는 감각은 발생하지 않는다. 401(k)와 호주 Super가 모두가 자본가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면, 한국 국민연금은 모두에게 안정적인 노후의 흐름이 보장되는 것을 지향한다. [두 모델 다 경제적 하방을 지탱한다는 목표에서는 작동하지만, 사람들이 자본과 맺는 관계가 다르다.]

[평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재인: 평등에 대한 내 정의를 명료히 해두고 싶다. 절대적 평등은 추구하지 않는다. 핵심은 소수의 대부호 계층을 제외한 다수의 시민이 서로를 동등자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미소한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다. 분포의 모양으로 비유하자면, 레이리 분포처럼, 정점에 두꺼운 봉우리가 있고 우측으로 꼬리가 늘어진 형태이되, 그 꼬리가 다른 나라의 분포보다 길어진다 해도 무방하다. 결정적인 것은 꼬리의 길이가 아니라, 그 꼬리가 봉우리의 시민적 동질성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분리다. 다만 하한은 0이 아니라 양수다. 가령 1인당 GDP 1만 달러 선쯤. 봉우리가 그 선 위에서 두텁게 형성되어야 한다.

수환: 이 입장은 정치철학에서 잘 정립된 두 갈래와 닿아 있다. 엘리자베스 앤더슨의 관계적 평등주의는 평등의 본질을 분배의 산술적 동일성이 아니라 관계의 성격에 둔다. 시민들이 서로의 자비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도 다른 이의 지배 아래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충분주의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이 모두가 같이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충분히 갖는 것이라고 본다. 당신의 그림은 이 둘의 결합이고,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어떤 시민도 다른 시민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해서는 안 되며, 어떤 시민도 자기를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서는 안 된다"와도 멀지 않다.

재인: 두 계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만 내 입장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간다. 관계적 평등주의나 충분주의가 분포의 모양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보적이라면, 나는 분포의 우측 꼬리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하다. 5%의 일런 머스크가 존재하든 0.1%의 더 큰 부자가 존재하든, 그 사실 자체가 시민적 평등을 깨뜨린다고 보지 않는다. 시간의 누적에 따라 세대를 거쳐 상속 재산에 의해 불평등이 커지는 문제도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적절한 재분배 메커니즘이 있다면 다스릴 수 있고, 설령 그것이 불충분하더라도 부의 증식이 일어나는 계층의 크기가 충분히 작다면, 소수 계층 내에서의 천문학적 축적은 사회적으로 감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시민적 봉우리가 충분히 두텁고 충분히 단단하다면] 말이다.

수환: 그 입장 자체는 옹호 가능하다. 다만 봉우리가 충분히 두텁고 단단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네 가지를 짚어둘 만하다.
1) 영역 분리: 대부호의 부가 경제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와 미디어, 사법으로 변환되어 다수의 평등을 침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2) 시간 누적: 자본은 자본을 낳고 (피케티가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장기적으로 상회한다고 정식화한 그 패턴이다) 상속을 통해 세대를 건너 누적된다는 점.
3) 임계점: 격차의 양 자체보다도 공공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깨지는 어떤 선이 있고, 그 선을 넘으면 부자는 사립학교로 가난한 자는 공립학교로 분리되어 다시는 같은 시민이 되지 않는다는 점.
4) 하한의 두께: 사회주의적 본능은 상한 통제보다 하한 보장에 더 강하게 끌린다는 점. 당신의 그림은 이 네 전제 위에서만 지속가능하다.

[다수의 결집은 충분히 강한가]
재인: 영역 침범과 임계점 관리에 대해서는 다른 답을 갖고 있다. 시민 다수가, 그것이 70%든 95%든, 동질적 정체성을 공유한다면 그 다수의 결집이 대부호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일런 머스크 5%는 그를 둘러싼 95%에 의해 압도된다. 부의 증식이 극소수에 국한되는 한, 그 안에서의 천문학적 축적조차 사회적으로 감내 가능하다고 본 것도 같은 이유다. 봉우리에서 형성된 시민들의 동질성이라는 무형의 압력이, 꼬리 쪽으로 빠져나간 부의 정치적 변환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상속에 따른 시간 누적도 같은 맥락에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환: 이 명제는 흥미롭게도, 역사적으로 검증된 적이 있는 명제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북유럽과 서유럽이 정확히 그 모델로 작동했다. CEO와 노동자의 임금 비율은 20배에서 30배 사이, 지니계수는 0.25 안팎, 노조 조직률은 70-80%, 두꺼운 공공 영역(공교육과 공공의료, 공영방송), 노조와 사용자 단체와 정부의 삼자 합의가 정책 결정의 표준이었던 코퍼라티즘. 시민들 사이의 신뢰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재인이 그린 분포가 거의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이 모델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작동했던 가능성이다.

재인: 그러면 내 모델이 다시 가능하다는 뜻이지 않은가. 한 번 작동한 적이 있는 가능성이라면, 다시 한 번 시도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텐데.

수환: 진짜 질문은, 그것이 왜 1980년 이후 약화되었는가에 있다. 침식의 동력은 다섯 가지였다.
1) 자본 이동성의 폭발(브레튼우즈 붕괴 이후)
2) 노동 결집력의 약화(제조업의 글로벌 이전)
3) 정체성의 단편화(미디어 환경의 알고리즘화)
4) 공통 공간의 잠식(공교육과 공공의료와 공공주택의 사사화)
5)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부의 정치적 변환력.
머스크가 가진 것이 단순한 부가 아니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그는 트위터를 가졌고, 알고리즘을 통제하며, 정치자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 부의 핵심 효과는 95%를 직접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95%가 자기들끼리 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인: 그것이 결정적이라는 진단은, 어쩌면 내 명제의 가장 까다로운 전제를 건드린다. 동질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95%가 분포에 의해 자동으로 형성된다고 가정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로는 별도로 형성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정치적, 문화적 성취라는 점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면 거꾸로 묻고 싶어진다. 그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분명히 가능하지 않은가. 가능했던 적이 있다면 다시 가능할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사회주의 정치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결국 시장이 만든 분포를 기반해서 정치가 다시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수환: 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자동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미국에서 누진 과세 강화는 늘 60-70%의 지지를 여론조사에서 받지만 통과되지 않는다. 매번 다른 균열이, 곧 이민과 낙태와 문화와 인종 같은 균열이 동원되어 다수가 자기들끼리 분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95%의 결집은 정치 시스템 바깥에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과 미디어와 공공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고 지켜져야 하는 일이다.

[시장 매개 평등의 21세기 조건]
재인: 그러면 내 모델은 21세기에는 작동 불가능한가. 1945년에서 1980년까지의 그 풍경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수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자동으로 작동하지는 않으며, 모델을 작동시키는 환경 조건이 별도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버전이라면 네 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
1) 글로벌 협력 차원의 자본 통제(OECD의 글로벌 미니멈 법인세 같은 것)
2) 디지털 플랫폼의 공공화 또는 강력한 규제(공통 사실 공간을 회복하기 위해)
3) 공통 공간의 재조직(부유층도 사용할 만한 수준의 공교육과 공공의료)
4) 그리고 노동의 새로운 결집 인프라(공장 노조 모델을 넘어선).

재인: 그러면 첫 대화로 돌아가서 묻고 싶다. 잭 보글의 기여가 사회주의적이라는 명제에는, 결국 어떤 답이 남는가.

수환: 보글이 만든 도구는 분명한 진보다. 다만 도구는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가 어떤 권력 구조 속에 끼워 넣어지느냐가 결정적이다. 광범위한 소유는 그 자체로 평등을 가져오지 않는다. 통제권의 민주화, 시작 자본의 분배, 시간 누적의 차단, 정치적 변환의 봉쇄, 이 보완들이 없으면 보글적 분산은 안정적인 자산 격차의 유지 메커니즘이 될 뿐이다.




7
  •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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