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24 18:02:42
Name   王天君
File #1   gangnamyeok16.jpg (243.4 KB), Download : 37
Subject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누군가가 떠나버려서 슬픕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나 같기에, 내가 아는 누구와 같기에,
나는 모르지만 오늘 우연히 마주칠 누군가와 같기에
우리는 지금 슬프고, 슬퍼해도 됩니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누군가의 흑백사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사진 속 그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상주가 누구인지
부조금은 어디다 쓸 것인지
여기서 절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육개장 고기가 상한 건 아닌지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은 그를 만나러 갑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당신은 늘 입던대로
단정하게, 조금 후줄근하게, 튀지않게 차려입고 갑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묻지 않습니다.
어째서 넥타이를 하지 않았는지
양말 색깔은 그게 뭔지
부조금은 얼마를 낼 것인지
진짜로 추모하러 온 건 맞는지
의심의 눈초리도, 서늘한 미소도 보내지 않습니다.
당신은 침통한 얼굴을 하고서
조금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살짝 뻣뻣하게, 각이 진 인사를 나눕니다.
당신은 그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언어가 아닌 채로 맴도는 많은 생각들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그는 다 알아듣습니다.
그래, 알아요.
와줘서 고마워요.

다 똑같습니다.
당신은 가서 부조금을 낼 필요도
격식을 차려 입을 필요도
허리 굽혀 인사를 할 필요도
별로 끌리지 않는 끼니를 해치울 필요도 없을 뿐이에요.
당신도, 그도 서로를 잘 모르지만
괜찮아요.
당신이 슬프고, 당신이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그 감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곳을 찾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

시끄럽죠.
그곳을 가기까지 큰 소음이 일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괜찮아요.
그 수많은 소리 가운데에서
굳이 뭔가를 건져내지 않아도 됩니다.
말했잖아요.
그 곳에서는
당신에게 아무도,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걸 다 들으려 할 수록
점점 망설여질지도 몰라요.
잠깐만 귀를 막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생각해볼까요.
만난 적 없는 그가, 그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를 만나러 갑니다.
그 곳에 서있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을 말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우리는 이미 다 그렇게 만나러 갔었죠.
무슨 일이 일어났고 뭐가 어떻게 되가는지
다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만나러 갔어요.
슬퍼서 찾은 그 곳에서
슬퍼하는 많은 이들을 만났고
그렇게 슬퍼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어쨌건 만나러 갔고 슬퍼할 수 있었죠.
눈 속에 담기는 이들이 모두 슬퍼보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슬퍼하고 왔습니다.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만나기 전의 생각들
만나고 난 후의 생각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들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떠올리지 못할 생각들이에요.
그래서, 당신은 그를 만나러 가요.
그리고 거기서 그를 찾습니다.

당신이 찾은 그 곳에
그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지금, 거기에 없으니까요.
아마 기다려도 오진 않을 거에요.
그러든말든 당신은 없는 그를 향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이 하고 싶었나요?
그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는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는 사이니까, 아마 물어볼 게 많을 겁니다.

야속하게도, 별 답을 안 해줄 겁니다.
어차피 알고 한 질문들이니까 별로 서운하진 않을 거에요.
당신이 누구고 그 어떤 질문을 했건
얼마나 긴, 짧은 이야기를 했건
당신은 딱 두가지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됐다고.
다시는 누구도 그렇게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일수도, 혼잣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미 알고 있는 답이니 만날 것까진 없다 할려나요.
만나서 물어보면, 조금 다를지도 몰라요.
어쩌면, 만의 하나,
슬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나자마자, 만나고 난 후, 아니면 더 늦게라도요.

이상한 이야기죠.
슬퍼서 만났는데, 슬퍼할 수 있게 된다니.
슬픈 것과 슬퍼하는 건 다를지도 몰라요.
우리는 슬픈 일을 많이 겪지만
늘 잊어버리고 살아요. 슬펐지만, 슬퍼하진 않고 흘려버리죠.
어떨 때는 슬프지 않아도 슬퍼하곤 해요.
나 아닌 다른 이의 슬픔에
나는 별로 안슬프지만, 슬픈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슬퍼해주죠.
아마 당신이 찾은 그 곳은
슬프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슬퍼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러길 바래요.
당신이 만나려 한 그도
슬픈 모습보다는 슬퍼하는 모습을 더 고마워하진 않을까요.
슬퍼하는 것으로
슬퍼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요.
슬퍼할 때를 놓치면
뒤늦게 슬퍼지고, 그 때 가서 슬퍼해야 할 수도 있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슬퍼해주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는 게
나중에 혼자 슬프기만 한 것보다는 더 나아요.
그래도 슬퍼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덜 슬프거든요.

슬퍼하지 않는 이들이 보여서 슬프다면
마음껏 슬퍼해버리세요.
오로지 그와 당신, 둘만의 대화를 나누세요.
그리고 우리끼리 슬퍼하도록 해요.
슬프고 안 슬프고를 굳이 가리려 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는 이가 있고
슬프지 않은 이들은 슬퍼하는 당신을 어쩌지 못해요.
슬퍼하는 당신을 통해 내가, 우리가, 그가
그를, 우리를, 나를 만납니다.

저는 계속 슬프네요.
그래서 다시 그를 만나러 갈려구요.
슬퍼하지 않으면, 슬퍼서 힘드네요.
혼자서 슬퍼하기도 조금은 힘듭니다.
그러니까
그 곳에서 나와 우리가, 그가
당신을 기다려요.
그를 만나러 가요.
기다리는 곳이 바뀌었지만
만나는 사람은 똑같아요.
기다릴게요.
괜찮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만나러 가요.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토비 15/06/19 36726 1
    16285 스포츠1라 2/3시점에 쓰는 월드컵 이야기 the hive 26/06/16 99 0
    16284 일상/생각17년차 남편은 낭만보다 안전한 방법을 택합니다. 5 큐리스 26/06/16 547 8
    16283 사회SNS와 숏폼이 해롭다면, 아이들에게 법으로 금지해야 할까 14 + 루루얍 26/06/16 622 8
    16282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30-3. 강아지일까, 고양이일까? T.Robin 26/06/15 264 0
    16281 방송/연예2026 걸그룹 2/6 14 헬리제의우울 26/06/14 613 18
    16280 오프모임6/19일 한양도성길 같이하실분 12 살찐론도 26/06/14 519 2
    16279 역사윤석열 등의 평양 무인기 도발사건 (일반이적 등) 재판부 설명자료 3 + 과학상자 26/06/14 607 4
    16278 정치6.3 지방선거 동일득표수의 우연성 검증 10 Memex 26/06/14 856 6
    16277 정치미국 2030 대졸자의 정치성향 동향 2 열한시육분 26/06/14 645 2
    16276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30-2. make soooome NOISEEEE! T.Robin 26/06/13 521 0
    16275 정치2030세대의 보수화가 아니라 2030세대의 대한민국화 32 가람 26/06/13 1451 11
    16274 창작1화. 밤 11시 11분 큐리스 26/06/12 400 0
    16273 일상/생각교육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드는 생각 23 JUFAFA 26/06/11 1107 2
    16272 도서/문학'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NTR적 비극성과 순애 3 알료사 26/06/11 706 7
    16271 방송/연예올타임 멜론 걸그룹 별 누적 감상자 1위 곡들 2 Leeka 26/06/11 414 0
    16270 IT/컴퓨터드디어 나타난 클로드 미소스 Fable 17 토비 26/06/10 924 1
    16269 창작리쥬브 프로토콜: 30-1. 차갑지만 따뜻한 T.Robin 26/06/10 973 0
    16268 일상/생각네비가 없던 시절 2 큐리스 26/06/10 537 4
    16267 일상/생각캠핑장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3 큐리스 26/06/10 623 1
    16266 정치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려는 자 누구인가 1 meson 26/06/09 761 6
    16265 일상/생각놀이공원 패스권은 정당한가 28 당근매니아 26/06/09 1170 5
    16264 일상/생각B팀장과 정년보장 (최종) 9 Picard 26/06/09 620 4
    16263 정치요번 선거 단상. 15 세인트 26/06/09 868 27
    16262 정치연대에타의 잠실시위 취재기-변질된적 없는 잠실시위 41 고고공교 26/06/09 1480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