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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04 23:13:51
Name   barable
Subject   너의 이름은 - 이상한 영화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는 처음입니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와 일본에서의 대중적이고 선풍적인 인기를 접했을 때, 틴에이지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십 대와 로맨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몸이 바뀌는 이야기에서 타인의 몸에 깃든 당사자들은 남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체험을 하며 서로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합니다.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끼리 몸이 바뀔 때나 모녀끼리 몸이 바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와 자신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오는 발전과 도약의 과정은 자연스레 영화의 내외적 갈등과 맞물려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이 과정이 자연스러우면 사랑스러운 영화가 되어 기억 속에 남습니다. 보통 멜로 영화는 로맨스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주로 여주인공)의 성장이 이루어짐으로써 마무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 스와프는 저런 과정을 편리하게 해주는 편한 도구죠.

그 소재는 고전적이지만, 일본의 십 대들과 결합하였을 때 지금껏 보지 못한 멜로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만 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영화는 주연으로 내세운 십 대 아이들의 감정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인정받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주연들은 이미 신묘한 힘으로 몸을 바꿔가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데, 굳이 영화 안에서 몇 번이나 사랑과 만남은 '신의 뜻'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심지어 여주인공은 신의 뜻을 받들고 제물까지 손수 만들어내는 무녀입니다. 그런 배경설정들이 감독에겐 부족했나 봅니다.

영화의 전반부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문화와 역사성에 대해 할애되니 걱정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연들은 만나고 서로를 사랑하는 장면이 묘사되기는 할까? 저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긴 할까?

사랑에 대한 부실한 서사가 후반부의 놀라움으로 바뀌기 전에 이 영화 속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십 대들에 대해 지적해야겠습니다. 영화의 조연들은 주연들과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디 스와프의 진실도 알지 못하고, 주연들의 감정과 만남에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2010년대를 사는 청소년으로서의 기발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순히 2010년대의 청소년이 아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시대의 아이들로도 기능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십 대들은 엉뚱하지도 사랑하지도 심지어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배경 같은 등장인물들과 사랑의 문화에 대해 전반부를 할애해놓은 영화는 뻔뻔스럽게도 타키와 아르바이트 가게 선배의 사랑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학교라는 좋은 배경을 두고서 굳이 성숙한 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아르바이트 장소를 서브 로맨스의 중심지로 부각한 것은 작위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스커트를 실로 꿰매주고 자수를 놓는 '여성스러운 행동'으로 호감을 사고, 그 이후 설명되지 않은 '여성스러운 행동들'로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했다가 운명이 아님을 깨닫고 '성숙한 여자 선배'가 남자 주인공의 기억 속 여인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헤어지는 것으로 영화 전반부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 영화는 연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영화는 그러한 이유로 고작 십 대들의 사랑에 바디스와프과 운명, 신비의 힘을 빌린 선험적인 기억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건 몸이 바뀐 두 사람이 사랑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만 하는 두 사람을 일본의 토속신으로 현현한 영화감독이 이어주는 과정을 다룬 것이었으니까요. 이것이 판타지 멜로라면 가장 설득력 있게 짚고 넘어가야 할 장면들이 뮤직비디오로 편집되어 제시되는 것과 시골에서 벗어나 상경을 바라는 상투적인 환상을 품은 소녀가 고작 도쿄에 올라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와 디저트를 먹는 것 뿐인 게 이해가 됩니다. 감독은 십 대나 여자아이의 행동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시골소녀의 몸에 갇혀버린 남자아이도 마찬가지고요. 주연 중 한쪽은 꿈을 이루어 세상을 만끽하는 데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한다는 비대칭성에서 자연스럽게 끌어낼 만한 갈등도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바디스와프로 모자라 운석이라는 우주적 의지에 휘둘리는 평화로운 촌락의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개변의 이야기를 진행할 때 더는 그 장단에 맞춰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정말 차원이 다른 상상으로 뭉쳐있습니다. 보통은 순수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역사를 바꿔가며 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로맨스를 설득력 있게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반대로 로맨스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저런 어마어마한 사건을 집어넣습니다.

영화를 유심히 관찰해봐도 두 사람이 사랑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힘듭니다. 그저 서로의 삶을 반복하다 보니 사랑에 빠진 것이죠. 이게 빈약할지라도 빈곤한 계기로 연애가 시작되는 것은 그렇게 손가락질받을 사랑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해나가는 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으니까요. 슬프게도 차원이 다른 상상을 하는 이 영화는 그런 고민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배경으로 소비되었던 십 대들을 부자연스럽게 제시된 복선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변모시키고 있죠. (여주인공의 아버지와 촌락공동체 사이의 부패가 제시된 이유가 겨우 남자 조연을 폭발물 전문가로 등장시키기 위해서라니 정말 대단한 본말전도이지 않습니까?)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그토록 끊임없이 강조된 기억이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그 기억이 왜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동기 말고는 소중한 기억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장면의 처절함에 개연성을 살릴 수 없었는지. 사랑하기 위해 기억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어서 운석으로 도피한 것인지. 기억에 대한 감정이 사랑으로 부터 나왔다고 말하지만, 꿈속의 평화로운 과거를 지키는 것은 본래 판타지의 이야기지 로맨스의 서사가 아닙니다. 세기의 초시공 로맨스를 위해 배경들을 너무 희생해놓은 나머지 최후의 클라이맥스에서 여주인공이 부패한 아버지를 설득하는 장면은 차마 묘사되지 않고 넘어갑니다. 이후의 감동적인 재회로 클라이맥스의 빈자리를 연장하고 메울 수 있는데 뭐하러 문제 해결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고민하겠습니까?

영화는 판타지와 로맨스가 불분명하게 섞여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가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완이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게는 영합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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