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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5/21 16:55:07수정됨
Name   알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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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저궤도인간 잡상




모자무싸와 저궤도인간이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는게 저에게는 조금 의미있어 보였읍니다. 하나는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서 흥행이 덜 되었고, 하나는 아직 아는 사람들만 아는 웹툰이지만,

둘 모두 자기 작품의 타겟이 되는 소비자층의 범위를 좁혀서 "나는 이분들을 위한 얘기를 좀 할께요"라고 작정한듯 보였거든요.

박해영과 조은영이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갬성은

창작을 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실패했거나 혹은 아직 미생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간절함입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경제적 성장과 함께 문화강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메이저 무대 뿐 아니라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 독립영화 (넓게 보면 유튜버 등 인방씬까지 포함해서) 등 과거에는 거의 없거나 극히 작았던 시장이 확대되고 등용문이 열리면서 상대적으로 낮아진 문턱을 통해 다수의 창작인들이 예술계의 한쪽 구석(이라기엔 너무 큰.. 그렇지만 아직 메이저와는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는.. 질적으로나 스케일로서나)에 진입하게 되었고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실패하거나 미생인 사람들은 몇백갑절 몇천갑절 많을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7~80년대 실패한 방구석 문청들이 가지고 있을법한 야망 혹은 열패감 같은 것들이 훨씬 더 넓고 다양한 계층들에게 공유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20세기식 문청갬성은, 내가 글에 인생을 거는 순간 [나 리얼로 굶어 뒈질 각오 했읍니다]에 사인 하고 들어가는거였고 싹수 안보이면 당장 때려치우고 속인으로 사는게 당연한 일이였기에 누칼협이 가장 합법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었는데

대 뿌에엥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그들도 자신들에게 온정적 시선이 필요하다 갈구하고 또 거기에 동의하는 적지 않은 관계자들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생산에서의 관계자이든 소비에서의 관계자이든, 혹은 예술계 바깥쪽 미생들과의 연합이든..

한국 중산층 청년들 상당수가 공유하게 된 감각 ㅡ

대학 다닐때까진 뭔가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접지는 못했고, 생활은 비정규의 노동 혹은 등골브레이킹으로 유지하면서 자기 안의 가능성을 천천히 장례 치르고 있는 사람들의 그것..

해서 어떤 비범한 창작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것을 부르는 시대의 목소리 같은 수요층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다.. 라는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설사 비범하지 않아도 그것은 비범함.. 아니 비범해야만 함.. 너무도 아프고 외로운 그들을 위해..

모자무싸나 저궤도인간이 다루는 보편성이란, 그들이 대중 전체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중진국 돌파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정 유형 산업의 팽창과 그 종사자들이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넘는 상처를 공유하게 되면서 나타난 세계의 것입미다..







문창과와 문단, 출판 이야기를 다룬 만큼 저궤도인간 매 회차 베스트 댓글들은 뭔가 어설프게 문학적이라 재미있으면서도 아련합니다. 마치 한국의 모든 전현직 문학소녀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것 같은 갬성.. ㅋㅋ

제가 주인공을 응원하는 그곳의 분위기를 까긴 했지만 주인공은 아주 참한 인물입니다. 그는 충실하게 속인의 삶에 종사합니다. 창작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채 박봉으로 20세기식 추함의 전형인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부모를 극진히 부양하고 그로 인해 평생 잊지 못할 연인에게 환승당하는 운명을 거의 성인의 경지에 오른 의연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연민이 세상을 향한 증오로 흐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어렵지만 트라이를 합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내 몫의 비참함을 묵묵히 관리하겠다는 의지와 존엄이 있읍니다.

환승 사랑 묘사가 참 좋았읍니다. 21세기의 가난한 사랑 노래.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의 시 진도를 나갈 시간이 오면 해당 단원의 모든 시를 외우게 했읍니다. 못 외운 학생은 당신께서 직접 제작하신 <엑스칼리버>로 피떡을 만들곤 하셨는데 야만의 시대라고 어떻게 시를 그렇게 가르치냐 어이가 없으시겠지만 저어는 그때 그 분 덕분에 가난한 사랑 노래를 외운 것을 아직까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외우려고 애쓰는 일련의 과정에서 알게 되는 시의 어떤 부분이 있더라구요. 제 차례가 됐을 때 숨죽인 학우들 사이에 혼자 일어서서 내가 엑스칼리버의 다음 먹이감이 될까 조마조마하며 읊어나가는 한 구절 한 구절이 교실 속 정적을 가르며 지나갔고 국어샘이 다음 학생을 호명하는 것으로 합격 판정을 내려주시던 순간 저는 이상하게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사랑을 완수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던 것입니다..

그때의 기이한 착각을 다시 한번 만화속 사랑 묘사에서 경험하면서 20세기 인간인 제 관점에서는 이 배부른 새기들이 무슨 기만질이지?하는 꼰대기질 나오려다가도 작가의 탁월한 연출과 몰입감 제공에 백기를 들고 그래 2026년에 이정도면 가난한 사랑 노래 맞다. 그때 중3 교실에서 내가 잠깐 대면한 듯했던 감정이 지금 이 감정 맞아 라고 인정하게 만들었읍니다. 20세기식 생존가난은 아니더라도 21세기라면 가능성의 유예와 마음의 파산도 가난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최소한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속인의 일을 하지 못하는 문청 후배 동재에게 10만원대의 자잘한 금액이 500만원까지 쌓이도록 돈을 빌려주고 또 빌려주고 끝내 더 이상 빌려주고 싶어도 빌려주지 못할 때가 와서야 멈춘다거나 (제 마음속에서 21세기의 문청갬성을 승인한다면 동재가 예수가 되어 알빠노의 십자가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베드로가 된다면 저는 승인취소를 하겠지만 작가님이 2부에서 어련히 잘 처리해주시리라 믿음)

언뜻 괜찮은 놈인 것 같지만 이상하게 나의 무언가를 부당하게 훔쳐갔으리라 의심하고픈 꺼림칙한 동기 백상엽의 출세가도에 어쩔 도리 없는 시기심과 열등감을 품으면서도 끝끝내 성의 있는 교제로 진심을 이끌어내는 뚝심 같은 것들은

그래 이런 사람에게는 아주 조금은 도덕에 어긋나는 행운이 찾아와도 흐린눈 떠주는게 강호의 도리 아니겠어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당연히 저는 그 유혹을 뿌리치겠지만 그런 독자들이 생기는 것도 어쩔수 없겠다 싶을만큼 잘 그려진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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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분에 좋은작품 알아갑니다.
  • 리뷰 마저도 하나의 작품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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