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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5/27 15:33:37수정됨 |
| Name | 알료사 |
| Subject | 빨간버튼 파란버튼 하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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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하여가를 처음 접했을 때 아직 세상을 선악 구분부터 한 이후에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어린 저에게 그것은 악의 설정이었읍니다. 성경에 나오는 블렛셋이나 골리앗 같은 거였죠.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설정으로서의 악으로 등장한 존재들은 저에게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읍니다. 대등한 인격체가 아니었거든요. 그들은 악을 수행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이방원의 시구는 그렇게 연극적인 악 취급을 할수밖에 없을 정도로 천해 보였읍니다. 천박하다 혹은 비천하다 등 비슷한 유의어들을 접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에게도 그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읍니다. 언어가 습득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세계는 존재합니다. 어마어마하게 광활한 세계가)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말들을 부끄러움 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가 - 걔는 그런 역할을 맡았어 - 가 아니라면 용서가 안되는 거였죠. 정몽주의 단심가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 같은 것으로 보였읍니다.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후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르렀다면 고려 이전의 왕조교체와 조선으로의 왕조교체가 일종의 생애주기 비슷한 반복의 일환에 있으며 고려라고 딱히 충성의 유일한 대상이 되어야 할 권리는 없다는걸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매 왕조는 각자가 그 왕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헌신한 충신들에 의해 지탱되었다는 이야기에 과몰입된 저에게는 아무튼 지금이 고려면 고려에 충성하는 사람이 선이다, 라는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읍니다. 백성들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고려니 조선이니 간판갈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까지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구요. (거기까지 생각하면 너무 다른 차원이 되니께유) 그러다가 조선 초기 여러 성군들의 치세와 왜란,호란이라는 위기를 거쳐 구한말, 일제치하까지 다 구경하고 다시 이방원으로 돌아오면 이제는 물음표가 뜹니다. 너 설정으로만 있는 NPC가 아니었구나? 너도 충분히 조선의 여러 거물들과 견주어지는 끕의 주인공이었구나? 왜그랬어? 그래 알겠어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확정짓고 싶었던건 알겠어, 더 큰 목적을 위해 방해물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도 알겠어. 그런데 그런데 말을 왜 그렇게 했어. 왜 그렇게 작은 사람처럼 굴었어.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 지조 그딴게 무슨 소용입니까 때려치우고 권력이나 잡읍시다 부귀영화나 누립시다 꼭 그렇게 말해야 했어? 정몽주한테 그러고 싶었어? 정몽주랑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안면몰수 해버리는거야? 너가 정말 그런 인물이야? 이방원과 정몽주의 렙배틀은 후대의 사람들이 극적인 윤색을 위해 지어낸 설화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렇다고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삶이 하여가 내용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헤아려보면 싱크로는 상당히 높아 보였기에 저는 상기의 질문을 거둘 수 없었읍니다. 정몽주의 진실과 이방원의 진실은 꾸며낸 시구의 이미지보다 훨씬 참되고 격렬하게 부딪혔을 것임이 분명했으니까요.. 성인이 되고 내 밥벌이를 하면서 저는 서서히 이방원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전향될수밖에 없었읍니다. 이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읍니다. 단순한 이치였죠. 직장인의 위치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타협과 굴종들. 인간이란 존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를 배척하고 최소한의 생을 유지하는게 가능하기나 한가? 하지만 이방원이 정말 그런 생계형 굴종의 차원에서 스스로 작은 사람이 되었으리라 믿을 수는 없었읍니다. 스타여캠과 스타대학이라는 세계를 씹덕들만의 독립된 에덴동산이라고 착각했다가 원치 않았던 팽창과 유입을 경험해보고 난 뒤에는 조금은 더 이해가 된 기분이었읍니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다는게 무슨 의미였는지. 불순한 것이 섞여들었을 때 순수(어디까지나 편향적 취향에 입각하여)한 것이 반드시 훼손되지는 않는다. 외피의 통일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순함과 더불어 확대된 전체의 세계에서 순수에 대한 재발견과 새 보금자리의 확보 - 폭싹 세계관의 가정부 같은 - 불순함에서의 의도치 않았던 기여의 통로도 열리게 된다. 오히려 그 불순함들은 무지로 인한 새롭고 이기적인 순수의 지평을 열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적이기도 하다. 나의 순수가 상대방에게는 불순함으로 침범해 똑같은 작용이 일어나는 세계선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역동성을 두고 백 년까지 누리리라, 했던거지? 당신이었다면 그랬을것 같아, 라고 뇌내망상을 펼치면서 조선 이후 한반도의 운명이 맞이해야 했던 모든 불순한 팽창들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재해석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 ♤ ♤ ♤ https://youtu.be/YId2VCUIcCc?si=foowJR1iJT2E_HzW https://youtube.com/shorts/g43I0jB9bAw?si=bL-HBXlB7sIKmmE2 https://youtube.com/shorts/8hOqkMmHo8A?si=oZrAwuK0H3Ban0FU 엊그젠가 탐라를 휙휙 넘기다가 "당연히 파란 버튼 어쩌고 저쩌고.. " 비슷한 문구를 스쳐지나가듯 넘겼었읍니다. 뭐지 오억년버튼 비슷한건가 싶었는데 귀신같이 쇼츠에 해당 영상들이 뜨더라구요 ㅋㅋ 그때서야 다시 탐라에 검색을 해봤는데 어쩐지 지워진듯 했읍니다. 4.8억 구독자를 거느리는 유튜버 미스터비스트가 x에 가상투표를 올립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빨간 버튼 또는 파란 버튼을 누른다. 파란 버튼이 50%를 넘으면 전원 생존한다. 50% 미만이면 빨간 버튼을 누른 사람만 생존한다. 투표 결과는 파란 버튼 56%, 빨간 버튼 44% 정도가 나왔다고 합니다. 넷상에서는 이를 두고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도덕적이냐를 두고 논쟁이 붙어 레딧이나 유튜브 쇼츠 댓글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재생산되었다.. 는 이야기. 빨강 누르면 100%사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전세계 아무개들의 불투명한 선의에 내 목숨을 맡기는 도박을 어떻게 하느냐는 주장과 사회 신뢰와 공동체 의식을 시험하는 문제에서 이기적으로 자기만 살겠다는 심보를 용납할 수 없으며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파랑 누르고 죽겠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읍니다. 국가에 따라 빨강 파랑 비율이 달랐다는 점도 재미있었읍니다. 사회 신뢰가 높은 국가에서는 파랑이 많고 경쟁 압박이 높은 국가에서는 빨강이 많다는 것이었죠. ♤ ♤ ♤ 이 질문은 극단이 아닌 사람들도 극단적 논리를 펼치도록 유도하고 있읍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결과값부터가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고, 빨강파들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이 대세가 될 경우 100%죽게 되는 파랑파들을 외면하도록 강제합니다. 파랑파들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을 경우 빨강파들을 잠재적 혹은 확정적 살인자 취급하게끔 100%도덕적 우위에 서게 만듭니다. 저는 미스터비스트라는 인물을 이번 이슈에서 처음 알았는데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구독자 수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것 같은 설문이었읍니다. 이런 세태는 인간이 어찌 막아볼 도리가 없는 스케일이구나. AI 사마시어, 어서 이 럭키아미노산 인간들을 지배하소서. 당신께 뇌를 의탁한 존재로 전락한다면 차라리 그들은 조금은 더 순박해질 것 같읍니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나 사교적으로나 기타등등 다양한 형태의 손익을 위해 빨간 버튼식의 행동도 하고 파란 버튼식의 행동도 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손익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비하면 훨씬 사소한 것들이고, 매번 빨강만 누르는 사람도 없고 매번 파랑만 누르는 사람도 없읍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게 적당히 조화로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이기적 합리와 희생적 도덕이라는 테마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던져 놓자 이상하게도 인간은 평소에는 접할 일이 없었던 그 무시무시하게 커져버린 손익을 뒷전으로 한 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들을 가진 사람들의 선택을 삶과 죽음이라는 결과값 자체보다 더 필사적으로 제압하고 싶어합니다. 저는 성숙한 시민이라 파랑이들의 선택도 존중합니다. 사회적 협력 좋죠. 하지만 역시 합리적 인간이 무엇인지는 자명하지 않겠어요. 칼로 자기 목 찌르는 사람까지 구해야 할 의무는 없읍니다 ㅎㅎ ^_^ 저는 성숙한 시민이라 빨갱이들의 선택도 존중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살고 싶어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목숨만 붙어있다고 인간인가요.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이란 어떤 타입인지 답은 나와 있죠 ㅎㅎ ^_^ 삶의 획득이라는 무한히 큰 성공보다 명백히 일부의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내 방식의 우월성에 취하는게 더 큰 기쁨이 되고, 죽음이라는 끔찍한 실패보다 인간의 절반 가량은 나랑 반대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실이 기분나빠 거슬리는 그런 전도가 발생해 버립니다.. ♤ ♤ ♤ 그리하여 나새기는 또다시 킬방원에게 돌아와 당신의 언어를 승인하게 되는 것이야요. 나와 함께 걸어줄 리 없는 숙부님 당신의 길을 가옵소서. 소자는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는 반역자가 되옵니다. 숙부님께서는 충절의 상징으로 남아 새 나라의 하늘이 되옵소서. 소자의 반역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갈 자격이 있는 나라였는지 숙부의 영이 제가하소서. ![]() ♤ ♤ ♤ 부록 ![]() ![]() ♤ ♤ ♤ Q) 이성계는 속으로 좋아했겠지? A) 이성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대목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속으로는 좋아했을 것(묵인 혹은 방조)이라는 시선과 진심으로 분노하고 절망했을 것이라는 시선이 팽팽하게 맞서며 둘 다 나름의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이성계 일파를 역적으로 몰아 숙청하려던 위험한 정적이었습니다. 이성계가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죠. 아들 방원이 총대를 메고 악역을 자처해 정적을 제거해 주었으니 자신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대권을 잡을 발판을 마련한 셈입니다. 정몽주가 죽은 후 이성계가 방원에게 불같이 화를 낸 기록이 있지만, 이것이 세간의 비난을 피하고 자신의 순결함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 연출(쇼)'이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반면, 이성계가 방원의 돌발 행동에 정말로 대노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정몽주는 전장을 누비던 무장 이성계를 개경의 중앙 정계로 이끌어주고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 준, 인생동지이자 멘토였습니다. 이성계는 끝까지 정몽주를 설득해 '함께' 새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역성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아무리 그것이 무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적 선양 형태를 갖추기를 욕망합니다. 하지만 방원이 대낮에 개경 한복판에서 당대 최고의 현자를 때려죽임으로써, 조선은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 세운 찬탈 왕조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는 정국의 주도권을 젊고 잔혹한 아들 이방원에게 일시적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사후 수습 과정도 방원의 뜻대로 흘러가죠. 아버지이자 군주로서 통제권에 위협을 받았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방원의 결단은 든든한 추진력인 동시에 언젠가 나에게까지 겨누어질 칼이라는걸 이성계가 못 알아봤을 리 없습니다. 인간 이성계의 마음은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지독한 양가감정상태였을 것입니다. 가슴(인간적 도리와 명분)으로는 '이 천하의 불효자식이 내 인생과 새 나라의 대의를 진흙탕에 처박았구나' 하는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머리(정치적 이성)로는 '이제 조선을 세울 수 있겠구나. 조선을 끝까지 완성할 사람은 어쩌면 나보다 저녀석일수도 있다'고 예감했을지 모릅니다. 인간은 100% 한쪽 버튼만 누르며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성계 역시 '살아남아 왕이 되어야 한다'는 빨간 버튼과 '동지를 지키고 명분을 세워야 한다'는 파란 버튼 사이에서 격렬하게 찢겼을 것입니다. 새 나라의 기초공사는 그 틈새에서 흘러나온 피 위에서만 가능했습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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