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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6/11 02:23:09수정됨
Name   알료사
Subject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NTR적 비극성과 순애
소설 스포 있읍니다.



테드창의 이 단편이 2013년 국내에 출간되었을 때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의외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읍니다.

아직 알파고가 등장하지도 않은 시기에 그가 다룬 소프트웨어 인격체 육성이라는 소재는 얼핏 보기에 20세기의 다마고치나 잘해봐야 스필버그의 AI 아류 내지는 심화버전에 불과한 인상이었거든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큰 화제거리가 되고 테드창의 다른 여러 단편들이 지닌 비범한 깊이들에 감탄하다 보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이하 소객생)는 아니 뭐 이런것도 썼어? 어디서 많이 본듯한게 테드창답지 않아.. 하는 편견에 빠져버리게 된거십니다..


그런데 변태같은 나새기는 요놈을 읽다가 남주가 아내와 이혼하면서 여사친에게 은근한 기대를 품고, 디지언트(작품내 ai인격체)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매개로 여사친의 연인 사이가 악화될 가능성에 또다시 도키도키해지는 깨알잼을 포착하게 됩니다.

남주와 여사친은 각자의 디지언트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그들이 맞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어떤 갈림길에 서서 고민 끝에 한가지 선택을 하는데, 여기서 남주의 욕망이 어떤 처절한 역설에 부딪히고 맙니다.


아직 ai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그 가능성을 상상으로 메워야 했던 시기, 테드창은 자신의 방식대로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를 차근차근 그려 나가면서 철학적 난제들을 호출합니다. 그러다가 그 얽히고 설킨 논쟁에 사랑의 한 실천방식을 첨가합니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듯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보면 단순명쾌합니다.


대학 전공으로 영장류 커뮤니케이션을 수료하고 동물원에서 6년간 근무하다가 폐업으로 취준생이 된 여주인공 '애나'는 테크기업 '블루감마'에 근무하는 친구 로빈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습니다.

블루감마는 가상 공간인 '데이터어스' 내에서 인공지능 생명체인 디지언트를 개발해 상품화한 시장의 선구자격 회사입니다. 인간의 아이나 애완동물 새끼처럼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하는 게놈 기반의 AI를 만들었고 여주 애나를 고용하여 디지언트들에게 상식과 언어를 가르치게 합니다.

남주 데릭은 블루감마에서 디지언트 디자인을 맡아 일하고 있었읍니다. 아내 웬디와 함께 애니메이터를 꿈꿨고 인공생명체가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애나가 취직한지 1년정도 지난 후 디지언트들은 최초로 출시되었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존의 가사 로봇을 비롯한 Ai제품들은 미리 프로그래밍된 대답과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였지만 블루감마의 디지언트는 시간을 들여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만큼 개성과 지능이 발달했습니다. 주인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디지언트의 성격이 그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나만의 파트너를 키운다는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디지언트가 자라는 가상공간 '데이터어스'는 수많은 유저들이 소통하는 메타버스로 자리잡았습니다. 블루감마는 유저들이 디지언트용 음식을 만들 때마다 요금을 부과하는 등 디지언트가 유저를 즐겁게 하면 그에 따라 수입이 발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애나와 데릭은 디지언트의 업데이트와 사용자 게시판 피드백 관리 같은 작업을 함께 해나가며 동료애를 쌓아갑니다.

해가 지나면서 다른 회사들도 학습능력을 지닌 독자적인 게놈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데이터어스 같은 플랫폼도 여럿 생겨나 경쟁에 돌입합니다.

사루메크 같은 토이 업체는 디지언트의 가상 아바타에 동일하게 대응하는 실물 로봇을 실험 삼아 제공합니다. 애나가 자신이 교육하던 디지언트에게 데이터어스 공간에서 오프라인의 로봇으로 옮겨타는(?) 경험을 시연하는 장면 묘사가 절묘합니다. 통 속의 뇌였던 디지언트가 '몸'을 처음으로 가졌을 때 어떤 심상의 학습을 이루어 나가는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실감나게 전개시킵니다.

데릭은 로봇 디지언트의 얼굴에 해당하는 디스플레이에 다양한 표정을 영상화하고 이를 본 애나의 극찬에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좋은 시간들을 보내다가 또다시 해가 넘어가면서 블루감마의 사업은 점차 기울어갑니다. 발달 초기가 지난 디지언트들의 육성 난이도가 올라갔고 게놈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난이도와 보상 사이의 벨런스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받이들이는 수준을 깨뜨려버린 것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디지언트를 정지시켰고 이내 블루감마는 사업종료를 공식화합니다. 일부 열성적인 유저들은 소규모 커뮤니티에서 디지언트를 키워나갔고 블루감마는 그들을 위한 무료 소프트웨어를 풀었지만 사후지원은 없었습니다.

블루감마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희망자에 한해 디지언트를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입양한 사람은 애나와 데릭 둘 뿐이었습니다. 애나는 '잭스'를, 데릭은 '마르코'와 '폴로'를 각각 입양합니다. 그들은 다른 고향 잃은 유저들과 연락을 유지하며 디지언트를 키워 나가고, 그로 인한 실생활에서의 여러 어려움을 공유합니다.

데릭은 끝내 아내 웬디와 이혼하게 되는데, 이 소식을 애나에게 알리는 장면이 꽤나 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냅니다.


[ 데릭은 방금 경험한 마르코와 폴로 일을 누군가와 의논하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그러고 싶은 상대는 아내가 아니다. 웬디는 디지언트의 성장 잠재력을 이해했고, 보살피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마르코와 폴로의 능력이 향상되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그럴 가능성에 대해 열의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남편이 디지언트에게 쏟는 시간과 관심에 분개하고 있는 그녀는, 되감아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무기한 정지의 기회로 여길 것이다.

데릭이 의논하고 싶은 상대는 물론 애나다. 예전에는 근거가 없다고 느꼈던 웬디의 우려는 바야흐로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데릭이 애나에게 우정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명백했다. 물론 그 때문에 웬디와의 관계에 금이 간 것은 아니다. 사실, 그가 애나에게 느끼는 감정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애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에게는 안식처이고, 변명하지 않고도 디지언트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화가 났을 때는 부부 관계가 악화된 것을 웬디 탓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냉정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은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데릭은 애나를 향한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집중해야 할 일은 디지언트들과 관련해서 웬디와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애나라는 존재의 유혹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애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언트 오너들의 커뮤니티가 얼마나 좁은지를 감안하면 애나와의 소통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마르코와 폴로가 고통을 겪게 내버려둘 순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애나에게 전화로 조언을 얻는 대신 일단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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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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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결심을 하든, 이제부터는 웬디 없이 그래야 한다. 데릭과 그녀는 이혼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두 명의 디지언트를 키우는 것은 웬디가 인생에서 원하는 일이 아니다. 데릭이 이 일을 같이할 파트너를 원한다면 그는 웬디가 아닌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한다. 부부 생활 상담사는 두 사람의 문제는 디지언트 자체가 아니며,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방법을 찾지 못해서라고 했다. 상담사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지만, 관심사가 같았다면 결혼 생활에 분명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너무 앞서가고 싶지는 않지만, 이혼으로 인해 애나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애나도 틀림없이 그럴 가능성을 고려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안 그러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두 사람은 디지언트들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함께 기울일 수 있는, 훌륭한 팀이 될 것이다.

물론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런 감정을 고백할 생각은 아니다. 너무 일렀고, 애나는 지금 카일이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바야흐로 육 개월째의 분수령에 도달하려는 참이다. 이 무렵 남자는 애나에게 잭스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그녀 인생의 우선순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오래지 않아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데릭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애나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것이다. 모든 남자가 디지언트를, 애나의 애정을 두고 다투는 경쟁 상대로 생각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레스토랑에 들어가 안을 둘러보던 데릭이 애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애나가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다. 테이블로 다가가며 데릭이 말한다. “마르코와 폴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자초지종을 들려주자 애나의 입이 벌어진다.

“맙소사. 우리 잭스도 걔네들하고 같은 뉴스를 들었을 거야.”

“응. 집에 가면 잭스와 얘기를 좀 해보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이들의 대화는 디지언트들에게 네트워크 게시판 접근을 허용할 경우 생겨날 장단점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게시판은 오너들이 그들 혼자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한 상호교류의 기회를 보장하지만, 디지언트들이 받는 영향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동안 디지언트 얘기를 하다가 애나가 묻는다. “그래서, 그것 말고 다른 소식은 없어?”

데릭이 한숨을 쉰다. “얘기해버리는 게 낫겠다. 나 이혼하기로 했어.”

“아, 정말 유감이야.” 애나는 진심이다. 그것이 데릭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훨씬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건 알고 있었어.”

애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유감이야.”

“고마워.” 데릭이 잠시 웬디와 합의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파트는 팔고 재산은 반으로 나눌 예정이다. 다행히도 논의는 대부분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마르코하고 폴로의 복제를 달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애나가 말한다.

“응. 그래서 천만다행이야.” 배우자는 거의 예외 없이 디지언트의 복제를 만들 수 있다. 이혼 과정이 원만치 않을 경우, 그것을 이용해 전 배우자에게 앙갚음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게시판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건 이제 됐고.” 데릭이 말한다. “이제 뭔가 다른 얘기를 하자. 당신은 어떻게 지냈어?”
“별일 없었어.”
“내가 웬디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이던데.”
“아, 맞아. 그랬지.”
“뭔가 특별히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별거 아냐.”
“별거 아닌데 기분이 좋아졌어?”
“소식이 하나 있긴 한데, 굳이 지금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괜찮아. 좋은 소식이라면 들려줘.”
애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거의 미안하다는 듯이 말한다. “나, 카일하고 같이 살기로 했어.”

순간, 데릭은 할 말을 잊는다. “축하해.” 그가 말한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에도 테드창은 인공지능에 대한 다방면의 기술적 발전과 위험들을 아주 적절한 템포의 속도감으로 하나씩 풀어놓으며 그러한 환경들은 애나와 데릭의 디지언트 육성에 난관으로 작용합니다.

애나가 키우는 잭스, 데릭이 키우는 마르코와 폴로는 날이 갈수록 자아형성과 지적능력이 몰라보게 성장하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려 들고, 이를 받아주는 애나와 데릭을 난처하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이 작품에서 가장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 갈등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최신식 분산형 아키텍처를 채용한 '리얼 스페이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디지털 지형도의 핫스팟으로 떠올랐다 - 라고 작중에서 묘사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디지언트들이 놀던 '데이터어스'나 각종 경쟁 가상공간 플랫폼들의 훨씬 상위 버전이 나타나 기존의 것들을 전부 포섭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공지능 생명체들은 리얼스페이스로 이주했는데, 문제는 블루감마사 디지언트들은 너무 오래전에 출시되어 호환이 안되었고 이주가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주를 위해서는 디지언트들의 프로그램을 새로 짤 개발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애나와 데릭은 오픈소스 게시판을 통해 지원자를 모집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애씁니다.

이리저리 발버둥을 쳐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던 차에, 애나와 데릭에게 두가지 큰 제안이 들어옵니다.

하나는 폴리토프사에서 특정 타입의 디지언트 교육을 애나에게 맡아달라면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해온 것이었습니다. 꺼림칙한 조건과 함께였습니다.

'인스턴트라포르'라는 경피 패치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디지언트에게 비정상적인 애착을 갖게 해주는 약품이었습니다.

애나는 긍정적 태도를 보이지만 데릭은 당연히 반대합니다. 애나를 걱정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또다시 여기서 데릭의 음흉한 속내가 묘사됩니다.


[ 애나가 답답한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첫 번째 선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하지만 때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말이야.”

데릭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카일은 뭐래?”

애나가 한숨을 쉰다. “결사반대야. 내가 그 패치 붙이는 게 마음에 안 드나 봐. 그 위험을 정당화할 만큼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지 않고.” 애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카일은 디지언트에 대해서 나나 당신 같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으니까, 그이가 그렇게 말하는 건 당연해. 그럴 만큼 큰 보상이라고 생각되진 않을 거야.”

애나는 분명 응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래야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녀의 계획에 불안을 느끼지만, 입 밖에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이 싫지만 이따금 애나가 카일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푸념할 때면, 그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일부러 갈라놓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만약 카일이 디지언트에 대한 애나의 애정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데릭 자신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카일보다 데릭 쪽이 자기한테 맞는다는 인상을 애나가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데릭의 잘못이 아니었다.

문제는 애나가 폴리토프의 취업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데릭이 정말로 찬성하는가 하는 점이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애나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한다.]



한편 두번째 제안은 '바이너리'사로부터 왔습니다. 바이너리는 디지언트의 핵심 인격 구조인 보상 맵(Reward Map)을 재설정하여 디지언트로 하여금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성적인 정서와 욕망을 지닌 존재로 만들고자 합니다. 댓가로는 리얼 스페이스 이주에 필요한 엔진 이식 개발 비용 전액을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애나와 데릭은 소식을 듣자마자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노발대발합니다. 애지중지 키워온 디지언트들을 섹스토이로 만들겠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바이너리는 그러지 말고 설명회 한번만 들어보셈, 듣기만 해도 돈 많이 줄께, 라고 유혹합니다.

애나와 데릭은 넘모 절박한 심정에 그래 듣기만 하고 돈 받고 치우차는 심산으로 설명회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바이너리에서 파견된 직원의 현란한 약팔이 말빨을 접해보고 나니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바이너리에서는 디지언트의 인격?을 존중하고 성적 기능 장착에 따른 여러 위험요소들에 대한 세심한 안전장치들을 마련해 놓았으며, 특히 애나의 디지언트 교육 철학의 연장선상에서는 그 완성형을 향한 지향에 과연 성을 빼놓아야 할 것인가는 대단히 신중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성에 눈뜨던 시기와 그때 형성됐던 성관념을 되돌아보며 이것이 디지언트와 어디까지 같아야 하고 어디서부터 달라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디지언트들이 성과 관련된 여러 위험에 마주하게 된다는 상상에 이르면 인격의 완성이고 뭐고 닥치고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디지언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결정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잭스와 마르코,폴로도 바이너리의 설명회 내용을 숙지하였고, 자신들의 성숙한 성장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보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애나와 데릭은 그들과의 철학적 논쟁에서 완패하였음에도 논쟁에서의 강함이 그들의 성숙함을 증명하는건 아니라며 그들을 <논리로 압살>류 미성숙 개체로 치부하며 정신승리합니다.

애나와 데릭이 디지언트를 부모의 마음으로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논리는 그동안 여러 자본주의적 AI업체로부터 자신들의 디지언트 교육방침을 고수하기 위해 싸웠던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에 봉착하지만,

아몰랑 싯팔 우리는 우리의 디지언트를 사랑한다규 ㅠ 사랑하면 닥치고 보호할 의무와 권리도 있는거잖아 ㅜㅠ 특히 성적인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차원인것 같단 말야 ㅠㅠ 대충 이런 심리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자아 이제 여기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데릭의 배신이 등장합니다.

일단 데릭은 애나만큼의 보호기제가 발동한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애나와 입장이 같았습니다.

데릭도 애나 못지않게 자신의 디지언트인 마르코와 폴로를 사랑했으며

결정적으로 애나의 방침을 그대로 따를 경우,

즉 바이너리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폴리토프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애나가 '인스턴트라포르' 패치를 부착한 채 폴리토프의 디지언트 교육에 착수한다면

애나와 남친(카일)과의 불화는 격심해져 끝내 헤어질게 뻔했습니다.

그러면 데릭은 아싸 개꿀 나는 애나 유일의 공감셔틀 + 디지언트 함께 사랑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포지션 획득 ~ 루트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릭은 그러기에는 애나에게 넘모 진심이었습니다.

데릭은 애나가 인스턴트라포르 부착으로 개조되는 것과 마르코, 폴로가 보상맵 수정으로 성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저울질했고,

둘 중 하나를 구해야 한다면 애나를 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마르코, 폴로를 제물로 바치는 선택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데릭은 그들과의 대화에서 어느정도 설득당했고 반 정도는 그들의 독립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의 한 방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입니다.

아마 데릭이 남자였기 때문에 성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애나보다 경계심이 적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데릭은 마르코, 폴로와 함께 바이너리사의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소식을 들은 애나는 데릭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배신감을 느끼며 증오에 휩싸입니다. 으아니 !!!!!!!! 이게 말이 되냐고!!!!!!! 어뜨케 니가 그럴수가 있어 ㅜㅠ

데릭은 애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쏙 빼고 철저히 마르코와 폴로의 성장을 위해서였다고 둘러댑니다. 내가 십데기야.. 미안..

애나는 화내고 또 화내다가 지쳐 널부러져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잭스가 리얼스페이스로 이주해 어떤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런지 기대에 부풉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유..


[ 얼마 전 애나가 한 주장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디지언트들에겐 연애 관계나 직업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고 했다. 디지언트들을 인간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간주한다면 이치에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데이터 어스에 갇혀 있는 한—그들의 삶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한—이렇게 중차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디지언트의 성숙의 기준은 인간만큼 높이 설정되어선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르코는 이번 결단을 내릴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을지도 모른다. 마르코는 자기 자신을 인간이 아닌 디지언트로 여기는 것에 전적으로 만족하는 듯 보인다. 자기가 한 제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데릭은, 실제로는 마르코가 자신의 본성을 데릭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마르코와 폴로는 인간이 아니므로, 그들을 마치 인간인 것처럼 간주해,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고 데릭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일지도 모른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철학적인 문제는 나중을 위해 미뤄놓았겠지만, 이번만큼은 데릭이 당장 내려야 하는 결단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만약 데릭이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애나는 폴리토프에 취직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마르코의 뇌에 화학적 조작이 가해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애나가 자기 뇌를 약물에 노출시키는 게 나을까?

애나는 폴리토프의 제안에 응하면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마르코의 경우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애나는 인간이다. 데릭에게 마르코가 아무리 멋진 존재라고 해도, 그에게는 애나 쪽이 더 소중하다. 둘 중 하나에게 신경화학적인 조작이 가해져야 한다면, 애나가 아닌 쪽이 낫다.

데릭은 바이너리 디자이어가 보내온 계약서를 화면에 불러온다. 그런 다음 마르코와 폴로를 각자의 로봇 외피 속으로 부른다.
“계약서 서명할 준비 됐어?” 마르코가 묻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 돕고 싶다고 이런 일 해선 안 된다는 거 알지?” 데릭이 말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일 때만 해야 해.” 데릭은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로 그럴까 하고 자문한다.
“그렇게 계속 안 물어봐도 돼.” 마르코가 말한다. “난 예전하고 똑같은 기분이야. 하고 싶어.”
“넌 어때, 폴로?”
“응. 찬성.”
디지언트들은 기꺼이, 아니 열렬히 그러고 싶어한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순전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애나가 폴리토프 사에 취직한다면, 그녀와 카일 사이에는 균열이 생겨날 것이다. 그 사실은 데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훌륭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반면에 그가 바이너리 디자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번에는 그와 애나 사이에 균열이 생겨날 것이고, 언젠가 그녀와 맺어질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린다.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디지언트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바이너리 디자이어 사가 보낸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제니퍼 체이스에게 보낸다.

“나 언제 바이너리 디자이어 가?” 마르코가 묻는다.
“그쪽 서명이 된 계약서가 도착하면, 네 스냅숏을 찍을 거야. 그런 다음 그걸 바이너리 디자이어로 보내면 돼.”
“오케이.” 마르코가 말한다.

디지언트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흥분된 어조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데릭은 애나에게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그녀를 위해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기를 위해 마르코가 희생됐다고 생각하면 애나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은 데릭이 내린 결정이므로 차라리 애나가 데릭을 비난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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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이런 식으로 알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전화할 작정이었어. 그런데……”

애나는 너무 놀라 말을 이을 수 없다. “왜 그랬어?” 데릭은 오랫동안 머뭇거린다. “돈 때문이야?”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마르코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마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 얘긴 이미 끝난 거잖아. 마르코가 좀더 경험을 쌓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데 당신도 찬성했잖아.”

“알아. 하지만 그 뒤로…… 내가 지나치게 신중했다고 판단했어.”

“지나치게 신중했다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다거나 뭐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그들은 마르코한테 뇌수술을 할 거야. 그런 일을 결정하면서 어떻게 지나치게 신중 같은 말이 나와?”

데릭이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후 말한다. “놓아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

“놓아줘?” 마치 마르코와 폴로를 보호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유치한 망상이고, 이제 그것을 졸업하기라도 했다는 투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최근까지는.”
“그럼 언젠가 마르코와 폴로를 법인화할 계획도 포기했다는 뜻이야?”
“아니. 지금도 그럴 생각이야. 단지 예전만큼은……” 그는 또다시 주저한다. “거기 연연하지 않아.”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데릭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잘됐네.”

데릭이 이 말에 마음을 다친 듯하지만, 애나는 개의치 않는다. “모두를 위해 잘된 일이야.” 데릭이 말한다. “이제 디지언트들은 리얼 스페이스에 액세스할 수 있고……”
“알아, 안다고.”

“정말로 난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데릭 자신도 그 말을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게 어떻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가 있어?” 데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애나도 상대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 애나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 윈도를 닫았다. 앞으로 마르코가 그들에게 이용당할 것을—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영원히 모르는 채로—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녀는 속으로 되뇐다. 하지만 설마 마르코가 그런 위험에 노출될 줄이야. 지금까지는 데릭도 그녀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어스의 윈도에서는 잭스가 희희낙락 호버카를 조종하며 무궤도 롤러코스터에 탄 어린아이처럼 사면을 신나게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 당장 잭스에게 바이너리 디자이어 소식을 알리고 싶지는 않다. 마르코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토의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런 대화를 나눌 힘이 없다. 지금 애나가 하고 싶은 일은 단지 잭스를 바라보고, 뉴로블래스트의 이식이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조금씩이라도 익숙해지는 것이다. 실로 기분이 묘하다.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생각하면 이것을 안도감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잭스의 미래를 가로막는 엄청난 장애물이 제거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길이 없다. 이제 폴리토프에 취직할 이유도 없어졌다. 이식이 완료되려면 몇 달이 걸리겠지만, 일단 목표가 정해진 이상 시간은 살처럼 빠르게 흐를 것이다. 잭스는 리얼 스페이스에 들어가 친구들과 재회하고, 사교 우주에 재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잭스의 미래에 순조로운 항해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길에는 여전히 끊임없는 장애물들이 가로놓여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와 잭스는 그것들에 맞설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애나는 잠시 감미로운 몽상에 잠겼다. 성공한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





우리가 어떤 픽션을 받아들일 때,

그것을 접한 시점에서의 사전지식과 주위환경, 기존의 동일 계열 픽션들과의 비교, 실생활에서의 목격 가능성 등등이 감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라

2013년 읽는 단독 출간 소객생과

2019년 단편집 '숨'에 채차 수록된 소객생과

2026년, ai의 재귀적 자가발전 가능성에 대한 경고기사가 뜨는 시점에서의 소객생은 전혀 다른 파괴력과 공포감을 선사합니다.

기술적 묘사는 아무래도 작품 발표 후 10년 이상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어어 결과적으로 그 방향은 아니었네 ㅋㅋ 하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건 특이점을 넘어선 AI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 여기에서 테드창의 천재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물론 나새기는 그런거보다 데릭놈의 흑심에만 초점을 맞추어 침흘리며 읽었다는 이바구였뜹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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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고 보는 알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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