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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5/09 01:55:00수정됨
Name   알료사
Subject   스타1)게이머로서의 게이머와 BJ로서의 게이머

여캠방송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보다가 저도 모르게 정착하게 된 BJ가 생겼어요. 실력은 에니멀 중위권, 외모나 말주변이 특출난게 없는데 뭐가 매력이어서 그랬을까..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아마 방송을 흥하게 할 목적으로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을거에요. 시청자가 없으면 없는대로, 숱한 여BJ들이 흔히 보여주는 최소한의 애교도 없이 (본인은 이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묵묵히 게임하며 승부욕이 강한데도 실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회성 전략 사용은 자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다듬고 정진하는 모습에 끌린거 같아요. BJ가 보여주는 그런 카리스마 때문인지 시청자들의 채팅창도 약간은 분위기가 독특했어요. 보통 BJ가 수준 떨어지는 게임을 하고 나면 온 어중이 떠중이들의 훈수와 놀림으로 도배되기 십상인데, 이곳은 BJ가 게임이 잘 안풀리면 본인이 먼저 빡쳐서 그 분노의 불길이 어찌나 흉흉한지 게임을 패하고 BJ가 말없이 대기창을 바라보는 가운데 채팅창에도 정적이 흐르는게 어쩐기 귀여웠어요 ㅋㅋ 그러다가도 다시 게임이 잘 풀리면 언제 화가 났냐는 듯 생글거리고 신이 나서 본인의 플레이에 자뻑하고 감탄하는 그런 소년다운 면도 좋았나봐요.  

프로토스 유저인 '나나세'라는 BJ였어요.




이 BJ의 게임을 보는 것이 좋다, 라는 생각이 들고 그 방송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히 스폰게임도 주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제가 스폰을 하게 되니까 한쪽을 응원하는 정도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커지더라구요. 만약에 제가 응원하는 쪽이 지면 저는 마음에도 없는 상대방 BJ에게 별풍선을 쏴야 하니까요. 흔히 <외화유출>이라고 표현하는..ㅋ 그러다보니 자연히 강한 상대보다는 최소한 6:4이상 유리한 상대를 찾게 되더라구요.


그저께 전상욱선수에게 핸디캡 스폰을 주선했는데 그 조건이 꽤 혹독했어요.

일꾼 2기 빼고 비전 켜주기, 아머리 공방업그레이드 금지, 벌쳐 속업금지, EMP금지, 베슬생산 1기로 제한


전상욱선수는 뭐가 이렇게 많아? 라면서도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수락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캠한테 지겠냐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러다가 본인 방송의 오래된 시청자에게 나나세라는 분 실력이 어느정도냐, 하고 물으니 저정도 핸디캡을 줄 정도로 허접은 아니다, 라는 대답이 나왔고 그때서야 약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저에게 묻더군요.


'알료사님, 이거 알료사님이 그냥 나나세님한테 쏘고 싶어서 그러는거죠? 쏘고는 싶은데 명분은 없고.. 이런 핸디게임을 하면 이기고 쏴줄수 있으니까. 그런거죠? 솔직히 ㅋ'


정곡을 찔린 저는 어느정도 그런 의도도 있지만 어려우실 거 같으면 몇가지 핸디를 빼고 할 수 있다, 상욱님이 지셔도 이겼을때의 절반을 쏘겠다, 라고 제안했고


상욱님은 웃으면서 '알료사님 마음이 정 그렇다면' 하고 승락했어요 ㅋ 이때까지만 해도 말로는 엄살을 부려도 본인이 질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거 같았어요.


그래서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ㅋ


http://vod.afreecatv.com/PLAYER/STATION/43982030

나나세 화면 02:28:35 부터

http://vod.afreecatv.com/PLAYER/STATION/43981491

전상욱 화면 03:36:15 부터



첫 게임을 바카닉으로 따낸 상욱님은 두 번째 판에서 바이오닉이 템플러에게 막히면서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ㅋ 하고 여유를 보였지만 마지막 게임을 아비터 리콜에 패하지 꽤 스트레스를 받은것 같았어요.


이렇게 잘하는데 어떻게 그런 핸디캡을 요구하냐, 양심이 없는거 아니냐, 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어요. 보고 있던 상욱님 방의 시청자 한분이 다른 핸디 다 빼고 일꾼 2기만 빼고 다시 해보자, 라고 제안했고


상욱님은 그건 내가 100%이기는 게임 아니냐, 상대가 생각이 있으면 그걸 하겠냐, 그리고 내가 여캠한테 지고 그런 분풀이를 해야겠냐, 하고 탐탁치 않아했어요.


그런데 예상밖으로 나나세님은 두번째 핸디 제안에 응해 왔고, 당연히 상욱님이 압승을 했어요.


게이머는 게임을 이겨야 기분이 풀리는지 그때서야 표정이 좀 펴진 상욱님은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내가 먹겠다는 게임 아니었냐, 하고 본인 방송의 시청자에게 물었고, 시청자는 상대방측에서 먼저 그렇게 제안한 게임 아니었냐, 이길수 없는 게임을 먼저 했고 우리는 똑같이 되돌려 줬을 뿐이다, 라고 말했어요.


상욱님은 하긴 그러네.. 라고 상황을 받아들였고


저는 다음날 상욱님 방송을 찾아가 승자와 같은 보상인 별풍선 200개를(100개는 전날 선입금) 쏘고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어려운 게임 열심히 해주셔서 고마웠다고.


상욱님은 머쓱해하면서 어제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알아주셔서 고맙다, 라고 인사하셨고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정규 리그가 망하고 아프리카 판이 열렸을 때,



제가 동경했던 프로게이머들이 아프리카 방송의 별풍선에 재롱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며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고 통탄해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재롱잔치로 근근히 판을 유지하며 전성기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그래도 ASL과 KSL이라는 정기적인 대회가 다시 열리게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여성리그가 활성화되면서 저는 인터넷 방송의 위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게이머들이 별풍선 몇개 때문에 게이머의 품위를 버리는 행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어요.


그러다가 어제 제가 주선했던 스폰게임이 전상욱선수에게 <재롱>을 떨게 했던게 아닌가 싶어 죄스러웠네요. 이성은이 거의 가혹행위에 가까운 <시키면 한다>라는 컨텐츠를 진행한다든가, 이영호나 홍구가 그보다 더 무지막지한 핸디캡으로 여캠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는걸 보고 그런 식의 게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아프리카 방송을 오래 했고 이 판의 생리에 익숙해진 <베터랑 BJ>였던거고 방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전상욱선수에게는 거의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게임이었는데..  앞으로 이런 방식의 스폰은 지양해야겠습니다.









추신?

음.. 핸디스폰을 구상하면서 물론 나나세님이 최대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한건 사실인데 그래도 저는 진심으로 저 핸디캡으로 50대50이라고 생각했어요. 상욱님을 탈출할 수 없는 우리 안에 넣어놓고 허우적대는걸 보며 재미있어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상욱님도 게임을 복기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 하고 아쉬워했거든요. 상욱님이 대기화면에서 그런 말을 해요. <나는 이 분에게서 집념을 느꼈다>  그 말을 들었을때 되게 기분이 좋으면서 제가 속으로 진짜 원했던게 뭔지 알 거 같았어요. 한때 토스에게 벽이었던 남자에게 제가 점찍은 BJ를 인정받고 싶었나봐요. 어때요? 이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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