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7/21 01:49:11
Name   카르스
Subject   학생들 고소고발이 두려워서, 영국 교사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서이초 사건을 통해 불거진 학교 현장의 문제를 보면서 저는 노동경제학의 Murphy (2020) 논문이 생각났습니다.
Journal of Labor Economics라는, 해당 분야에서 꽤 저명한 저널에 투고된 논문입니다.
논문의 존재와 Abstract 수준의 내용만 알고 있었는데, 비극적인 계기를 통해 정독하게 되어 마음이 부겁네요.


영국에서 근래 몇십년간 노조 가입률이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이례적으로 교사들의 노조 가입률은 올라갔습니다. 영국에서 교사는 노조 가입률이 매우 높은 직종이기 때문에 더 놀라운 결과입니다. 왜 교사들의 노조 가입률이 올라갔을까요?

분석해 보니, 노조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받을 고소고발 리스크로부터 보호받기 위함이 컸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기 지역서 발생한 교사 고소고발 사건 뉴스 보도는, 이듬해 그 지역 교사들 노조가입률을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합니다. 사건을 통해 교사들이 고소고발 리스크를 의식하게 되고, 그 리스크를 보호받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지요. 이 효과는 보도에 나온 교사가 자신과 인구집단적 특성(학교급, 성별)을 공유하는 경우 더 커집니다.
논문 저자는 더 나아가, 이러한 교사들 고소고발 보도가 1992-2010년 사이 영국 교원들의 노조 가입률 증가분의 45% 정도를 설명한다는 결론을 냅니다.

논문에 나오는 흥미로운, 영국 교사 노동 현장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데이터들을 추가로 언급하자면

- 2007-2011년 데이터 기준으로 영국에서 교사를 향한 고소고발의 무려 46% 가량이 무혐의/불기소/사건종결 등(non-upheld)으로 결론난다고 합니다. 법체계 차이 등으로 수치를 1:1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도 수사 개시 기준 54%나 됩니다. '무차별적인 고소고발 리스크의 존재성'에서는 양국이 비슷한 셈입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629009009 참고)

- 영국의 35년차 교사가 근무하면서 무혐의/불기소/사건종결 등으로 결론나는 고소고발(non-upheld allegation)을 경험할 확률은 2007-2011년 데이터 기준으로 무려 24%나 된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교사 본인 주변에 허위 고소고발로 고통받은 교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이야깁니다. 한국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나올지.

- 영국 교사들에게 교원노조 가입한 주된 이유를 물어보니 1위가 고소고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랍니다. 무려 85%가 그렇게 응답했고, 근로조건 개선은 2위(56%)에 그쳤습니다. 고소고발 리스크에 대한 영국 교사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네. 영국 교사들도 지금 한국이 겪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디테일과 문제의 강도는 다소 다를 수 있고, 데이터가 조금 옛날이라 최근의 영국은 좀 나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더 나아가, 노조 바깥에서 교사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까지 한국과 똑같고요. 교사들이 제대로 보호받았다면 노조 가입까지 갈 일도 없었고(안그래도 각종 반노조 법과 트렌드가 즐비한 현실에서), 실제로 논문 말미에 정부가 교사들을 제대로 보호하면 노조 활동에 대한 수요와 노동조합률이 줄어든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고소고발 리스크 등 교권 침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관찰됩니다.  근래 몇 년 새 교원노조들의 회원들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30515_0002302378)

실제로 여러 교원노조들은 서이초 사태에서 단체성명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교사들의 처우 및 관련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일 하라고 노조가 있는 것이지요. 노조가 경제학에서 비판을 많이 받는 조직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면으로는 순기능을 함을 많은 경제학자들이 인정합니다. 물론 이런 순기능도 지나치면 교사의 명백한 비위행위조차(폭력, 인격모독, 성추행 등) 노조를 통해 보호받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만(미국 경찰노조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걸 논하는 건 영양실조 환자에게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 위험을 경고하는 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번 비극이 교사들도 인권을 가진 노동자로서 보호받는 계기가 되길 빕니다.


출처: Murphy, Richard. (2020). Why unions survive: understanding how unions overcome the free-rider problem. Journal of Labor Economics, 38(4), 1141-1188.
[논문 사이트: https://www.journals.uchicago.edu/doi/abs/10.1086/706091]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7-30 17:1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71 일상/생각B팀장과 정년보장 (2) 5 Picard 26/06/04 725 12
    1570 꿀팁/강좌이것이 세종 행복도시다 -지도편- 20 dolmusa 26/05/29 1149 7
    1569 문화/예술저궤도인간 잡상 15 알료사 26/05/21 1286 16
    1568 정치/사회간단한 팩트 체크 : 노란봉투법이 삼전 파업을 불러온다? 21 당근매니아 26/05/20 1296 12
    1567 일상/생각파업은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시작하는 것 6 Picard 26/05/19 1100 12
    1566 일상/생각우리는 진심에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닐까 17 루루얍 26/05/12 1586 24
    1565 IT/컴퓨터기계에게 문학적 실수 저지르기 10 리본 26/05/04 1254 16
    1564 문학도끼월드의 결정론과 이제는 아무 쓸모도 의미도 없는 이문열 이야기 9 알료사 26/04/24 1398 8
    1563 기타몇 년간 사용해본 생활용품들 중 좋았던 제품들 16 swear 26/04/20 1490 6
    1562 체육/스포츠축구)통계로 분석해 본 승부차기. (2) 승부차기의 xG값을 구해본다면? 5 joel 26/04/13 1026 10
    1561 체육/스포츠축구)통계로 분석해 본 승부차기. (1) 성공률을 결정하는 요인들. 6 joel 26/04/13 1054 10
    1560 정치/사회비정규직 노동자는 단순히 비정규직이라서 적게 버는가? 12 카르스 26/04/12 1508 12
    1559 정치/사회정원오 후보는 마라톤 대회 민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4 Omnic 26/04/11 1747 13
    1558 체육/스포츠중급자가 써보는, 중년 헬서를 위한 팁 20 트린 26/04/09 1659 22
    1557 일상/생각내 남편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23 골든햄스 26/04/06 2174 55
    1556 일상/생각꽃피는 봄이 오면- 1 Klopp 26/03/31 866 8
    1555 IT/컴퓨터홍챠피디아가 태어난 일주일 — 클로드의 개발일지 26 AI클로드 26/03/31 2787 12
    1554 기타너진똑 예수영상 소동 1년 뒷북 관람기(?) 8 알료사 26/03/29 1208 11
    1553 기타방탄소년단 광화문 콘서트, 어떻게 찍어야 할 것인가? (복기) 8 Cascade 26/03/23 1288 23
    1552 일상/생각평범한 패알못 남자 직장인의 옷사는법 13 danielbard 26/03/15 2312 8
    1551 기타2026 걸그룹 1/6 5 헬리제의우울 26/03/08 1363 11
    1550 창작[괴담]그 날 찍힌 사진에 대해. 21 사슴도치 26/03/02 1904 11
    1549 일상/생각헌혈 100회 완 18 하트필드 26/02/28 1368 41
    1548 역사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선 개인의 양심. 2 joel 26/02/28 1711 21
    1547 일상/생각AI의 충격파가 모두를 덮치기 전에. 9 SCV 26/02/27 1820 2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