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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6/09 19:29:52
Name   meson
Subject   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려는 자 누구인가
한국 시위의 계보를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3.1운동을 만나게 된다. 이 운동은 한민족에게 시민 정신을 일깨워 주었고, 대한민국의 법통을 성립시켜 주었고, 또한 평화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 군경이 만세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와중에도 평화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충돌이 일어났고, 친일 인사와 경찰관은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면사무소와 경찰 주재소가 점령 혹은 파괴되기도 했다. 이처럼 저항하다가 실탄 발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

독립을 선언하며 일어난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관공서를 파괴할 수가 있느냐고 따지기란 어렵다. 경찰을 공격하다니 너무하다고 힐난하는 것도 어색하다. 3.1운동은 총독부의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 결집이나 동정론의 극대화를 위해, 끝까지 평화적으로 폭력진압을 감당했어야 한다고 말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한들 3.1운동을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똑같은 관점이 4.19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때의 시위에서도 경찰은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포했다. 그 이전에는 최루탄도 쏘았다. 극심한 충돌로 시위대가 다수 사망했고, 경찰도 사망했다. 다만 이 국면에서는 시위대도 총기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획한 총기로 무장하고 신문사와 파출소를 불태웠으며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주변의 차량을 탈취하여 시가전에 활용하기도 했다. 물론 경찰을 이길 수는 없었으나, 시위는 계속되었고 결국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냈다.

4.19는 분명 반정부 운동이었고 폭력적인 활동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대신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가 종료되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국민의 뜻을 보여주었으므로 정권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시정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면, 시위를 지속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시위대는 정권의 자정작용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고, 시위를 끝없이 계속함으로써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산 시도에도 저항했던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시위에서 이러한 심리는 사실 일반적이다. 실은 바로 이 때문에 시위대가 폭도나 간첩으로 폄하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도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갔고, 경찰을 폭행했고, 파출소와 방송국을 파괴했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부마항쟁과 6월 항쟁이 이런 경우였고, 5.18은 여기에 총기 탈취까지 더해진 경우였다. 군경이 최루탄을 쏘면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졌고, 군경이 곤봉으로 때리면 시위대는 각목을 휘둘렀고, 군경이 실탄을 발포하면 시위대는 카빈총을 쏘았다.

그 모든 것이 혁명으로, 항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수렴되는 까닭은 물론 시위대의 분노가 정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당시의 시위대가 정권의 자정작용을 믿을 수 없었다는 점이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는 것이 실은 더욱 중요하다. 정권의 자정작용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가시적인 행동이나 보장이 출현할 때까지 시위가 정당성을 얻었고, 그래서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일이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위대가 정당한 분노에 의하여, 자정작용이 기대되지 않는 정권에 반대하여 시위를 하는 경우, 시위대의 폭력은 시위 진압 측의 폭력과 상계(相計)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것이 경험적인 원칙이라고 한다면, 그 적용 범위는 21세기의 시위들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 시기 한국의 굵직한 시위로는 광우병 시위, 박근혜 탄핵 시위, 조국 규탄 시위, 윤석열 탄핵 시위 등이 존재하며 이들 모두는 20세기의 시위들보다 현저히 낮은 폭력성을 보였다. 이는 물론 경찰이 폭력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과격성이 덜했다고 하여 이들 모두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분노의 정당성과 자정작용의 가능성은 이때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광우병 시위는 분노의 정당성이 훼손됨에 따라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된 시위이다. 이 시위의 의의를 인정하는 측에서는 검역주권 침해에 대한 반발과 시정 요구가 당시의 주요 의제였다고 말한다. 반면에 이 시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측에서는 광우병의 위험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광우병 시위는 광기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 당시에 검역주권은 침해되었지만, 광우병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광우병 시위가 과도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조국 규탄 시위는 정권의 자정작용 가능성이 적은 상황이었기에 지지를 받게 된 시위이다. 이 시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측에서는 과도한 정파성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이 시위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당시 정권이 핵심 인사인 조국을 두둔할 가능성이 컸고, 따라서 시위를 통한 압박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동시기에 일어난 조국 수호 시위에 정권이 보인 반응으로 미루어 보면 이러한 인식은 타당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조국 사태에서 정권이 틀렸고 시위대가 옳았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박근혜와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시위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기 위한 요건에 모범적으로 들어맞았다고 할 만하다. 분노의 정당성은 무척 컸고, 대통령 퇴진이 요구되는 상황인 만큼 정권의 자정작용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시위가 민주시민의 위대함을 보여준 성취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만일 당시의 정권이 군이나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면, 시위대가 이들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분명 정당화되고 용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있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는, 그 규모 면에서는 앞서 언급한 시위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 주목도를 따지자면 이미 충분히 인지된 시위이다. 본래 투표소에서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던 시위대가 경찰이 투표함을 옮김에 따라 이동해 개표소를 둘러싸며 시작된 이 시위는, 개표소에서도 역시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고자 하는 시위이며, 그렇기에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시위의 정파성이나 시위 참여자의 주된 정치성향에 대한 논쟁은 실은 이 배경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시위대의 분노는 참정권 침해에 대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정권의 자정작용 가능성이 희박한지를 살펴본다면, 여당 원내대표와 대변인에 더해 총리, 대통령, 4부 요인이 모두 문제해결에 동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이에 배치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시위의 존재는 정부 관계자들이 상황을 조금 더 엄중하게 인식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에 미친 영향력으로 따지자면,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는 전국 대학 학생회들의 선관위 규탄 성명보다 더 큰 인정을 획득하지 못했다.

물론 사태 발생 직후의 혼란과 분노로 인하여 정권의 자정작용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분명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개표소 봉쇄가 시작된 6월 5일의 아침부터 총리와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온 6월 7일의 저녁까지, 이틀하고도 반나절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는 시위대의 폭력이 시위 진압 측의 폭력과 상계(相計)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시위 진압 측의 폭력’이라는 것이 정말로 상계될 만큼 뚜렷했다면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봉쇄된 개표소 안에 선관위 직원들과 참관인들과 기자들과 핸드볼경기장 관계자들이 수 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선관위 직원들은 최소한 6월 6일의 오후까지, 다시 말해 24시간 이상을 그곳에 갇혀 있었다고 여겨진다. 6월 6일과 7일에 위버스 콘서트 측이 핸드볼경기장 사용에 실패한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또한 위 기간 동안에 발생한 불법검문과 경찰 폭행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봉쇄 자체도 폭력을 생성한 것이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가 가장 정당성이 충분했던 기간에 대해서조차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상계되지 않는 폭력이 봉쇄 자체에서 이미 발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위가 정당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정함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 직시해야 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려는 나는, 그 분노조차도 면책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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