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Sword 9
그날 이후, 두 소녀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워졌다. 등하교를 함께 하는 것은 기본. 공부할 때도,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도, 밖에 외출할 때도 그 둘은 항상 함께 다녔다. 루나가 어딘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클로에는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고, 클로에가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 루나는 입을 살짝 가리며 웃고 난 뒤 그 이야기에서 생각난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메이드는 애인이라도 생겼냐면서 놀렸고, 어떤 메이드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녀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소녀의 조합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학교에서도 가끔 그 둘에 관한 이야기가 들렸고, 동네 상점가에 두 소녀가 들르면 가끔씩 덤을 후하게 얹어주는 경우가 생겼다. 심지어는 줄리안조차 가끔씩 그 포커페이스가 사라지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곤 했다.
"......까지가 클로에와 루나에 대한 저의 관찰 내역입니다."
줄리안의 앞에는 메이드장(長) 마가렛이 서 있었다. 메이드지만, 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재단의 고용인. 메이드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며, 특이 사항이 있을 경우 자문 심리학자들에게 연락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메이드 군단뿐만 아니라, 같이 더부살이로 얹혀살게 된 두 소녀에 대한 관리까지 함께 수행했다.
"미안합니다. 본업도 아닌데 뭔가를 더 맡기게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두 아이가 온 뒤에 군단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저도 일하기가 편해졌습니다."
줄리안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마디를 꺼냈다.
"저도 고등학교 때는 그 아이들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전혀요."
그녀는 줄리안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왠지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간 말 말고 다른 게 잘려나갈 것 같았다. 그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 외에 특이사항은요?"
"애들이 좀 피곤한 기색이 있습니다. 서로 좋다고 계속 같이 붙어다니고 있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서로 좀 무리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여자들이 어떻게 친목을 다지는지는 잘 몰라서......"
"남자들이 같이 술집 다니면서 좋다고 말술 퍼마시는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술을 안 마셔서 그런가, 그쪽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도대체 아시는 건 뭔가요."
"그, 글쎄요......"
갑자기 훅 들어온 공격. 그는 쩔쩔매며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전달할 사항이나 특이 사항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럼."
마가렛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줄리안은 책상 앞에 있는 한 더미의 카드를 섞고, 한 장의 카드를 뽑았다. 벽에 걸린 아홉 자루의 칼. 바닥에 놓인 침대와, 그 침대 위에서 반쯤 덮인 이불과 함께 앉아 있는 한 사람. 얼굴을 덮은 두 손. 키보드를 건드리자, 모니터가 켜졌다. 그는 웹브라우저를 실행해 무언가를 검색하고, 왼손 검지로 턱을 긁었다.
그는 뽑은 카드를 다시 더미 속에 넣고 섞었다. 어차피 1/78의 확률.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 그는 고개를 젓고,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쭉 켰다. 화면에서 웹브라우저가 닫히고, 문자와 괄호 등이 펼쳐진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그는 키보드의 화살표키로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이거, 어디까지 했더라. 아, 북마크 해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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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슬슬 자야 할 시간. 루나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촛불을 켜고, 불을 껐다. 향초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방에 스며들었다.
"딩동-."
이제는 일상이 된 이 방문. 기다리던 손님이 왔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었고, 매일 밤 그녀를 찾아오는 손님을 조용한 미소로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오냐~."
클로에가 들어왔다. 좋은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방 안을 가득 채운 향기를 폐 속으로 인도하고, 초의 불빛을 잠시 바라본 뒤, '훅' 하는 입김으로 불을 껐다. 방이 깜깜해지자, 그녀는 손을 더듬어 침대를 찾고, 미리 벽 쪽에 누워있던 루나의 옆에 누웠다.
"클로에, 오늘은 얌전히 자야 해?"
"노력해 볼게. 그런데 그거, 내 맘대로 안 돼. 알잖아?"
잠들기 전의 의식. 루나는 클로에를 한 번 꼭 안아주었다.
"잘 자."
"루나도."
싱글 사이즈 침대는 다 큰 두 명의 십대 소녀가 함께 자기에는 많이 비좁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를 껴안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고, 그 상태로 눈을 감으면 어느새 잠이 왔다. 그렇게 두 소녀는 깨어있는 동안의 행복한 시간과, 따뜻한 체온과, 두근거리는 고동을 한밤중까지 이어갔다.
다만, 한밤중과 새벽녘의 두근거림은 잠자기 전의 행복한 고동과는 전혀 달랐다.
밤이 되면, 루나는 또다른 클로에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다. 클로에는 잠결에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렀고, 발길질을 했고, 몸을 뒹굴거리다가 그녀를 눌렀다. 가끔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루나는 클로에의 잠버릇 때문에 잠이 깰 때마다 그녀를 쓰다듬었고, 그러면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얌전히 잠들었다. 그러다 보면 클로에의 몸이 루나의 반대 방향으로 굴렀고, 그때마다 바닥에서 '쿵' 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음을 알렸다. 클로에는 그때마다 반쯤 깬 몸을 일으켜 다시 침대에 기어 올라오고, 잠이 깬 루나에게 사과하고, 다시 그녀와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결국, 한밤중의 사투가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두 소녀는 어느 B급 영화의 좀비처럼 축 늘어진 상태에서 겨우 아침식사를 챙겨 먹었고,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잠깐씩 쪽잠을 자는 빈도가 늘어났다. 소녀의 반짝이는 두 눈에는 메이크업을 아무리 떡칠해도 숨길 수 없는 다크 서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처절한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클로에, 괜찮은 거니?"
"루나, 잠은 잘 자고 있는거야?"
메이드복을 입은 어른들의 걱정이 이어졌고, 소녀들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식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저 지쳐가는 영혼들의 건강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메이드장 마가렛이 나섰다.
"클로에, 루나, 며칠동안 여러분을 관찰했습니다만,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둘의 관계는 잘 알고 있지만, 밤에는 제발 각자의 방에서 편하게 잤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통보같은 권고는 '당연히'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아침에 좀 힘든건 괜찮아요! 낮에 학교 갔다와서 잠깐 자면 돼요! 그리고 전 밤에 루나랑 같이 잘 때 더 깊게 자요! 나한테서 루나를 뺏어가지 마세요!"
"메이드장님, 저는 클로에가 밤에 저와 함께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요. 저는 제 정신의 안정을 위해서, 이 정도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줄리안은 이 보고를 받은 뒤, 잠시동안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껌뻑이다가 다시 마가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뇨. 강제로 어떻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 회복에 좋지 않을 겁니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제가 마스터와 일한 게 한두 해가 아니잖아요. 다음 패턴이 대충 예상이 됩니다."
무슨 CPU 분기 예측(branch prediction)도 아니고......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우두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긴 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줄리안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뭘까. 원인은. 물리적으로 해결가능한 방안은 있나. 그리고 그는 떠오른 무언가를 짜맞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