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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6/10 17:06:01 |
| Name | T.Robin |
| Subject | 리쥬브 프로토콜: 30-1. 차갑지만 따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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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쥬브 프로토콜
## 차갑지만 따뜻한
밤새 내린 눈과 함께, 온 세상이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걸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났고, 부츠를 신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가끔씩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들렸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다가오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복도와 교실에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서로 겨울방학에 무엇을 할지를 말하고, 흥분하고, 미친 듯 소리지르며 행복한 에너지를 마구 내뿜었다. 누구는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꿈에 부풀었다. 누구는 수백년째 가업으로 운영중인 해외의 전통 여관에 다녀온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커다란 연말 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자기의 겨울방학 계획을 서로 자랑하고 부러워하는 동안, 루나와 클로에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행복한 수다를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친구들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친척이 있었다. 가족은 그들을 지지해주고 단단하게 받쳐주는 닻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루나와 클로에에게 가족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서로뿐이었다. 줄리안은 재단의 이사장이자 그들의 '관리자'였고, 메이드 군단의 '언니들'에게는 돌아갈 가족이 따로 있었다. 군단에게, 맨션은 그저 재활과 사회 복귀를 위해 거쳐가는 쉼터일 뿐이었다.
루나와 클로에는 서로 마주보며 미소지었다. 풀을 생으로 씹은 것마냥 입맛이 썼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가지지 못하거나,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닌데. 가족의 빈 자리는 드넓은 공원에 부는 한겨울 바람처럼 휑하고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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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맨션으로 돌아오자, 로비에서 몇몇 메이드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클로에의 얼굴을 보곤 반갑게 미소지었다.
"아, 클로에, 어서 와. 학교 다녀왔니? 널 찾는 손님이 오셨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야."
클로에의 눈이 커졌다.
"예? 손님이요? 오늘도 무슨 자선 파티같은걸 하나요?"
"가보면 알 거야."
옆에 있던 루나가 손짓하자, 클로에는 루나에게 자기 가방을 넘기고는 거대한 로비를 가로질러 응접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루나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조용한 걸음으로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문을 여는 '쾅'하는 소리가 응접실을 크게 울렸다.
"저한테 누가 찾아왔......"
응접실 소파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다가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명은 줄리안.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클로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간이 지나서 입고 있던 옷도, 헤어스타일도, 키도, 얼굴도 다 바뀌었지만, 그녀는 한눈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엘레나? 엘레나니?"
"클로에에에에에에!"
엘레나라 불린 소녀는 클로에의 이름을 크게 소리지르면서 그녀에게 몸을 던졌다. 그녀는 엉엉 울면서 클로에를 있는 힘껏 꼭 껴안았다.
"바보. 바보. 바보야. 힘들었을 텐데. 왜 한 번도 연락 안 했어. 왜. 왜. 왜 그랬어. 나도 부모님도 걱정했단 말야. 바보. 이 바보......"
그녀는 작고 연약한 주먹으로 클로에의 가슴을 몇 번인가 때렸다. 단련으로 단단해진 몸이라 기별도 제대로 오지 않았지만, 아팠다. 그래도 아팠다. 맞은 부위가 아픈게 아니라, 가슴이 그냥 찢어지는 듯 아팠다. 클로에는 살짝 새어나온 눈물을 닦아내고 엘레나를 밀쳐냈다.
"아우 이 씨...... 야, 나 안 죽었거든? 열심히 잘 살고 있거든? 그렇게 펑펑 울면 어떡해?"
클로에는 고개 숙여 훌쩍이고 있는 엘레나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양 뺨을 쭉 길게 잡아 늘였다.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이 왕눈이 수도꼭지야. 요즘도 드라마 보다가 펑펑 울고 그러지? 응?"
"너도, 너도 울고 있으면서......"
그렇긴 했다. 방금 전에 분명히 찔끔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는데, 지금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클로에는 투덜거리면서 엘레나를 있는 힘껏 꼭 껴안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울고 싶진 않단 말이지......"
그리고 그들은 울었다. 그냥 울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메이드들도 살짝 고여오는 눈물을 훔쳤다. 그 눈물은 루나가 조용히 응접실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 이렇게 계속 서서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웬만큼 정리됐으면 다들 자리에 앉는게 좋겠습니다."
줄리안의 억양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모든 이들의 기분을 한꺼번에 가라앉혔다. 남아있던 눈물이 순식간에 쑥 들어갔다. 아오 저 로봇. 무드라곤 빵점이야.
그들은 넓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공부는 어땠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같은, 그 나이대의 십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후에는 엘레나의 부모님이 회사가 어떻게 '턴어라운드' 했는지,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고, 지금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줄리안은 그 이야기를 경청하며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사고를 해결, 내지는 종결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조용한 파도 재단> 같은 곳은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회복하는가는 어떻게 부서졌는가만큼 중요했고, 그들의 경험과 증언은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되었지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네게 제대로 된 보상은 되지 못할 것 같아. 엄마는......"
엘레나의 어머니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고백하는 죄인의 눈이었다. 흔들리고, 아파하고, 후회하는 눈.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클로에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그래도 뭔가 해주고 싶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네 친 엄마아빠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클로에와 함께하고 싶단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쓸쓸하고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루나에게 허리를 크게 숙였다.
"고마워요, 루나 양. 이사장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해줘야 했지만, 해주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루나 양이 해주었더군요. 고마워요. 정말로."
이거, 여자들에게만 맡겨뒀다가는 끝도 없겠군. 옆에서 '어험'하는 헛기침 소리가 났다. 클로에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이사장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거죠?
"여행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딱 부러졌다. 전형적인 '높으신 분'의 위엄이랄까. '내가 한다고 하면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클로에의 기억 속에서는 없던 모습이었다.
"목적지는 산속에 위치한 조용한 휴양지 리조트입니다. 온천장에, 테마파크도 있고, 커다란 실내 풀장도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는 곳이지요. 원래는 저희 셋이서만 가려고 했습니다만, 클로에는 원래 가족 같은 아이였으니 같이 갔으면 하고, 클로에를 옆에서 돌봐준 루나 양도 또한 충분히 초대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숙녀분들 중 두 아이와 함께하고 싶으신 분들을 모두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의 제안은 순식간에 맨션의 끝에서 끝까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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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며칠동안, 맨션은 행복 가득한 혼란으로 와글거렸다. 메이드 군단 전원에게 공지사항이 발송되었다. 루나와 클로에는 여행의 실질적인 준비위원으로 일했다. 그들은 메이드들로부터 참가 희망서를 받았고, 희망서 안에 적힌 다양한 간식 목록들을 정리하고, 간식 구매 예산을 확보했다. 매우 많은 메이드들이 한꺼번에 맨션 밖으로 외출했다. 삼삼오오 모인 그들은 타올, 수영복, 모자 등이 적힌 구매 목록으로 무장하고, 상점가로 진군하여 모든 부티크와 옷집과 상점을 점령했다. 상점가는 새로운 점령군을 열렬히 환영했고, 일부 상점은 여름에 부진했던 일부 품목의 재고를 꽤 괜찮은 조건으로 처리했다. 상점가의 가게 주인들에게, 메이드들은 군단이라기보다 천사에 더 가까웠다.
"루나, 이거 봐 이거! 이 수영복 루나한테 엄청나게 잘 어울릴 것 같아!"
물론, 그 점령군에는 클로에와 루나도 끼어있었다.
"뭔데?"
클로에가 가리킨 수영복은 '숨김의 미학'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온몸을 직설적으로 과감하게 노출하는 밝은 빨간색의 비키니였다. 가슴은 앞쪽 일부만 겨우 가려서 위아래 옆이 다 보이고, 아래쪽도 엉덩이가 반쯤 노출되는 식이었다. 엉큼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대신, 그냥 입히는 사람이 얼마나 엉큼한지를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디자인. 그녀는 루나의 곁을 빙글빙글 돌며 시커먼 미소를 지었다.
"이거 이거 시도해 봐! 이런 디자인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디자인이라고!"
그게 무슨 망발이야. 루나는 클로에가 가리킨 비키니를 보고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징그러운 외계 생물들이라도 본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바로 빼냈다.
"안 돼. 실용적이지도 않고, 노출만 심해. 이래서 어디 수영이나 하겠어? 자유형으로 팔 한 번 휘저으면 바로 벗겨질 것 같은데?"
루나는 클로에의 '진지한' 제안을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했다. 클로에는 뾰루퉁해져서 입을 삐죽 내밀고는 뻐끔거렸다.
"무슨 80대 할머니들이 소싯적에 처음으로 바캉스 갔을때 했을 것 같은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어! 루나, 이건 즐기러 가는 여행이야. 정숙하게 차려입고 가는 장례식장이 아니라고!"
그녀는 한숨을 푹 쉬고, 뒤로 돌아 다른 수영복 쪽으로 몇 발짝 더 갔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발을 쿵쿵거리며 그 수영복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좋아. 루나가 안 입는다면, 내가 입어주겠어! 나중에 내 모습 보고 질투하거나 후회하거나 부러워하지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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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언제나 모니터의 파란 불빛만이 방을 가득 채우던 이사장실에서는 다른 종류의 기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가세요. 예외 없습니다. 이사장실 못 들어오게 문 잠글 거예요."
마가렛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줄리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줄리안은 의자에 거꾸로 앉아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는, 그 위로 고개만 내놓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정이 안 나옵니다. 재단 연간 재무제표도 마무리해야 되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쓸 도구들도 만들어야 돼요. 온천이니 테마파크 같은 곳에서 느긋하게 쉴 여유같은건 없어요."
마가렛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줄리안, 당신은 사람이지 24시간 켜져 있는 서버랙이 아니에요. 전에는 혈당 가지고 사람 괴롭히더니만, 지난번 건강검진때는 코티졸이 아주 쌩 난리났던 거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잠은 도대체 얼마나 자는 거예요? 이사장실에 설치된 센서 기록 보니까 잠을 거의 안 자던데?"
"아니, 그러니까 괜찮다니까요. 굳이 그렇게 거창하게......"
줄리안은 짜증나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태를 강변했다. 마가렛은 거기에 대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등 뒤로 다가가서는, 그의 양 어깨를 꽉 붙잡고, 한 쪽 무릎으로 등뼈 한가운데를 누르며 어깨를 뒤로 있는 힘껏 당겼다. 뼈가 부러졌다고 할 만큼 요란한 '우드드득' 소리가 이사장실을 가득 울렸다. 등과 어깨를 타고 허리로 내려오는 통증에 목소리마저 나오려다 막혔다. 눈앞이 갑자기 핑 돌면서 눈앞이 잠깐 깜깜해졌다.
"자, 이래도 괜찮다고 말씀하실 건가요?"
몸이 아무 힘 없이 축 늘어진 상태로 등받이에 늘어졌다. 뭐라고 하고 싶어도 통증으로 인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멈춰있다가, 겨우 백기를 들었다.
"졌습니다...... 인정하지요. 다만 두 번 다시 이렇게 당하고 싶지 않군요."
"당하기 싫으시면 운동이라도 하시던가요. 무술 수련같은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필라테스든 요가든 뭐든 좀 하세요. 남자가 뭐에요 이게."
마가렛은 손바닥을 박수치듯 털면서 살짝 짜증을 냈다. 줄리안은 살짝 눈을 감았고, 그의 의자가 그대로 앞으로 살짝 누웠다. 곧바로 조용히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가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구석에 있는 침대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그에게 덮어주었다.
"으이구 이 웬수덩어리. 내 동생이었으면 그냥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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