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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5/05 13:23:10 |
| Name | T.Robin |
| Subject | 리쥬브 프로토콜: 13. 진심을 담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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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쥬브 프로토콜
## 진심을 담아서
편지의 내용은 루나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짧았다. 그녀는 두터운 크림색 편지지 위에 한 단어 한 단어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 필체는 누가 봐도 기품이 넘친다고 말할 정도로 우아했지만, 펜을 쥔 손이 살짝 떨리기라도 한 듯, 선은 약간 좌우로 번져있었다. 원대한 포부라던가 시적인 기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숨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해했고, 줄리안이 재단을 설립할 때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내용은 아무리 봐도 보잘것없는 내용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모든 단어는 그녀 자신의 삶이었고,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그녀는 다 쓴 편지를 접어 하얀 봉투에 넣었다. 이제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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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루나와 클로에가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자, 메이드들이 로비 천장에 있는 공지용 모니터의 내용을 수정하고 있었다. 한 명이 가운데에서 랩톱의 내용을 수정하면서 모니터에 뜨는 변경 사항을 확인했고, 옆에서 두 명이 모니터의 내용을 짚으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그들은 메이드들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곧 클로에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언니들-. 이거 내용 지금 바꾸는 건가요?"
"아뇨, 며칠 뒤인데 미리 예행연습 해두는 거랍니다."
그리고 루나는 화면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뒤이어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테스트 중인 공지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_아서 스털링 님과 스털링 홀딩스 담당자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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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고동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오시는 거지. 설마 나 때문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첫번째 편지도 아직 안 보냈는데.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고 또 뒤흔들었다. 이거, 누구에게 상담해야 할까. 마침, 줄리언은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녀는 바로 메이드장실로 향했다.
"루나 양? 뭔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나요?"
"메이드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서 스털링 님께서 맨션에 방문하신다고 들어서......"
"아, 그거요? 재단의 업무에 대한 불시 감사 때문에 방문하시는 거랍니다. 아무래도 재단의 중요 스폰서 중 한 분이시기도 해서, 저렇게 가끔 갑자기 오셔서 재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시곤 해요. 다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인 것 같고......"
마가렛이 흐린 눈을 하며 루나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은 그저 줄리안 님을 놀려먹는 게 재미있어서 오시는 것 같긴 하지만요."
"아......"
"루나 양과 관련된 사항이 걱정되는 거라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루나 양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서는 굉장히 만족해하셨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말하지 않아도 한 번에 척. 노련하다고 해야 하나. 의도가 읽혔다고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간에, 메이드장 또한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은 확실한 듯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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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방에서, 클로에는 '공주님 침대' 위에서 계속 뒹굴거렸고, 루나는 책상 위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클로에."
"응?"
"나, 이번에 아서 님이 오시면 만나뵙고 인사드리고 싶어."
"좋을거야! 루나처럼 이쁜 아이가 인사하겠다는데, 굳이 싫다고 할 남자가 있을까?"
"그런게 아니잖아......"
루나의 한숨이 방을 가득 메웠다.
"그 분, 나를 여기로 데려와 주시면서 대가로 손편지를 말씀하셨거든. 첫 편지도 드리고,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그러고 싶어."
"그런데? 그럼 메이드장님한테 말해서 시간좀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 사람이 얼마나 바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마 1분도 안 내주겠어?"
"아니 그보다는......"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클로에에게 이야기했다. 클로에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거라면 이 클로에 언니에게 맡기렴! 언니들 중에서 루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들을 모아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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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계속 도움만 받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도 또 한 번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루나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그녀의 앞에 있는 여섯 명의 메이드에게 허리를 깊이 숙인 뒤,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군단의 조직된 힘을 보여주세요. 메이드 군단, 작전 개시!"
클로에의 신호와 함께, 미용 가운이 펄럭이며 루나의 상체를 덮었다. 빗과 머리핀과 헤어 드라이어 같은 물품들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춤췄다. 팔레트와 붓이 그녀의 생생한 피부 뒤에 숨어있던 새로운 얼굴을 이끌어냈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자 어떤 옷이 좋을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고, 곧 몇 개의 후보들이 뽑혔다. 누군가는 엄숙한 얼굴로 하나뿐인 막냇동생을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게 만들기 위해 혼을 불살랐고, 누군가는 그저 어렸을 적 종이 인형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하는 듯한 기분으로 손을 놀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이 '작전'을 즐겼다. 누군가는 계속 생각나는 악몽 같은 기억을 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친한 친구가 도와달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들은 모두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였다. 너를 오늘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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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담배 냄새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가 맨션의 응접실을 가득 메웠다. 아서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방안을 뒤흔들었고, 줄리안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따라 '군단'이 의도적으로 좀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줄리안, 혹시 자네 군단에게 책잡힌 거 있는 건 아니겠지?"
"딱히 떠오르는 건 없습니다."
"이 사람, 이거, 분명히 뭐 잘못한 게 있구만. 예끼 이 사람아! 남자라면 여자한테 책잡힐 짓은 하는게 아냐! 그러니까 그 나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봤지."
"엄밀히 말씀드리면 못해봤던 건 아닙니다만......"
"아네 알아. 둘 중 하나겠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말이 좋아서 연애를 한 거지 그냥 호구잡힌 거였거나."
줄리안은 거기에 대고 무언가 반박을 하려다 포기했다. 언제 내 뒷조사라도 했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옆에 있던 마가렛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의 책임자이자 저희의 '마스터'입니다. 너무 놀리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핫핫핫핫. 자네, 가끔 보면 우리 마누라보다도 더 무서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말을 이었다.
"오늘의 회의는 이걸로 끝난 듯하군요. 공식 일정에는 없습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측에서 아서 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 누군가? 오랜만에 인사 좀 해야지. 라나? 아드리안? 나탈리? 조이? 아니면, 니콜?"
"말씀하신 분 중 네 명은 이미 군단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면회를 요청한 사람은, 아서 님께서 이미 얼굴을 알고 계십니다만, 아서 님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응? 여기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이쯤 되면 무언의 승낙으로 봐도 되겠지. 마가렛은 문 앞에 있던 메이드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메이드들이 응접실의 양쪽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가 눈을 크게 뜬 채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엇, 이게 누군가!"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한 소녀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힘을 준 풀 메이크업은 그녀의 결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양 윤기를 준지 얼마 안 되어서 살짝 들뜨긴 했지만, 머리도 단정하게 제대로 틀어올렸다. 가냘픈 목선 아래로 살짝 열린 칼라와 아래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옷선이, 아이보리로 염색된 실크 원단과 함께 십 대 소녀만이 지니는 순수함을 더 강조해 주었다. 무릎 아래까지 덮인 스커트 밑으로는 하얀 스타킹과 빨간색 구두를 통해 '순수함'이 심심해지는 것을 막고 소녀의 매력을 크게 살렸다.
"이거 엄청난데! 이 정도면 바로 시집보내도 되겠어! 다 컸네 다 컸어!"
그리고 그는 능글맞게 미소지으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단, 이런 늙은이는 빼고 말이지."
소녀가 몇 발자국 더 앞으로 걸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나입니다. 일...... 전에는...... 가,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아서에게 인사했다.
"뭘 그렇게 딱딱하게 그러나! 이 늙은이가 뭐가 어렵다고. 풀어 풀어. 격식차리는거 귀찮고 불편해. 애가 뭘 안다고. 얘한테 이렇게 딱딱하게 굴라고 시킨 거 누구야?"
"아, 아닙니다. 그거, 제가, 그러니까......"
루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들어 아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루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이녀석아, 이런 노인네는 처음이지?
"농일세 농이야. 이거 참, 우리 집에는 아들에 손자까지 다들 시커먼 남자놈들밖에 없어서 말야. 이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구만. 실례가 되더라도 용서해주게나. 허허허허......"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우연히 그와 안면이 생긴 몇몇 메이드도, 수 년을 봐온 메이드장도, 십 년을 넘게 봐온 줄리안도, 심지어는 수십 년을 옆에서 지켜봐 왔던 그의 수행원조차도 처음 듣는 웃음소리였다. 그의 얼굴은 잘 자라준 손녀딸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이거...... 조금 늦었지만, 아서님께 드리는 제 첫 편지입니다."
"오오, 기다리던게 드디어 왔구만! 내 어디 함 읽어봄세."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서는 편지봉투의 윗부분을 조심스럽게 찢어냈다. 편지지를 펼치는 순간은 그 시끌벅적하기 그지없는 아서 스털링마저도 숨을 멈추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가 편지의 첫 줄로 향했고, 그의 손가락과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의 얼굴은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로 시작되어, 평화와 안도로, 그리고 순수한 기쁨으로 이어졌다. 역시. 내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는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편지를 양복 속주머니에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었다. 편지를 챙기기 위해 수행원들이 다가왔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이런 귀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남에게 관리하라고 주는 건 쓴 본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이건 내가 직접 갖고 있겠네."
그는 루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장 해제. 그의 얼굴은 다국적 기업 스털링 홀딩스를 이끄는 터프한 회장님이 아닌, 오랜만에 만난 손녀딸을 보는 동네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구만...... 그러고보니 루나, 혹시 네 방을 좀 구경해도 괜찮을까?"
"네? 네."
갑작스런 제안. 루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정확히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아서는 줄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루나에게 말했다.
"그럼, 안내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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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발걸음과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한데 어울려 귀여운 타이포그래피로 씌여진 '루나' 팻말이 걸린 문 앞에 섰다. 아서가 들어오자, 루나는 방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아서가 그 손을 막았다.
"예끼 이 녀석아. 다 큰 처녀가 자기 방에 외간 남자를 함부로 들이는 거 아니야. 문이라도 열어놔."
표현은 서툴렀지만, 이건 그 나름의 배려였다.
"어디 보자......"
방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책상 위에는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 조용히 놓여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게끔 놓여져 있었다. 그가 온다고 일부러 정리해 둔 게 아니었다. 옷장 같은 것을 열어보는 건 실례고. 마지막으로 그는 방에서 가장 큰 가구를 살폈다. 레이스와 반투명한 실크 커튼으로 감싸인, 공주풍의 침대. 그는 눈으로 침대의 몇 군데를 자세히 확인하고는 루나에게 물었다.
"이 침대는, 마음에 드니?"
루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답지 않은 목소리.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순간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귀까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네...... 정말 좋아요. 예쁘고, 편하고...... 아침에 커튼을 타고 은은하게 비추는 그 햇빛이 참 좋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표현이 실례가 되면 안 돼. 줄리안에게 안좋은 인상을 주게 해서도 안 돼. 이 침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지금도 압도적이었지만, 아무렇게나 말했다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절제. 정제. 아서는 만족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았지만, 눈가의 주름은 그 미소의 깊이만큼 아득했다.
"할애비의 선물같은 거라고 생각하려무나."
"네? 네?"
"별거 아니다만, 상처 입은 손녀딸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었다면, 개 같이 번 돈을 제대로 '정승같이' 쓴 거겠지."
할애비. 그 단어가 루나의 가슴을 세게 두들겼다. 손녀딸. 그 한마디가 "한정판 상품"의 마지막 조각을 깨뜨렸다. 스털링 홀딩스로부터의 거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엔 그저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있었고, 그들만의 말할 수 없는 묘한 유대가 존재했다.
"할아버지......"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았지만, 떨어지는 한 방울은 그 어떤 차가운 심장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
"할아버지......"
동화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 풀 먹일 시간이라며 외양간 밖으로 소를 몰고 나왔다. 손녀딸은 소가 풀 먹는 걸 구경하겠다고 할아버지를 따라나섰고, 소 위에서 올라타서는 혹시나 떨어질까 봐 등 위에 납작 엎드려있었다. 손녀딸은 자기도 소에게 먹이를 주겠다며 고사리손으로 풀을 뜯어 소에게 내밀었고, 소가 긴 혀를 내밀자 놀라서 울며 풀을 버리고 할아버지에게 도망갔다. 할아버지는 그저 허허허 하고 웃으며 놀란 손녀딸을 안아주었고, 울음을 그친 손녀딸은 소가 풀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에는 몰랐다. 왜 소에게 풀을 준다고 했을까. 풀을 준다고 엄마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왜 할아버지에게 달려갔을까. 할아버지한테 가봐야 혼나기만 할텐데. 그리고 할아버지라는 사람은 왜 손녀딸을 달래준 걸까. 그때는 그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서야, 십 대 후반이 다 되어서야, 조금 있으면 어른이 되는 그제야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의, 자기보다 두 뼘은 커 보이는, 백발이 희끗한, 피라고는 한 방울도 안 섞인 우람한 체격의 남자를 통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루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끝내 주저앉았다.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아서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언젠가부터 열린 문의 뒤쪽에서 조용히 그들을 구경하던 메이드들이 서로를 안으면서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빨리 해주라고요. 그는 어색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 팔로 루나를 감싸안았다.
"녀석, 괜찮다 괜찮아. 뭘 그렇게 울고 그러냐. 뚝 해라. 뚝."
그는 정성스럽게 말아 올린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우는 갓난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듯,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의 걸걸함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지만, 그 말투는 누가 들어도 사랑이 묻어나온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아서 님은, 제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신, 분이세요......"
아이고 이거 말 두 번만 시켰다간 숨넘어가겠네. 그는 너털웃음 소리를 냈다.
"됐다 됐어. 낯간지런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부터는 할아버지라 불러라. 나도 이쁜 손녀딸 하나 가져보자꾸나."
"할아버지......"
열려있던 방문이 소리 없이 조용히 닫혔다. 더 이상 열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아니, 지금부터는 열어놓는 것이 실례였다. 지금은 서로가 아무런 방해 없이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도록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면 되었다.
오늘은 이제 끝. 더이상은 방해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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