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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6/16 11:51:20
Name   큐리스
File #1   Adorable_4_panel_webtoon_comic_depicting_a_sweet_K_1781577779556.png (3.10 MB), Download : 1
Subject   17년차 남편은 낭만보다 안전한 방법을 택합니다.


오늘도 와이프가 회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합니다.
끝날 시간쯤 차를 끌고 나가 평소 기다리던 자리에 세워두고 연락을 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도착했다고 했더니 와이프는 이미 걸어오는 중이라며, 다른 데서 볼 수 없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계산이 됐습니다.

차는 이미 세워놨고,
주차도 애매하고,
괜히 움직였다가 서로 위치 설명하느라 더 헷갈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술 마신 상태에서 “나 거의 다 왔어”는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어설프게 중간지점을 찾겠다고 움직였다가 엇갈리면
그때부터는 픽업이 아니라 상황실이 됩니다.

“어디야?”
“나 여기.”
“거기가 어디야?”
“아까 그쪽.”
몇 번만 반복돼도 없던 짜증이 생기죠.

그래서 저는 그냥 말했습니다.

“난 여기 있을게.”

제 판단으로는 그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확실한 장소에서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와이프는 살짝 삐진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저도 조금 억울했습니다.
괜히 움직였다가 더 꼬이면 결국 더 욕먹고 더 짜증내는 것도 제 몫일 텐데,
왜 벌써부터 내가 야박한 사람이 되어 있나 싶었습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회식 끝나고 술도 좀 마신 상태에선
논리보다 “조금만 더 내 쪽으로 와주면 안 되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내가 잘못한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술 취한 사람한테 그 순간 설명을 해봐야
들어가는 건 반쯤이고 남는 건 서운함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괜히 이쪽저쪽 움직였다가 더 헷갈리고 더 헤매는 상황을 막는 게 먼저죠.

작은 서운함 하나쯤은 내가 먹더라도
큰 혼란 하나를 막는 쪽을 택하는 것.

어쩌면 그게 17년차 남편의 스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무사히 만나서, 무사히 차에 태우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
그 평범한 결말 하나를 위해
때로는 낭만보다 무사히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요.

결국 어제도 저는
조금 기다리고,
조금 욕먹고,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소를 버리고 대를 취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 다 길에서 짜증내는 일은 막았으니
제 선택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맞았냐보다,
우리 집 귀여운 멍멍이 와이프가 더 취하기 전에
무사히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저도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8
  • 사랑꾼이십니다.
  •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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